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사람들’ TV부문서 3관왕
한국계 미국 배우 스티븐 연이 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버리힐스의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티븐 연은 이날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로 TV 미니시리즈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연합뉴스 |
한국계 감독과 배우들이 한국적 소재로 현대인의 보편적인 정서를 관통한 드라마가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새 역사를 썼다.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원제 Beef)이 7일(현지 시각) 미국 LA 베벌리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 단막극 부문 작품상과 남녀주연상 등 3부문 후보에 올라 해당 부문을 모두 석권했다. ‘성난 사람들’은 대형 마트 주차장에서 난폭 운전으로 얽히게 된 두 남녀의 연쇄 복수극이다. 10부작으로, 지난해 4월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이날 남우주연상은 영화 ‘미나리'의 배우인 한국계 스티븐 연(41), 여우주연상은 중국·베트남계 엘리 웡(42)이 각각 수상했다. 아시안계 배우가 두 부문에서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뉴욕타임스 등 현지 언론은 두 배우의 수상을 두고 “골든글로브 역사를 새로 썼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골든글로브는 크게 영화와 TV 부문으로 나눠 시상한다. 영화는 다시 드라마와 뮤지컬·코미디로, TV는 1시즌으로 끝나는 단막극과 2시즌 이상 이어지는 시리즈 부문으로 나눠 각각 상을 준다.
스티븐 연은 이날 수상 소감에서 “제가 외롭고 고립된 줄로만 알았는데, 시상대에 올라와 보니 생각나는 건 다른 모든 사람들”이라며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건 ‘겨울왕국’ 스토리네요”라고 말해 참석자들의 폭소가 터졌다. 그는 “이틀 전 ‘겨울왕국’을 함께 본 딸, 그리고 아내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엘리 웡은 수상자로 호명되자 옆자리에 앉은 남자친구이자 배우인 빌 헤이더에게 키스한 후 시상대에 올라가 “제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베스트 프렌드인 저스틴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저스틴 하쿠타는 엘리 웡의 전 남편이며,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 조카의 아들이다. 스티븐 연과 엘리 웡은 오는 15일 열리는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상인 에미상 남녀주연상 후보로도 올라있다.
미국 LA에서 7일(현지 시각) 열린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 단막극 부문 작품상·남녀 주연상을 석권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의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과 이성진 감독, 중국·베트남계 배우 엘리 웡(왼쪽부터)이 트로피를 들고 웃고 있다. 이 감독이 각본을 쓴 ‘성난 사람들’은 분노를 삼키고 살던 아시아계 이민자들을 통해 코로나 시대 현대인들의 보편적 심리를 그대로 보여줬다는 호평을 받았다. /EPA 연합뉴스 |
‘성난 사람들’의 원제인 ‘beef’는 불평 혹은 불만이라는 뜻. 극 중에서 스티븐 연은 20년 된 트럭을 모는 수리공 대니로, 엘리 웡은 벤츠 SUV를 모는 성공한 사업가 에이미로 출연한다. 두 사람은 그동안 영화·드라마에서 순하고 얌전하게 그려졌던 아시아계 이민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엎는다. 겉보기엔 착실하고 유순하지만 ‘착한 아들’이나 ‘착한 아내’가 되기 위해 분노를 억누르고 사는 아시아계 이민자의 삶을 입체적으로 그렸다. 서로에게 분풀이를 해대며 파멸을 향해 액셀을 밟는 두 남녀의 이야기는 코로나 기간 더 깊어진 사람들의 고립감과 분노를 건드렸다는 평을 받았다.
각본을 직접 쓴 한국계 이성진(43) 감독은 실제 당했던 난폭 운전에서 플롯을 착안했다. 그는 “집필하면서 코로나 유행 이후 보복 운전이 늘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됐다”고 했다. 현지 언론들은 ‘한국계 감독의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했지만, 현대인의 보편적인 정서가 담겼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는 ‘성난 사람들’을 “지난해 나온 가장 활기차고 놀랍고 통찰력 있는 데뷔작”이라고 극찬하며 “개인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지극히 구체적인 분노에 대한 연구”라고 평했다.
‘성난 사람들’에는 설렁탕, 라면, 카카오톡, 안마의자, LG전자 제품 등 한국적인 소재가 매우 구체적인 묘사와 함께 등장한다. 대니는 카카오톡을 통해 부모님과 영상 통화를 하고, 대니의 엄마는 “(한인) 교회에서 좋은 한국 여자를 만나라”며 성화다. 등장인물들은 라면에 계란을 풀어 끓여 먹고, 설렁탕을 시켜 놓곤 식탁에 먼저 깔린 깍두기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신다. 또 새로 지은 집에는 “LG 가전을 들였다”며 뿌듯해한다.
이 같은 묘사는 한국계 미국인인 이 감독의 발상이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9개월 때 미국으로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초등학교 3~5학년을 보내고 미국으로 돌아가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영어 이름은 소니. 하지만 모든 공식 크레디트에 자신의 이름을 한국식인 ‘이성진(LEE SUNG JIN)’으로 표기한다. 그는 어릴 적 미국인들이 자신의 한국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지난해 8월 방한 인터뷰에서 “미국인은 봉준호 감독 이름을 말할 때 실수하지 않고, 정확히 발음하려고 노력한다”며 “제가 좋은 작품을 만들면 미국인들이 제 한국 이름을 듣고 웃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은 영어판을 비롯한 모든 공식 문서에서 이름을 한국식으로 ‘Bong Joon-Ho’라고 표기한다. 이 감독은 “‘성난 사람들’의 후속편에 대한 아이디어가 이미 준비됐다”며 “제작 여부는 넷플릭스에 달렸다”고 밝혔다.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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