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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표준어사전에 없는 ‘먹방’

조선일보 박한슬 약사·‘숫자 한국’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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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표준어사전에 없는 ‘먹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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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째 매주 KBS 새벽 라디오에 출연하고 있다. 덕분에 독특한 경험을 여럿 했다. 한번은 출연하러 택시를 타고 갔는데 실색한 일이 있었다. 도착했다는 말에 깨어보니 어슴푸레한 창밖에 흰 조화(弔花)들이 휑뎅그렁 놓여 있었다. 방송국이 아니라 장례식장 같았다. 알고 보니 공영방송이 죽었다며 시민단체에서 근조 화환을 보낸 거였다.

무거운 마음으로 방송을 하다가 엉뚱한 사실을 알게 됐다. ‘수신료(受信料)‘라는 단어가 표준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표준어는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하는 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삼는다. 아무리 자주 쓰이더라도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리지 않은 말은 표준어가 아니다. 법률에 규정된 수신료라는 말도 표준어가 아니었다가 2024년 12월 표준어로 등재됐다. 같은 해 등재된 신어(新語)로는 노령화, 비대면, 진보정당 등이 있다. 정의당이 원외(院外) 정당으로 전락한 후에야 진보정당이란 말이 표준어로 등재됐다니, 새로운 말을 표준어로 반영하는 속도가 늦어도 지나치게 늦다. 표준어 관련 일을 너무 힝뚱힝뚱하는 게 아닐까.

영미권 사전 편찬 기관은 우리의 뒤늦은 신조어 반영과는 대비된다. 영국의 가장 권위 있는 영어사전인 옥스퍼드 영어사전(OED)에선 영어 단어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유래한 외래어도 활발히 자국 사전에 등재하고 있다. 2021년엔 ‘먹방(mukbang)’을 “주로 생방송으로 송출되는 영상으로, 한 사람이 많은 양의 음식을 먹으며 시청자와 대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란 뜻으로 사전에 등재했다. 정작 그 단어가 기원한 우리나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먹방을 찾으면 “먹물을 뿌린 듯 캄캄한 방”이라는 단어만 있다.

우리 말을 바르게 지켜야 한다는 의지는 칭찬할 만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언중(言衆)의 입말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언어 지키기일까. 이젠 ‘다마네기’를 양파로 순화하던 시대의 감각을 넘어 문화 강국으로서의 너른 품을 보여주면 좋겠다.

[박한슬 약사·‘숫자 한국’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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