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국정감사에서 축구협회에 융단폭격을 가하는 치어리딩을 한 뒤 나온 발표라서 어떤 충격요법이 나올지 걱정됐지만 다행스럽게도 예상했던 수위 이내였다. 기자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유를 외치는 보수정권에서 아이러니컬하게도 더 심해진 체육단체와 갈등이 심히 우려되던 상황이었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최현준 문화체육관광부 감사관이 5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대한축구협회 특정감사 최종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문체부는 정몽규 회장 등 관련자에게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절차 부적정 등 기관 운영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물어 자격정지 이상의 중징계를 요구했다. 2024.11.05 yooksa@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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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문체부가 이러는 데는 이런저런 이유와 속사정이 있을 것이다. 사실 하나하나 놓고 보면 문체부의 주장이 딱히 틀린 부분은 없다. 규정을 만들었으면 지켜야 하는 게 맞다. 문체부가 세상의 옳고 그름, 즉 정의를 독점해서 나만 착하다고 하는 나쁜 의도를 가진 것도 분명 아닐 것이다.
◆보수정부와 체육단체의 갈등
그럼에도 최근 문체부는 축구협회는 물론 대한체육회, 배드민턴협회 등과 대치하고 있다. 대치라는 표현에 문체부가 기분이 나쁘다면 어쩔 수 없다. 근대올림픽이 출범한 이후 체육단체의 자율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절대명제를 가져다 놓고 보면 제 아무리 관리 감독권과 예산을 쥐고 있는 상급기관이라 해도 동반자이면서 대등한 관계로 보는 게 맞지 않겠나.
우리는 그동안 정부의 지나친 통제와 열성팬의 맹목적인 사랑이 얼마나 큰 부작용을 초래했는지 수많은 과거 사례를 통해 겪었다. 감독은 한 명인데 사공은 5000만 명인 게 한국 축구다. 관행이었던 감독 인선 과정의 절차적 하자를 이번에 갑자기 부각시키는 게 축구협회 집행부 사퇴를 위한 압박용 카드는 아닌지, 누가 대표팀 감독이 되든 있어온 반대 세력의 음해는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가운데)이 9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축구협회 등에 대한 현안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날 현안질의에는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뒤쪽 왼쪽부터)과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발전위원장이 참석했다. 2024.09.24 leehs@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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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기자는 지난 칼럼에서도 썼듯이 정몽규 회장의 연임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해도 위르겐 클린스만과 홍명보 감독 선임 절차의 문제 때문에 정 회장이 그만둬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사실 나머지 감사 결과야 이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가 되면서 파헤쳐진 별건 수사가 아니었나.
실제로 문체부의 감사 결과를 보면 클린스만 감독 선임 때 권한이 없는 정 회장이 화상 면접을 했다거나, 홍명보 감독 선임 때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공석인 전력강화위원장 권한을 남용했고, 면접이 아닌 협상을 했다는 식의 주장은 억지로 보인다.
그동안 이런 억지가 축구팬들의 지지를 받은 이유는 한국 축구가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집행부가 신임을 잃었기 때문이지, 문체부의 주장이 옳기 때문은 아니다. 홍명보 감독에 대한 호불호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축구협회 사태를 보는 새로운 시각
이제 다들 그만하고 축구협회 사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진단이 나와야 한다. 기자는 문체부의 감사 결과를 일부 존중하지만, 정작 한국 축구의 문제는 다른 데 있다고 확신한다.
먼저 울산 사령탑이던 홍명보 감독은 한창 선두 다툼을 하던 와중에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현역 프로 감독이 시즌 중 국가대표 사령탑으로 차출되는 것은 한국 축구에서나 볼 수 있는 참으로 특이한 현상이다. 올해 프로야구 우승팀 KIA 이범호 감독이 시즌 중 류중일 야구대표팀 감독 자리로 옮겼다고 생각해보라. 야구계는 뒤집어졌을 것이다.
[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10월 10일 요르단 암만국제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요르단과 원정경기에서 경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KFA] 2024.10.19 zangpabo@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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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정 회장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울산은 '현대맨'인 권오갑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가 구단주를 겸하고 있다. 전 구단주는 정몽준 전 축구협회장이다. 한국 축구를 30여 년간 통치해온 분들이 K리그보다 대표팀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니 K리그의 발전은 요원하다. K리그가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러 있는 한 대표팀은 절대로 성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분들은 모르는 것 같다. 이에 비해 야구는 프리미어12에 출전하는 대표팀 성적보다 국내 리그의 활성화에 총력을 기울여 온 결과 천만 관중 달성에 성공했다.
야구와 달리 축구는 월드컵 본선 진출이 국민적 관심사이니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은 바보들의 생각이다. 우리 이제 솔직해지자. 2026 중남미 월드컵 아시아 예선 결과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팬들의 일이다. 축구공은 둥글고, 이변이 나오는 게 스포츠의 매력이다.
그럼에도 32개 팀으로 늘어난 본선 진출국에 한국이 이름을 올리지 못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보나. 해외파 선수를 다 빼고, K리그 선수만 뛰어도 그럴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예선이라면 감독이 누군지도 그리 중요한 변수가 아니다.
◆예선보다 본선 경쟁력 갖추는 게 시급
한국은 예선보다 본선 경쟁력을 갖추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해외파 선수의 파견 시기를 앞당기고, 소집 후 제대로 된 훈련 시스템을 갖추는 게 급선무다.
홍 감독에게 주문하고 싶은 게 있다면, 지난 두 차례 대표팀 소집 때처럼 쓸데없는 일정에 시간을 뺏기지 말고 바로 전략훈련에 들어가라는 것이다. 최근 들어 해외파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대표팀 훈련시간은 더욱 줄었다. 홍 감독 취임 후 3차 예선에서 3승 1무를 하고 있지만 짜임새 있는 전략이 통한 장면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10월 13일 용인미르스타디움에서 훈련하는 한국 축구대표팀. [사진 = KF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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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팬들도 정말 한국 축구를 사랑한다면 좀 더 시간을 갖고 기다려줘야 한다. 그동안 역대 축구대표팀 감독은 본선에 올라가기도 전에 상처투성이가 됐다. 요하네스 본프레러 감독은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행을 조기 확정짓고도 해임됐다. 그동안 대표팀은 1948년 5월 박정휘 초대 감독 취임 이후 76년간 74번이나 사령탑이 바뀌었다. 10명의 대행 체제와 잦은 감독 공백 기간을 빼면 평균 재임 기간은 1년이 안 된다.
홍명보 감독은 이미 큰 내상을 입었다. 앞으로 한 경기만 져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언제 또 국회에 불려가고, 팬들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을지 알 수 없다. 당연하지만 다행스럽게 문체부는 홍 감독의 거취에 대해서만큼은 축구협회의 자율적 결정에 힘을 실어줬다.
이제 최소한 축구대표팀이라도 놓아주자. 2026년까지는 홍 감독에게 믿고 맡기자. 그러는 사이 축구협회와 정몽규 회장을 지지고 볶든 알아서 하시라.
zangpabo@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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