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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루엣만 공개한 '얼굴 없는 가수'의 '보컬 차력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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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루엣만 공개한 '얼굴 없는 가수'의 '보컬 차력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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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가수' 일본 여가수 아도 콘서트
15일 경기 고양 킨텍스서 두 번째 내한공연


아도의 이전 콘서트 장면. 아도 홈페이지

아도의 이전 콘서트 장면. 아도 홈페이지


“저는 작은 옷장에서 계속 큰 꿈을 꿔왔던 외톨이에 음침한 소녀였습니다.”

15일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두 번째 내한공연을 한 일본 가수 아도(23)는 콘서트가 끝나갈 무렵 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벽장처럼 작은 방에서 홀로 노래하며 꿈을 키우다가 22개국 33개 공연장에서 50만 관객을 만나는 스타로 발돋움한 소녀가 팬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다.

“애초에 저는 혼자 시작했습니다. 제가 노래하는 방식이 이상하다는 사람도 있었고, 꿈 따위 그만두라는 말도 들었어요. 꿈을 꾸는 건 바보 같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몇 번이고 그만하자는 생각도 했죠. 그렇게 계속 외톨이였던 제가 지금 여기 서 있어요. 그러니 외톨이라도 어둡더라도 외롭더라도 콤플렉스가 있더라도 그게 나쁜 게 아니라고, 꿈은 이뤄질 수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객석 어딘가에도 저 같은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 여러분에게 마음의 버팀목이 되고 싶어요. 그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내한공연, 2시간 동안 20여 곡 선보여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하며 단 한 번도 자신의 얼굴을 보인 적 없는 아도는 이날 목소리와 표정만으로 진심을 전하며 8,000여 관객과 소통했다. 조그맣게 보이는 실루엣이 전부지만 노래만으로도 그의 삶과 속내가 전달되는 듯했다. ‘아도 박스’라 불리는 철창 같은 직육면체의 공간에 등장한 그는 2020년 발표한 데뷔곡 ‘시끄러워(웃세와·うっせぇわ)’로 시작해 최고 히트곡이자 애니메이션 ‘원피스 필름 레드’ 주제가 ‘신시대(신지다이·新時代)'로 끝을 맺기까지 2시간 동안 신들린 듯한 ‘보컬 차력쇼’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일본 가수 아도의 캐릭터 이미지. 실제 공연 무대에서 이 이미지는 사용되지 않는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일본 가수 아도의 캐릭터 이미지. 실제 공연 무대에서 이 이미지는 사용되지 않는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4인조 밴드의 강하고 빠른 록 비트 연주 위에 분노와 우울, 슬픔과 절실함 등의 감정을 폭풍우처럼 쏟아내는 그의 보컬은 선배 가수인 시이나 링고의 흑장미 버전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어둡고 진한, 때로는 독한 감성으로 공연장을 물들였다. 악을 쓰는 듯 퍼붓는 고음은 음원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지난 2월 첫 내한공연 당시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학창 시절 다른 친구들에 비해 목소리 톤이 낮아 콤플렉스였는데 음악을 시작하고 나선 오히려 이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면서 “가사를 표현하기 위해 나만의 방법을 연구하며 샤우팅 창법을 쓰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한국 와서 바나나우유, 비요뜨, 초코에몽 먹었어요"


아도는 15세이던 2017년 온라인 커버 가수인 ‘우타이테(歌い手)’로 시작해 2020년 정식 데뷔했다. 데뷔 싱글 ‘시끄러워’가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 수 1억 회를 넘어설 만큼 히트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번쩍번쩍(ギラギラ)’ ‘춤(踊)’ ‘역광(逆光)’ ‘어질어질(くらくら)’ 등이 연이어 인기를 모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특히 빌보드 재팬 연말 결산 차트에는 ‘신시대’가 7위에 오르는 등 100위 안에 아도의 노래가 10곡이나 오르기도 했다.


이날 공연에서 아도는 한국어로 관객과 소통하려 애썼다. 첫 곡을 부르고 한 시간이 다 되도록 아무런 대화도 없이 노래에만 집중하던 그는 정확한 발음의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여러분”이라고 인사한 뒤 외운 것을 잊어버렸다는 듯 “다시 한국에… 아~악!!” 하고 소리치며 웃음을 안겼다. “다시 한국에 오게 돼서 너무 좋아요”라며 “한국에 와서 바나나우유와 비요뜨, 초코에몽을 먹었다. 초코에몽 일본에 왜 없는 거야”라고 외치기도 했다. 예매사이트 인터파크에 따르면 이번 콘서트 티켓 예매자의 78.8%는 남성이었고, 연령대별로는 20대가 60.3%를 차지했다.

이번 킨텍스 공연은 아도의 월드투어 ‘히바나(불꽃)’의 하나로 열렸다. 그는 “이번 투어가 인생에서 가장 큰 경험이다. 작은 불이 언젠가는 모든 것을 밝히는 큰 불꽃이 되듯 이번 투어로 일본의 문화나 음악을 알리는 큰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 ‘히바나’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관객들의 앙코르 요청에 다시 무대에 올라온 그는 한국 팬들을 위해 특별히 커버한 가수 스텔라장의 ‘빌런’ 등 세 곡을 잇달아 부른 뒤 마지막으로 ‘신시대’를 부르기 전 다시 한 번 꿈에 대해 이야기하며 팬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의 소원이 이뤄지길, 우리의 꿈과 미래와 소원이 불꽃처럼 빛나길!”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