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앞두고 시행일도 연기
10일 금융권 및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이날 오전 증권사 임원들을 소집해 퇴직연금 실물이전 준비 현황을 점검했다. 이 자리에서 당국은 제도 시행 시점을 목표로 했던 15일에서 31일로 늦추기로 했다.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15일부터 서비스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현재로서는 도무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퇴직연금 실물이전은 기존에 보유한 연금상품을 별도의 해지 절차 없이 타사로 그대로 옮길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지금까지 퇴직연금을 다른 회사로 옮기려면 보유 상품을 모두 팔아 현금화했어야 하는데 이 같은 ‘갈아타기’와 관련한 불편함을 없앤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실물이전 제도가 400조 원에 달하는 퇴직연금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란 기대가 크다.
동아일보 DB |
고용노동부와 금융당국은 이달 15일부터 실물이전 제도를 시행하길 희망해 왔다. 금감원은 이달 8일에도 시중은행 퇴직연금 담당 임원들을 불러 실물이전 제도를 조속히 준비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금융권에서는 정부가 충분한 준비 없이 서비스를 강행하려 한다며 ‘졸속 시행’에 대한 우려가 번지고 있다. 상당수의 금융사들이 전산망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방은행 A,B사뿐 아니라 대형으로 분류되는 C보험사와 B증권사도 실물이전 서비스를 펼칠 수 있는 전산망 준비가 안 된 상태다.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시행 초기에 일부 회사나 업권만 참여한다면 ‘퇴직연금을 갈아탄다’는 제도의 도입 취지 자체가 무색해질 수 밖에 없다”며 “현 시점에서 이달 중 서비스를 시작한다면 퇴직연금 사업자 중 절반도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사간에 고객 및 상품 정보가 담긴 ‘전문’이 원활히 공유되지 않는 점도 문제다. 소비자가 퇴직연금을 갈아타려면 △현재 회사 △갈아타려는 회사 △정보중개 기관(한국예탁결제원) 등이 정보를 동시에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전 테스트 과정에서 오류, 누락이 잦아 실무진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금융권 협회 고위 관계자는 “고객 한 명이 연금계를 통해 여러 개 상품에 가입하는 걸 고려하면, 한 명의 소비자에 대한 전문을 최소한 금융사 10여 곳이 공유해야 한다”며 “우리가 전문을 보냈는데 상대방 쪽에서 ‘못 받았다’고 응답하는 경우가 아직도 비일비재하다”고 토로했다.
금융당국은 일단 이달 31일 서비스를 시행한 다음 미비한 부분을 수정, 보완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사전 테스트를 완벽하게 할 수 없는 만큼 이달 중으로 제도부터 시행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이날까지 시장 참여자들과 논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다음주 중 실물이전 제도와 관련된 준비 현황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 연금 전문가는 “퇴직연금 가입자 중심의 서비스 도입에 힘써야 하는데, 정부가 실적 쌓기에 골몰해 ‘반쪽짜리 제도’의 도입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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