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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한국 축구의 미래, ‘게임 모델’에 답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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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화성시 12살 이하팀 선수들이 3일 화성 돌모루근린공원 축구장에서 강한 패스를 받은 뒤, 달려오는 양 쪽의 수비수를 따돌리고 골을 넣는 훈련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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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년은 한 나라 축구의 미래다. 그 유소년 선수들을 지도자가 키운다. 지도자의 성실성, 노력, 자질이 한 나라 축구 역량의 핵심 요소인 셈이다. 한국의 유소년 지도자들은 선수의 입시나 진학 등 독특한 환경적 요인 때문에 압박을 받는다. 박사학위 논문 ‘축구 지도자들의 스트레스 척도 개발 및 타당도 검증’(2022·모정일)을 보면, 축구 지도자들의 스트레스는 코칭, 직무, 학부모, 운동 환경 등 4개 영역에서 비롯된다. 회비를 내는 학부모의 발언권은 훈련 중 간섭까지 ‘선을 넘어’ 이뤄지기도 한다. “학부모가 선수 선발을 한다” “아들의 실력을 과대평가한다” “팀에 대한 의견이나 민원이 많다” 등이 현장 지도자들의 목소리다.







게임 모델로 학부모 설득, 동의





3일 경기도 화성 돌모루근린공원 축구장에서 만난 김태진 화성시 12살 이하(U-12) 팀 감독은 유소년 지도자의 고충을 ‘게임모델’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극복하는 지도자다. 10년 가까이 화성시축구협회 산하 U-12 축구팀을 맡아온 그는 “감독의 축구철학과 게임모델을 학부모와 공유한다. 의견 차이가 있으면, 게임모델을 근거로 설득하고 동의를 구한다”고 했다.



게임모델은 일종의 선수 육성 설계도다. 공격과 수비, 전환, 세트피스 등 항목별로 선수 개발을 위한 코칭의 세세한 방향들이 문자로 명시화돼 있다. 대한축구협회가 최근 ‘빠르고 용맹하고 주도하는’, 이른바 ‘빠·용·주’ 축구철학에 기초해 A대표팀의 게임모델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게임모델은 23살, 20살 이하 대표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게임모델에 의해 A대표팀 감독에 대한 영입 교섭이 이뤄지고, 항목별 사후 평가가 가능하다. 유소년 축구에서도 아직 초보적인 형태지만 게임모델이 활용되고 있다.



김 감독은 “8대8로 이뤄지는 유소년 경기의 기본 전술뿐 아니라 선수들의 마음가짐이나 자세 등을 수칙으로 담아 게임모델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빌드업 과정에서 선수의 판단은 크게 패스와 드리블 가운데 하나다. 어떻게 선택할까. 길이 보이면 패스가 최우선이다. 패스를 한다면, 정확도가 강도에 우선한다. 이는 교육과 반복 훈련을 통해 몸에 자동적으로 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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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 12살 이하팀 선수들이 따라오는 수비수에 붙잡히지 않다록 빠르게 공을 몰고 달리는 훈련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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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팀이 다 일등을 할 수는 없다





태도는 더 중요하다. 즐겁게, 말 많이 하고, 자신 있게 뛰어야 한다. 만약 경미한 부딪힘에도 데굴데굴 구르며 쓰러진다면, 선수는 경기장 밖으로 퇴출된다. 김 감독은 “자신이 잘한다고 우쭐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안 된다. 더 큰 무대에서 자기보다 잘하는 아이들과 만나면 그땐 어쩔 것인가. 기분이 행동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상대 선수와 심판에 대한 존중심, 마무리 때 집중하기, 지도자의 경험이 아니라 선수가 상황을 풀어나가도록 하는 방식은 선수의 내적동기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백영철 대한축구협회 강사는 “모든 팀이 다 일등을 할 수는 없다. 모든 지도자가 우승할 수도 없다. 게임모델이 있으면 실정에 맞는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에 따라 준비할 수 있다. 정당성의 근거가 있기 때문에 학부모와 소통도 수월해지고, 성적에 대한 부담감도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화성시 U-12 팀의 5~6학년 연습훈련을 밖에서 지켜본 학부모들은 “아들이 축구를 좋아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프로선수가 되지 않더라도 축구의 재능이 나중에 살아가는 데 자산이 될 수 있다” “무엇을 하더라도 축구할 때의 각오만 있으면 된다”라고 말했다. 이는 게임모델의 공유를 통한 소통의 성공 사례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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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진 화성시 12살 이하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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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와 학부모, 선수 사이에는 정보와 신뢰





김태진 화성시 U-12 팀 감독은 게임모델 덕분에, 그동안 클럽을 거쳐 간 모든 선수의 정보를 데이터로 갖고 있다. 온라인 카페에 그날 이뤄진 선수들의 활동 일지를 올리고, 리프팅이나 줄넘기 등 개인별 과제를 평가해 자료에 반영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연간 1~4회 학부모와 개별 면담을 하고, 지도자와 학부모, 선수 사이에 신뢰가 쌓인다.



결과도 따라온다. 화성시 U-12 팀은 올해 경기도 소년체전에서 우승했고, 지난달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스페인마드컵 유소년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여했다. 김 감독은 “유소년들 축구하는 것 보면 놀랍다. 과거와 달리 초등 1학년 이른 시점부터 공을 만지면서 6학년에 이르면 선수의 기본기가 탄탄해진다. 이들이 나중에 프로 유스나 각급 대표팀으로 뽑히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고 했다.



게임모델의 유용성이 확인된 만큼 이를 확산하는 것은 과제다. 우상범 대한축구협회 유소년분과위원장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는 “협회 유소년 분과에서라도 기술연구그룹(TSG)을 만들어 유소년 축구에 적합한 게임모델을 제시할 수 있도록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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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FC 12살 이하 선수들이 8대8 미니게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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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년 지도자들도 더 공부해야





물론 게임모델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유소년 지도자들의 질적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통상 유소년 지도자들은 대한축구협회의 자격증 코스나 보수 교육 과정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한다. 하지만 일부 사설 클럽 지도자들은 학습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타이틀이 걸려 있으면, 프로 유스 팀이라고 하더라도 기술 축구가 아닌, 수비나 롱킥으로 승부에 얽매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김 감독은 “유소년 축구에서 게임모델이 정착되면, 각 팀의 지도자 철학에 따른 축구 색깔로 경쟁할 수 있다. 결승전에서 이기기 위해 유소년 선수들이 수비축구를 해야 하는 모습도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유소년 선수들을 보면 한국 축구의 미래는 밝다. 이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축구협회가 투자의 우선순위를 유소년 중심으로 혁신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글·사진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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