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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가면] 바다 쪽으로 한 걸음

조선일보 오성은 소설가, 동아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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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가면] 바다 쪽으로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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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지난날의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첫 책 ‘바다 소년의 포구 이야기’가 꼭 그랬다. 마도로스를 아버지로 둔 문학 소년에게 바다는 숙제와도 같은 필연적 관계였다.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출간했으나 바다 소년이라는 타이틀을 고집했다. 바다를 아버지와 동일시했던 나의 순수한 치기였다. 그만큼 용기도 있었다. 설익은 이십 대의 청춘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애정이 컸다. 바다 위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소설을 쓰는 나에게 바다는 근원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무모함 탓이었는지 책은 1년 만에 절판되었다.

그런 사정과는 별개로 막상 바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공간이기보다는 주변 풍경이나 삶의 배경 정도로 그치는 순간이 많았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바다의 진정한 매력이기도 했다. 한 걸음 다가서면 서둘러 달아나는 갯강구의 흩어짐과 방파제에 걸려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 태양이 미끄러지는 수면의 물비늘과 선창에 한가로이 묶인 배들의 물그림자를 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무표정한 듯 슬며시 건네오는 소소한 인사가 경이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인류 최초 서사시인 ‘오디세이’의 무대도 다름 아닌 바다다.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와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쥘 베른의 ‘해저 2만리’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등 문학에서 바다는 마치 인생의 다른 이름처럼 사용되어 왔다. 내게 그랬던 것처럼 정말 바다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마침 6월의 부산에서는 책과 영화라는 문화 예술 콘텐츠를 중심으로 ‘부산바다도서관’과 ‘국제해양영화제’가 열린다. 6월 14일부터 29일까지 매주 주말에 진행되는 ‘부산바다도서관’은 민락수변공원에서 독서와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는 가족 친화적인 열린 도서관 행사이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발아래로 밀려오는 파도 소리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한편 해마다 마니아층을 쌓아가고 있는 국제해양영화제가 6월 19일 영화의전당에서 개막한다. 초청받은 10국의 장·단편영화 33편은 바다와 인간, 해양 환경, 생태와 공존 등 드넓은 바다의 다채로운 얼굴을 한데 모아 관객에게 선사할 예정이다.

올해 국제해양영화제의 테마는 ‘바다가 닿는 곳(Where the Sea touches us)’이다. 이는 바다가 닿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라 해도 하나가 될 수 있다는 화합 메시지를 담았다. 그 외에 바다 미술제, 부산항 축제, 해운대 모래 축제, 부산 바다 축제 등이 바다를 콘텐츠로 활용하는 부산의 대표적 문화 예술 축제라고 할 수 있다.

해변에 남겨진 모래성으로 파도가 밀려든다. 파도는 모래성의 기억을 간직한 채 깊은 바다로 밀려난다. 해안선을 넘나드는 파도의 모습처럼 그 자유로운 물결의 메타포를 통해 금기를 깨고 경계를 허물며 모든 선 위를 넘실거린다. 바다는 인류의 시원(始原)이자 보고(寶庫)이며, 한 걸음 더 다가서야 할 우리의 미래다. 무엇보다도 바다는 싱싱한 이야기가 넘쳐흐르는 무한한 콘텐츠 자원이다. 그러니 올여름에는 바다로 한 걸음 다가서도 좋겠다. 바다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니까. 우리의 바다가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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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은 소설가, 동아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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