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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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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공습’에 K-드라마 위기…“톱스타 없이도 좋은 드라마 나와야” [2023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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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드라마 산업의 위기,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극복?

OTT의 공습에 편당 제작비 15억 수직상승

방송사·제작사 감당 못해 편수 줄이는 추세

“배우·작가 이름값 없는 좋은 작품 필요”

헤럴드경제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올해 K-드라마 산업은 ‘오징어게임’ 이후 글로벌화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위기 상황이라는 진단이다.



최근 몇 년 새 드라마 제작비가 수직 상승하면서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방송국이나 제작사가 드라마 제작을 대폭 줄이고 있어서다. 이와 함께 중소형 규모의 드라마는 대형 드라마에 밀려 설 자리를 잃었고, 기대작들은 자본의 논리에 밀려 완성도가 떨어지는 등 ‘진퇴양난(進退兩難)’의 형국이었다.

28일 방송계 등에 따르면, 최근 드라마 제작비가 편당 15억원 수준으로 치솟는 등 비용 부담이 급증했다.

이처럼 제작비가 급등한 것은 넷플릭스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의 공습이 영향을 미쳤다. 국내 톱스타와 최고의 제작진 등이 의기 투합한 작품이 넷플릭스에 편성돼 인기를 끌면 제작비 회수는 따논 당상이었다. 이 과정에서 국내 배우가 월드스타가 되면서 배우의 출연료는 천정부지로 올랐다.

실제로 편당 15억원의 제작비 중 절반 정도는 주연 배우의 출연료로 들어간다. 하지만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외에 이를 감당해낼 만한 국내 제작사와 방송가는 별로 없다. 방송사가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외주사에 주고, 나머지는 외주사가 협찬 등을 통해 제작비를 확보하는 국내 제작 프로세스를 고려할 때 현행 편당 제작비는 방송사가 부담할 수 있는 임계치를 넘은 것이다.

실제로 방송사나 제작사가 감당해낼 수 있는 회당 제작비의 최대치는 10억원선 정도로 알려졌다. 이를 초과하는 드라마는 방송사가 성공을 시켜도 제작비의 ‘리쿱(회수)’이 불가능해진다. 흥행과 편성을 위해 남자 주인공은 톱배우를 기용해 회당 3억~5억원을 쓰고 나면, 여자 주인공은 회당 1000만~2000만원의 출연료를 받게 되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규모의 경제 내에서 K-드라마가 성장해나갔다면 그런대로 드라마 제작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이제 이러한 규모의 경제는 완전히 무너졌다.

여기에 지상파 방송사는 드라마를 편성해도 광고가 몇 년 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지상파에서는 ‘미니시리즈를 만들면 몇 억, 몇 십억 적자’라는 말도 들릴 정도로 지상파의 채널 장악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이에 드라마의 띠 편성이 사라졌다. KBS의 경우 수목 드라마는 사라지고, 월화 드라마도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드라마 제작 편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이미 만들어 놓은 드라마들도 편성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가 두 가지 부류로 나눠지게 됐다. 제작비를 많이 확보해 스타를 쓸 수 있는 넷플릭스나 디즈니+의 글로벌 OTT 드라마와 제작비가 적어 본의 아니게 소소하게 된 로컬 드라마다.

문제는 전자를 지향하다 잘 안되니 후자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바닥을 친 지상파 드라마의 각성도 간혹 눈에 띈다. 과거 작법과 방식이 섞여있지만 돈이 적다고 대충 만드는 게 아니라 내실을 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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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례대첩


일례로 지난 25일 종영한 KBS 월화드라마 ‘혼례대첩’은 적은 제작비로 뛰어난 연출과 의상, 조명, 미술에서도 완성도를 높여 사극의 풍부한 볼거리를 살린 퓨전 멜로사극을 만들어냈다. 주연 배우는 톱스타급이 아닌 로운과 조이현이며, 하수진 작가의 대본도 인상적이었다. 마지막회(16회) 시청률도 5.8%로 나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같은 드라마 생태계에서는 K-드라마의 성장을 더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우선 드라마 제작 편수 자체가 줄어들면서 국내외에서 히트할 수 있는 한류 콘텐츠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창작자들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한 해에 제작된 120편에서 히트작이 많이 나올지, 70편에서 많이 나올지는 물을 필요가 없다.

뿐만 아니라 K-드라마들이 초심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시청자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이 크게 히트하면서, 이를 K-콘텐츠의 갈 길이라고 제시했다. ‘오징어 게임’만 해도 장르물이면서 서사도 촘촘했다”면서 “최근에는 장르의 외형만 가지고 오면서, 콘텐츠의 내실이 없는 드라마가 많다. 자본의 논리로 가다보니 그런 현상이 생겼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자본의 논리로 장르의 외형만 가져온 콘텐츠들이 난무하면서 글로벌 OTT 콘텐츠 중에서도 완성도가 떨어지는 시리즈물들이 속출하고 있다. 최근 시즌2를 공개한 ‘스위트홈’이 시청자들의 혹평을 받고 있고, 파트1과 파트2를 합쳐 무려 7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경성크리처’도 이야기가 늘어지면서 서사가 잘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다. 정덕현 평론가는 “내년은 로컬(드라마)의 역공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글로벌(드라마)이 지겨워질 수도 있다”는 예측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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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홈2.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려면 톱스타와 톱작가를 쓰지 않는 방법이 있다. 유건식 건국대 겸임교수는 “넷플릭스에서 제작비 단가를 올려놔 국내 방송사는 이를 따라갈 수 없다”면서 “어차피 해외에 가면 톱배우가 누군지 알 수가 없고, 시즌제로 제작되는 경우 톱스타는 오히려 힘들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출연료가 많지 않은 배우와 원고료가 높지 않은 작가들로 성공하는 드라마가 자주 나와야 드라마 제작의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 겸임교수는 또 “현재는 드라마가 하나 히트해도 제작사가 동반 상승하지 않는다. 수익성도 따라오지 않고, 지적재산권(IP)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라면서 “드라마 산업의 선순환을 만들려면 '동백꽃 필 무렵'이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처럼 톱스타를 쓰지 않고도 좋은 드라마,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도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라면 신인이라도 과감하게 기용하고, 좋은 작품이라도 신인을 기용할 수 있는 풍토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스타들 몸값 타령만 하지 말고, 배우에게 얹혀가는 드라마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K-드라마의 성장을 위해서는 새겨봐야 할 조언이다.

OTT도 넷플릭스가 독주하는 가운데, 디즈니+와 애플TV 등 다른 글로벌 OTT는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점도 드라마 산업의 다양성과 건강함을 악화시킨다. 그나마 올해는 ‘무빙’이 넷플릭스가 아닌 디즈니+에서 히트해 다양한 플랫폼이 만들어지는 가능성을 보여주기는 했다. 티빙과 웨이브의 연간 적자가 심화되고 있는 등 토종 OTT도 해외 진출 등 돌파구를 찾아야 할 때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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