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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말과 글] [407] 효율성에 대하여

조선일보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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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말과 글] [407] 효율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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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처음 로봇 청소기를 샀을 때, 청소 걱정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외출 전 작동시키면 충전까지 알아서 하니 시간 효율의 혁신 같았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점점 청소기를 손수 돌리는 시간이 늘었다. 보이지 않는 구석까지 먼지를 빨아들이고 깨끗해지는 걸 내 눈으로 확인해야 시원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의 취미는 설거지인데, 더러운 그릇을 닦을 때마다 업무로 복잡했던 어수선한 마음이 말끔해지기 때문이란다. 그가 설거지를 움직이는 명상이라고 부른 이유다.

내가 편리한 건조기 대신 햇볕에 빨래를 말리는 이유도 비슷한데, 싱싱한 채소를 수확하는 농부처럼 바삭바삭해진 빨래를 걷어 코끝에 갖다 대면 느껴지는 햇볕이 큰 행복감을 주기 때문이다. 영양제로 섭취하지 않아도 되는 세로토닌 부스터처럼 말이다.

효율성은 우리 시대의 종교에 가깝다. 그러나 온갖 첨단 도구를 써도 여전히 시간에 쫓기는 건 시간을 단축하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스마트폰이나 온갖 플랫폼의 알고리즘처럼 ‘시간을 빼앗는 기술’이 더 빠르게 늘기 때문이다. 이제 고객의 체류 시간이 데이터고, 데이터가 돈인 세상이다. 비서와 운전기사를 두고도 승진할수록 시간이 부족해지는 것도 비슷하다. 승진이 빨라질수록 일은 산술급수적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효율적 삶의 가장 큰 부작용은 현재를 미래의 목표를 위한 단계로만 인식하는 것이다. 사립초, 국제중, 특목고 진학이 명문대를 위한 것으로 압축되고, 명문대 입학이 취업을 위한 과정으로 의미가 한정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 시절에 누려야 할 다양한 감정과 경험이 오직 입시와 취업이라는 목표로 귀결된다면 삶은 어떻게 변할까. 오직 한 가지 식물만 있는 정원처럼 얇고 빈약해질 것이다.

인생은 킬러 문항투성이다. 그러나 입시처럼 효율적인 일타 강사는 우리 삶에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관성적 효율이 아닌, 내 보폭과 속도를 아는 것, 그것이 삶을 풍요롭게 사는 방법이다. 풍경의 각별함은 각자의 속도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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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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