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나이키와 파트너십 관계를 종료한 타이거 우즈. |
"27년 전 운 좋게도 세계에서 가장 상징성 있는 브랜드와 협업하기 시작했다. 그 후의 날들은 너무 많은 놀라운 순간과 기억으로 가득해 하나하나 나열하기 시작하면 영원히 끝을 내지 못할 것이다. 다음 단계가 분명 있을 것."
세계 남자프로골프 메이저 대회를 15번이나 제패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올해 초 스포츠용품 브랜드 나이키와 파트너십 관계를 종료한다는 메시지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이로써 1996년 우즈가 프로무대를 두드릴 때부터 시작한 나이키와의 관계는 나이키가 골프사업에서 철수하는 것과 맞물려 끊어지게 됐습니다.
양측의 관계가 마무리된 것은 나이키가 골프사업을 축소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지만 일각에서는 세계 스포츠 용품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나이키 제국'이 흔들리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나이키는 최근 수년간 부진한 매출로 후발주자의 추격을 허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90년 이후 30년 넘게 1위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는 나이키가 흔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이클 조던이 1985년에 신었던 농구화. 2020년 56만달러에 낙찰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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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술과 스타가 만들어낸 '나이키 제국'
일본산 스니커즈를 유통하면서 사업을 시작한 나이키는 1970년대에 폭발적인 성장을 이룹니다. 그 전까지 없었던 '에어쿠셔닝' '와플솔' 등 신기술을 접목한 운동화는 당시 미국 사회의 달리기 유행에 힘입어 소비자의 선택을 받습니다. 이후 1980년대엔 '리복'이란 강력한 경쟁자가 나이키를 저만치 앞지릅니다. 리복은 젊은이들을 공략한 마케팅 등을 통해 1988년 기준 17억9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12억달러의 나이키를 넘어섭니다.
그러나 1984년 당시 신인이던 마이클 조던과 계약을 맺고, 1988년엔 지금까지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 'Just do it'이란 슬로건을 개발하는 등 현재의 '나이키 제국'을 구축한 행운과 경영전략이 대박을 쳤습니다. 특히 나이키는 조던과 더불어 육상의 모리스 그린, 테니스의 앤드리 애거시 등 최고 스타들과의 연이은 계약으로 '최고는 나이키를 입는다'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1990년 이후 스포츠 브랜드 1위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 미국프로농구(NBA)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조던 이후 최고의 농구 선수 르브론 제임스가 2003년 프로무대 입성을 앞두고 리복과 아디다스를 거절하고 더 낮은 계약금을 제시했던 나이키와 계약을 맺은 것도 나이키의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죠.
2018년 나이키와 계약을 마무리한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왼쪽)와 지난해 나이키와 재계약을 종료한 영국 국가대표 스트라이커 해리 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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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판매 부진에 스타 이탈까지…들려오는 적신호
그러나 최근 시장에서는 나이키에 대한 적신호가 잇따라 켜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5월 발표된 나이키의 연간 실적에 따르면 나이키는 직전 회계연도에 매출은 전년보다 10% 증가했지만 순이익은 16%나 감소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란 최악의 상황을 제외하면 나이키의 이익은 10년 만에 최저 수준이었습니다. 지난해 12월엔 올해 매출 성장률 전망을 1%로 낮춘다고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매출 부진을 상쇄하고자 향후 3년간 비용 20억달러를 절감하기 위한 구조조정에 나설 것임을 공식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구조조정에 쓰이는 직원 퇴직금만 4억~4억5000만달러가 들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나이키의 위기설은 브랜드 이미지를 책임지고 있는 스타들의 잇단 이탈과도 무관치 않습니다. 특히 세계 최고 무대인 유럽 빅클럽의 유명 선수들도 나이키를 무더기로 떠났습니다. 지난해에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카세미루와 맨체스터시티의 잭 그릴리시, 영국 국가대표 스트라이커 해리 케인와 래힘 스털링 등이 새로운 브랜드를 찾아 나섰습니다. NBA의 세 번째 최우수선수(MVP)를 예약한 니콜라 요키치 역시 재계약을 거절했습니다.
나이키의 황금기를 이끈 글로벌 스타들이 경기장에서 차차 물러나고 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은퇴)는 2018년 나이키와 계약을 마무리했고, 페더러의 라이벌인 라파엘 나달도 올해 은퇴를 예고했습니다. 나이키와 종신계약을 맺은 NBA 스타 제임스와 케빈 듀랜트도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접어든 상태죠.
