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남자프로농구 첫 80년대생 감독 시대를 연 김효범 서울 삼성 감독은 선수를 존중하는 리더십으로 주목받는다. 한국농구연맹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프로농구 서울 삼성의 훈련장에는 눈에 띄는 광경이 있다. 감독이 선수들과 함께 코트를 누빈다. 패스를 해주기도 하고 가끔은 슛도 쏜다. 감독은 선수들의 훈련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며 평가하는 사람 아니었나. “같이 땀 흘리고 좋죠. 하하.” 그게 뭐가 별일이냐는 듯 멋쩍어하는 이 사람, 남자프로농구(KBL) 첫번째 80년대생 사령탑 김효범(41·1983년생) 감독이다.
프로스포츠에 80년대생 감독 바람이 불고 있다. 2020년대 들어 시도됐는데 올해 4대 스포츠에 모두 번졌다. 배구가 시작이었다. 정관장 고희진 감독(1980년생), 대한항공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1987년생), 한국전력 권영민 감독(1980년생)이 각각 2020년, 2021년, 2022년부터 지휘봉을 잡았다. 축구는 지난 4월 사임한 최원권(1981년생) 대구 FC 감독이 2022년 11월 80년대생 감독 시대를 연 이후, 올해 수원 삼성 염기훈 감독(1983년생), 전북 현대 김두현 감독(1982년생)으로 이어졌다. 야구는 올해 처음 1981년생 수장(KIA 이범호)이 탄생했다.
여자농구(WKBL)는 신한은행 구나단(1982년생) 감독이 2022년 스타트를 끊었지만, 남자 농구는 김효범 감독이 처음이다. 최근 고양 소노도 1984년생 김태술 감독을 선임하면서 젊은 감독 바람은 거세지고 있다. 농구계 한 인사는 “소통이 중요한 시대가 되면서 선수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릴 수 있는 젊은 감독들이 관심 받는 것 같다”고 했다.
김효범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 코트를 누비며 훈련한다. 한국농구연맹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선수들과 함께 뛰며 틀을 허문 김효범 감독도 소통하는 ‘낭만 리더십’으로 주목받는다. 김효범 감독이 작전 타임 때 선수들을 존중하면서 대화하고 사기를 북돋우는 장면을 담은 영상들은 인기다. 윽박지르고 째려보는 감독에 익숙했던 농구팬들은 이를 ‘낭만 작전 타임’이라고 부르며 환호한다. 지난 18일 용인 삼성트레이닝센터에서 만난 김효범 감독은 “선수들이 행복하게 농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행복해야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행복 추구 80년대생 감독들은 그래서 팀 분위기 조성부터 신경 쓴다. 김태술 감독은 최근 첫 연습 때 “음악도 틀어 놓고 즐겁게 (하자)”라고 말해 선수들을 놀라게 했다. 김효범 감독이 올해 정식 감독이 되면서 선수들에게 전술에 앞서 먼저 주문한 것도 이 4가지다. “이해심·배려, 행복, 존중, 선의의 경쟁.” 김효범 감독은 “농구는 팀 스포츠인 만큼 이 문화부터 정립되면 전술적인 부분도 구상한 대로 잘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경기 외적인 부분도 신경 쓴다. 이범호 감독은 선수의 아내 생일에 꽃을 선물했다. 권위를 벗어던지고 인간적으로 다가가려는 80년대생 감독들의 소통 방식이다. 누군가 내게 마음 쓰고 있다는 생각은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 김효범 감독도 선수의 생일을 챙긴다. “하지만 이범호 감독님이 선수 아내까지 챙기는 것을 보고 ‘난 아직 더 배워야겠구나’ 했어요. 이제는 선수의 딸도 챙겨보려고요. 하하.”
올해 프로야구 첫 80년대 감독 시대를 연 이범호 기아 감독은 선수의 아내 생일에 꽃을 보내는 등 세심한 리더십으로 눈길을 끌었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런 철학은 선수 시절 다양한 경험에서 기반한다. 스타 선수 출신인 80년대 감독들은 권위적인 위계질서 속에서 운동했다. 김효범 감독은 그러면서 “윽박지른다고 선수의 성향이 바뀌지는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두려움이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범호 감독도 프로 데뷔 뒤 수비 실책 등으로 가슴앓이를 많이 했던 터라 잘 안 될 때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김효범 감독은 “연패하면 선수들이 감독을 무서워하고 그래서 스스로 위축된다. 그럴 때 감독으로서 인내하면서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김효범 감독은 사령탑 제안을 받았을 때 나이가 어린 것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다고 한다. “여러 감독님들이 제 의견을 물어봐 주는 등 많이 도와주신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보수적인 스포츠 세계에서 어린 감독의 등장은 때론 존중받지 못하기도 한다. 지도자 경험이 거의 없는 김태술이 소노의 새 사령탑으로 임명됐을 때도 의심의 눈초리가 있었다. 80년대생 감독들이 전술없이 철학만 내세운다는 부정적인 의견도 나온다.
2020년 지휘봉을 잡은 프로배구 고희진(정관장·사진 왼쪽) 감독과 지난 5월 부임한 프로축구 전북 현대 김두현 감독.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결국 성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범호 감독은 올해 부임 첫해에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형님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김효범 감독이 이끄는 삼성은 시즌 초반 부진하다. 27일 현재 2승9패(10위). 김효범 감독은 전술의 핵심이었던 이대성이 부상으로 뛰지 못하면서 비시즌 준비한 전략을 써먹지도 못했다. 이대성이 부상을 입으면서 준비한 전술의 50%가 날아갔다. 2라운드에서도 ‘판’을 뒤집을 놀라운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김효범 감독은 “휴식기 때 훈련 방식을 좀 더 구체적이고 세분화해서 준비했다”며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선수를 존중하고 인권을 생각하는 김효범 감독의 가치관을 응원하는 이들은 많다. “한국 농구에도 이런 감독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도 한다. 다양성이 결국 리그를 더욱 풍성하고, 발전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김태술 감독까지 합류하면서 80년대생 감독들을 위한 응원의 목소리로 나온다. 한 프로농구팬은 개인 블로그에 “이기는 것도 결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도 무시하지 못한다 (…) 나는 이 팀(삼성)이 패배하더라도 충분히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감정과 느낌을 줄 수 있는, 좋은 감독이자 팀이라고 생각한다”며 “응원한다”고 썼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핫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