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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선수들 목숨 걸고 하잖아요, 저도 걸어야죠” 7년 만의 인천 귀환, 초심 새록새록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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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이명기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다. 초·중·고 모두 인천에서 다녔다. 인천을 연고로 한 SSG는 꿈과 같은 팀이었다. 운 좋게 인연이 닿았다. 2006년 신인드래프트에서 SK(현 SSG)의 지명을 받았다. 인천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뻤다.

활약도 좋았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리그를 대표하는 교타자 중 하나로 성장했다. 나쁜 공도 맞혀서 인플레이 시킬 수 있는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발도 빨랐다. 3할과 20도루를 할 수 있는 선수로 성장했고,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배우자도 인천에서 만났다. 그러나 2017년 갑자기 인천을 떠날 일이 생겼다. SK와 KIA가 대형 트레이드에 합의했다. 명단에는 이명기의 이름이 있었다.

당시 코칭스태프의 전략적인 판단과 선호하는 선수단 구성이 있었다. 이명기도 아쉬웠지만, 이명기를 떠나보내는 프런트와 선수단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시 이명기와 입단 동기인 1987년생들이 유독 많았던 SK이기도 했다. 그렇게 인천 야구와 인연이 잠시 끊겼다. 광주로, 그리고 2019년에는 창원(NC)으로, 그리고 2023년에는 대전(한화)으로 거처가 바뀌었다.

나름대로 성공적인 경력이었다. KIA와 NC는 이명기의 타격을 원했다. KBO리그 통산 타율이 3할 이상의 선수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 주전 선수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우승 반지가 두 개다. 하지만 한화 이적 직후 베이스러닝을 하다 발목을 크게 다쳐 장기 재활을 한 뒤 좀처럼 자신의 궤도로 돌아가지 못했다. 2024년 잠시 1군에서 뛰었지만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이명기는 그때부터 ‘은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이명기는 “한 두 달 전부터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2024년의 절반은 1군에서 다시 뛰기 위한 몸부림이었지만, 또 절반은 자신의 경력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후배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코칭스태프에 이런 속사정을 털어놓고 경기에도 나가지 않았다. 경력의 끝자락에 있는 자신이 괜히 2군의 타석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쉬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시즌이 끝나자 코칭스태프에 인사를 하고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이 이명기의 은퇴 선언을 눈여겨 본 팀이 있었다. 바로 친정팀인 SSG였다. SSG는 이명기가 팀에 있던 당시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높게 보고 있었다. 워낙 노력형 선수이기도 했고, 성품이 좋았다. 코칭스태프·동료·프런트 사이에서 소통도 좋았다. “나중에 지도자로도 좋은 재목이 될 것”이라는 리포트는 7년이 지난 지금에도 남아 있었다. SSG 관계자는 “은퇴를 발표한 직후 접촉했다”고 설명했다. 의심이 크지 않았다는 것을 상징한다.

이명기는 평소에도 옛 동료들을 만나 “야구를 그만두면 인천에서 무엇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이야기했었다. 이를 기억한 동료들이 이명기의 은퇴 소식을 접하고 구단에 다리를 놓은 것도 있었다. 이명기가 동료 및 프런트에 얼마나 큰 신뢰를 주는 선수였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던 선임 과정이었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고, 15일 공식 발표됐다. 보직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2군에서 어린 선수들의 성장을 도울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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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기의 가족들은 아직도 인천에 있었다. 광주까지는 따라 내려왔지만, 아이들이 크면서 NC 이적 후에는 가족들을 인천에 남겨두고 홀로 자취 생활을 했다. 인천으로 돌아오면서 아이들은 이제 일주일에 한 번 봤던 아빠를 매일 볼 수 있다. 이명기도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고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16일부터 강화SSG퓨처스필드로 출근해 본격적인 업무를 앞두고 배움에 들어갔다. 코치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기에 지금부터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올해 1년 대부분을 2군에서 머물렀던 게 오히려 코치 생활에 자산이 될 수 있다. 그간 쭉 1군 선수였던 이명기는 2군 선수들의 절박함을 많이 느꼈다. 코칭 기법도 예전 스타일이면 안 된다. 요즘은 유튜브로 선수들이 선진 문물을 실시간으로 본다. 제아무리 통산 3할 타자라고 해도 감이나 자신의 경험으로 설명하면 선수들이 귓등 뒤로 넘긴다. 설득을 할 수 있을 만큼 철저한 이론과 논리로 무장해야 한다. 이명기도 “근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많이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명기는 “선수들에게 어드바이스를 하는 수준이 아니라 코칭을 해야 한다. 나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선수들은 진짜 목숨을 걸고 하지 않나. 당연히 나도 목숨을 걸고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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