새 얼굴마담을 찾지 못한 데다 기술 혁신도 예전만 못하자 나이키가 추구하는 '세계 최고 운동선수'라는 이미지도 퇴색되고 있습니다. 한 예로 2019년 세계 육상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 22명 중 나이키 운동화를 착용한 선수는 17명이었습니다. 스우시(나이키 로고)가 없는 신발을 신은 1등은 5명에 불과했죠. 그러나 4년 만에 판세는 뒤집힙니다. 나이키 신발을 신은 금메달리스트(10명)보다 그렇지 않은 선수(12명)가 더 많아진 것이죠.
팬데믹·인플레에 섣부른 유통망 개혁이 부른 '늪'
나이키가 흔들리고 있는 1차적 원인은 글로벌 경제가 침체를 겪었기 때문입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이후 물가 상승 압박과 국제 정세 악화에 따른 공급망 붕괴는 제품값 인상과 매출 부진으로 이어졌죠. 여기에 2017년부터 추진 중인 나이키의 DTC(Direct to Consumer) 전략이 어려움을 가중시켰습니다. 나이키는 자사 제품을 판매하는 도소매업자들과 계약을 점차 축소하고 오프라인 직영점과 온라인을 통한 판매로 유통 구조를 혁신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충성도 높은 고객들이 여러 브랜드가 함께 판매되는 멀티숍보다는 자사 매장에서 직접 구매할 것이라고 확신했고, 이를 통해 유통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전략이죠. 이로 인해 '나이키 라이즈' '나이키 혁신하우스' 등 5가지 콘셉트의 글로벌 매장과 4가지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공격적으로 구축했습니다.
한동안 DTC 전략은 효과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나이키가 유통의 힘을 과소평가했다고 분석했습니다. 고객들은 주머니가 가벼워지면 특정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지고, 이로 인해 '가성비'를 찾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톰 니키치 웨드부시증권 부사장은 "나이키가 시장을 잘못 판단한 부분은 소비자가 여전히 선택권을 원하고 멀티브랜드 소매업체를 찾을 것이라는 점을 간과했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투자은행 제프리스앤드컴퍼니는 "고객이 어디에서나 나이키를 구매하길 원하기 때문에 돌이켜보면 도매를 급격하게 줄이는 것은 잘못된 조치처럼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나이키와 종신계약을 맺은 NBA 스타 르브론 제임스. 그는 나이키 황금기의 상징이다. AP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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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보단 안정' 더 이상 새롭지 않은 나이키
언제나 시장을 선도했던 혁신이 실종된 것이 나이키의 근본적인 문제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나이키는 팬데믹 기간에 매출 하락을 막기 위해 '에어포스1' '에어조던1' 등 메가 히트를 쳤던 기존 상품들의 색상과 디자인을 바꾸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모험보다는 안정을 선택한 것이지요. 2020년 나이키가 출시한 운동화 '알파플라이'는 획기적인 기능으로 주목받았지만 과도하게 높은 가격대 때문에 대중을 휘어잡는 데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나이키가 혁신은 정말 잘하지만 지금 잘못된 혁신을 계속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나이키가 주춤하는 사이 러닝화 시장에는 새로운 경쟁자들이 치고 올라왔습니다. 스포츠 기업 데커스가 출시한 러닝화 '호카'는 두꺼운 밑창으로 러닝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으며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2022년 호카의 매출은 14억달러인데 이는 2019년 2억2300만달러보다 6배 넘게 불어난 것입니다.
나이키를 떠난 페더러가 투자한 스위스 러닝화 브랜드 '온러닝'도 주목할 만한 '신성' 중 하나입니다. 해당 브랜드를 소유한 기업 온홀딩은 2022년 매출이 전년보다 69% 뛴 13억달러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재가동 시작한 나이키, "혁신 되찾을까?"
나이키도 이 같은 문제점을 재빨리 알아채고 재정비에 나서고 있습니다. 맷 프렌드 나이키 최고재무책임자는 지난달 에어포스1 등 전통적 히트작의 공급을 줄이고 러닝화 분야를 부활시키는 데 집중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해부터 풋락커 등 신발 소매업체들과 계약을 다시 체결하는 등 유통망 재구축에도 힘을 쏟고 있지요. 그러나 전문가들은 나이키의 정체성인 혁신 없이는 어려움은 계속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니키치 부사장은 "새롭고, 흥미롭고, 소비자가 이전에 본 적이 없는 것을 내놓는 것이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나이키는 더 이상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모든 것을 만들 수 없다"며 "나이키가 지닌 강점을 부각하는 경영전략이 필요한 때"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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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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