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도울 사람은 많은데 곳간이 마른다...“선진국들 지원과 관심 절실”

조선일보 류재민 기자
원문보기

도울 사람은 많은데 곳간이 마른다...“선진국들 지원과 관심 절실”

서울맑음 / -3.9 °
라스무스 에젠달 유엔세계식량계획 공여국장 인터뷰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라스무스 에젠달 유엔세계식량계획 공여국장이 본지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WFP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라스무스 에젠달 유엔세계식량계획 공여국장이 본지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WFP


“구호 단체들이 기존의 지원을 1% 줄일 때마다 극심한 식량 위기 인구에 40만 명이 추가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저희가 처한 상황을 보면, 지원 사업하는 곳에서 많게는 기존 지원의 절반까지 끊어야 하는 실정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지원 규모를 크게 늘렸던 세계 각국 정부들이 돈을 거둬들이고 있는데, 구호가 필요한 곳은 여전히 많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라스무스 에젠달(50·덴마크) 유엔세계식량계획(WFP) 공여국장은 현재 WFP가 심각한 자금난에 처해 있다며 국제 사회의 지원과 관심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했다. 그는 팬데믹 종료로 인한 세계 각국의 인도적 지원 예산 감소 고물가·고금리 현상으로 인한 경제 둔화 기후 변화의 삼중고를 겪으며 WFP의 곳간이 말라가고 있어, WFP의 주요 지원국들을 다니며 관심과 지원의 필요성을 환기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같은 이유로 지난 주 한국을 찾아 정부 관계자 및 시민 단체 관계자 등과의 일정을 소화한 그는 WFP가 기후 변화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고도 했다. 기후 변화 문제를 특이 현상으로 취급해 단순히 지원을 늘리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이를 ‘뉴 노멀’로 받아들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WFP는 WFP는 유엔 산하기구로, 세계 80여 저개발국에서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으로 이렇게 바쁜 시기에 한국을 찾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이번에 방한한 이유는 중요한 임무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극심한 식량 위기에 시달리는 인구가 늘고 있는데 수혜자를 돕기 위한 WFP의 자원은 줄어들고 있다. 공여국장으로서 나의 역할은 그 재원 마련을 위해서 앞장서고 우리가 도와야 할 사람들을 돕는 데 있다. 한국은 WFP와 오래된 협력 관계를 갖는 국가로서, 지난 10년간 한국이 세계의 빈곤 인구들을 지원하는 데 많이 앞장서 왔다. 경제 규모의 발전만큼 우리에 대한 지원도 그 규모가 크게 늘었고, 식량 위기를 포함한 전 세계 위기 상황에 대해 많이 개입을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기도 하다. 아프가니스탄·시리아·에티오피아·소말리아 그리고 최근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등에서 WFP는 항상 대한민국의 지원에 기대고 있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WFP에 협력하는 정부 부처들과 현황을 나누고 도울 방법을 함께 찾기 위해서 한국에 왔다. (지원 규모의 순위를 따지자면 전 세계 국가 중 한국이 10위 정도 된다는 것이 WFP의 설명이다)

-WFP의 재원이 줄어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이었던 4년 전을 돌아보면 극심한 식량 위기에 시달리던 인구가 전 세계 1억 3000만명 전후 규모였다. 그런데 두 사건 이후로 그 숫자가 3배 정도인 3억 8000만명 가량으로 폭증했고 현재는 3억 30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많은 국가와 정부들이 이런 위기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서 지원 예산을 많이 올렸는데, 올해부터는 그게 끊겼다. 인도적인 수요는 계속 늘고 지원해야 할 곳이 여전히 많은 상황이지만 세계 각국의 예산 규모가 코로나 팬데믹 이전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의 둔화, 물가 폭등, 정부 세수의 부족 등의 문제가 전세계 선진국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어 정부 입장에선 예전과 같은 투자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래서 WFP는 사업을 우선순위화하고 규모를 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

=현재 3억3000만명 정도가 극심한 식량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는데, WFP 측에서 지원을 1% 줄일 때마다 거기에 40만명이 더 추가가 된다. 그런데 현재 WFP가 지원하는 국가에서 지원을 1%가 아니라 10%, 20%, 30%, 심지어 어떤 곳은 50%까지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식량 불안을 겪게 될 위기라는 의미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곳의 사람들이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인터뷰 당시 이스라엘군과 하마스가 휴전 중이었다)


=일단 현재 가자지구에서 양측이 합의한 임시 휴전으로 분쟁이 잠시 멈추고 우리가 구호품을 들고 들어갈 수 있게 돼 매우 기쁘다. 그러나 지금 들어간 물품들도 그곳에서 필요한 수요를 충족하기엔 턱없이 모자라고, 재고는 거의 바닥 수준이다.

