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열린 서울대학교 졸업식 모습./뉴스1 |
서울대 공대 학장이 “이공계 대학생 중 매년 1000명을 뽑아 집중 지원해 초인재로 양성하자”고 제안했다. 정부 주도로 엘리트 인재양성센터를 설립해 매년 대학에 입학하는 이공계 학생 10만명 중 최상위 1%를 선발해 과학기술 혁신을 주도할 국가 인재로 키우자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경제 성장은 우수한 인력이 뒷받침했기에 가능했지만 이젠 과학기술 분야에서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대학에 입학하는 18세 인구가 30년 사이 절반 이하로 줄어 인력의 양적 확보도 어려워진 데다, 더 심각한 것은 상위권 학생들이 이공계 대신 의대로 쏠리는 현상이다. 지난해 서울대 공대 신입생 850여 명 중 130명가량이 등록을 포기했다. 특히 의대와 관련 있는 바이오 분야 학과의 경우 넷 중 하나꼴로 입학을 포기했다.
지금 대선 주자들이 ’100조원 투자' 등을 내세우며 인공지능(AI) 육성책을 내놓고 있지만 AI 인재가 턱없이 부족한 지금 같은 상황에선 실현하기 힘든 공약이다. 한국의 AI 종합 국가 순위는 7위이지만 인재 순위는 28위에 불과하다. 어렵게 키운 이공계 인재도 국내를 떠나 해외 빅테크 기업으로 발길을 돌린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인재 확보 경쟁에서 한국은 인도·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3번째의 AI인재 순유출국이 됐다. 이대로면 첨단 산업 경쟁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다.
당장 오는 2027년까지 AI·빅데이터·클라우드·나노 등 4대 신기술 분야에서 6만명이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AI 분야에서 초·중급 인력은 수요(4만4600명)보다 3800명 더 공급되지만 R&D(연구개발)에 투입할 고급 인력은 수요(2만1500명)의 23%만 배출돼 1만6600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빅데이터 분야 고급 인력 역시 3만명이 필요한데 20%(6100명)만 배출될 전망이다.
중국이 AI 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미국과 격차를 좁히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 과학 인재를 초등학교 때부터 선발해 집중 양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은 전 세계 AI 전문가의 47%를 차지하고 있다. 대만도 국가 차원에서 AI 인재를 길러낸 덕에 관련 기업들이 성장해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AI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미 2021년부터 주요 대학에 AI연구센터를 설치해 인재를 길러내기 시작했고 매년 AI 연구 인재 600명, 응용 인재 8000명을 양성한다는 구체적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기고 있다.
과학기술 인재를 길러내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데 당장 대입 제도를 바꾸거나 의대 편중 현상을 변화시키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매년 이공계에서 상위 1000명을 선발해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고 집중적이고 창의적 교육을 시켜서 과학기술 엘리트로 키워내는 시도를 해볼 만하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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