이미 전쟁 이전부터 200만명의 가자지구 인구 중 140만명 정도가 식량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지금 가자지구 안에 있는 전원이 이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가자지구 내의 상업 기능이 아예 멈춘 상황이기 때문에, 그 곳 사람들은 구호품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 통로가 하나 뿐이고, 허용된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며칠동안 구호품이 반입돼도 필요한 모든 것을 들여올 수 없는 상황이다. 휴전이 계속된 지난 며칠간 반입된 식량은 20만명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이것도 구호가 끊기면 얼마 안 가 다 소진될 예정이다. 때문에 휴전보다는 영구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며, 그곳의 주민들이 생필품과 필요한 음식에 접근 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국경 횡단을 허용해야 한다.

-전쟁 지역의 최소한의 인도적 도움이 하마스 등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인도주의적 상황에서 우리의 첫 번째 책임은 굶주림으로 인한 인명 손실을 막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책임이며, 그것이 우리가 그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이유다. 우리는 이 위기 이전에도 가자지구에서 오랫동안 지원 사업을 해 왔기 때문에, 식량이 목표하는 사람들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통제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다.

일단 현지 파트너가 있어 지역 사회를 잘 알고 있고,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식량이 돌아가도록 하는 과정을 잘 갖추고 있다. 또 생체 인식 등의 방법을 동원한 신원 확인 과정도 철저히 거친다. 활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 식품이 잘 전달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우리를 지원하는 파트너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00% 공정하게 이뤄진다고 보장할 수는 없겠지만, 최상의 공급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투입하고 있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라스무스 에젠달 유엔세계식량계획 공여국장이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WFP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라스무스 에젠달 유엔세계식량계획 공여국장이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WFP


-최근 발생한 이스라엘·하마스, 러시아·우크라이나 두 전쟁이 식량 공급 활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두 전쟁은 성격이 판이하다. 가자지구의 경우는 안보 측면에서 접근이 어렵고, 갈등을 둘러싼 매우 어려운 정치적 이해 관계가 많다는 점에서 해결이 어렵다. 그러나 이 분쟁이 협소한 지역에서만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큰 규모의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반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보다 여파가 훨씬 크다. 7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우크라이나를 떠났고, 인도적인 구호 활동의 측면에서 여파가 훨씬 크고 광범위했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크라이나를 벗어나서도 영향을 주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아주 큰 식량 생산지이자 수출국이었고 흑해를 통해서 많이 식량을 배출하는 곳이었는데, 전쟁으로 이런 기능이 멈춰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주게 됐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지점은 갈등이 쉽게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계속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해 전 세계가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고, 그 때문에 갈등을 해결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수단, 차드,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우크라이나, 가자지구 등 분쟁이 있는 많은 상황에서 이런 현상이 목격된다. 그래서 WFP는 가자지구나 우크라이나에서처럼 점점 더 안전하지 않은 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분쟁 지역들은 점점 더 불안정해져,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데 과거에 비해 훨씬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많은 국가에서 지원 규모를 확장해야 하고, 훨씬 더 적대적이고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구호 활동을 해야 한다. 동시에 이런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자원도 점점 줄고 있다.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이다.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책도 세우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 몇 년 간 식량 확보가 시급한 사람들의 수가 세 배로 증가했다고 앞서 말했다. 그 주요 원인으로 보통 세 가지를 꼽는데, 첫 번째는 분쟁, 두 번째는 코로나 팬데믹이나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촉발되는 경제적 충격, 세 번째가 기후 변화다.

우리는 기후 변화가 가장 취약한 국가에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이 가장 적은 가난한 나라들이 가장 잔혹한 대가를 치르고 있으며, 기후 위기의 여파에 크게 시달리고 있다. 예를 들어 소말리아의 경우 10~20년 전만 해도 큰 가뭄이 6~7년에 한 번 정도 발생했다. 가뭄이 주기적으로 찾아왔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기후 변화 때문에 지난 5년 내내 가뭄이 계속됐다. 기후 변화는 더 이상 자연 재해라는 변수가 아니라 새로운 일상, 뉴 노멀로 자리 잡은 상황이다.

때문에 기후 변화에 대한 해결책을 더 이상 인도주의적인 방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주민들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할 수 있도록 내다보고 대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 단체들이 해야 할 일이다. 가뭄에 더 강한 작물을 도입하고, 기후 예측에 기반한 준비를 늘리는 등의 대책을 새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전에는 이런 부분들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 기후 변화에 대한 복원력을 높이기 위해 장기적인 투자를 해야 하고, 더 나은 사회 보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뉴스레터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39

국제퀴즈 풀고 선물도 받으세요!https://www.chosun.com/members-event/?mec=n_quiz

[류재민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