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3.5% 7연속 동결
수출 회복세 예상보다 더뎌
소비·투자 부진 우려 심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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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30일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로 하향조정하며 글로벌 경기 둔화를 예고했다. 지난 8월 당시 내놨던 2.2%에서 0.1%포인트 낮춰 잡은 것으로, 수출 회복세가 예상보다 더딘 데다 고금리로 소비가 부진하면서 경기 하방 위험을 반영한 것이다.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한은은 이날 기준금리를 연 3.50%로 7연속 동결에 나섰다.
반면 내년 소비자물가 전망치는 기존 2.4%에서 0.2%포인트 높인 2.6%로 상향 조정했다. 한은이 성장률 전망치는 낮추고, 물가 전망치는 높이면서 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을 나타내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이 지속될 전망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이날 오전 9시부터 열린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현재 연 3.50%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금통위는 앞서 2, 4, 5, 7, 8, 10월 회의에서 잇따라 기준금리를 동결했는데 올해 마지막 금통위인 이날 다시 금리 동결에 나서면서 7회 연속 동결 행보를 이어갔다.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8%로 예상치를 상회하고, 물가 목표(2%) 도달 시점이 지연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금리인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중국 경기 부진 여파로 우리나라 수출 회복세가 더딘 데다 금융이자 부담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금리를 추가 인상하기는 부담스럽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최근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상이 사실상 종료됐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한미 금리격차 확대에 대한 우려가 줄었다는 점도 한은의 금리동결에 힘을 실었다. Fed의 대표적 매파 인사인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는 최근 현재의 정책이 성장을 둔화시키고, 인플레이션을 2%의 목표치로 회복시킬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고 확신한다고 언급했다. Fed의 금리인상이 끝났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면서 시장에서는 내년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현재 최대 2%포인트까지 사상 최대로 벌어진 미국과의 금리격차가 더 확대될 경우 금융·외환시장 불안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금리인상 종료는 한국의 통화정책 결정에 부담을 덜어주는 요인이 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12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는 최근 물가 안정과 실물 경기 침체 우려로 Fed가 금리 동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내년 글로벌 경기둔화가 본격화하면서 금리 인하가 시작될 것"이라며 "고금리로 인한 국내 금융시장 불안, Fed의 피벗(통화정책 전환) 가능성, 국내 경기회복 미약 등으로 한국 역시 추가 인상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3%대 후반 고물가 상황과 가계부채 증가세는 여전히 부담이지만, 최근 원·달러 환율과 국제유가가 다소 진정되면서 경기부진과 금융안정에 보다 무게를 두고 통화정책 결정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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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반도체 살아나도…내수·수출 부진 우려
한은은 이날 수정 경제전망 발표를 통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1.4%로 유지하고, 내년 성장률 전망을 2.1%로 하향 조정했다. 앞서 한은은 지난 8월 올해 성장률은 지난 5월과 동일한 1.4%를 유지하면서도, 내년 성장률은 2.3%에서 2.2%로 낮춘 바 있는데, 단 3개월여 만에 다시 내년 성장률을 낮춰 잡았다. 전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을 기존 2.1%에서 2.3%로 올린 것을 고려하면 한은이 그만큼 내년 한국 경제를 어렵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기획재정부(2.4%)나 국제통화기금(IMF·2.2%) 등과 비교해도 한은 전망치는 낮은 편이다.
한은이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한 것은 그만큼 내년 경기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크다는 의미다. 반도체 경기는 최악을 지나 조금씩 회복되고 있지만, 지난 2년간 진행된 긴축 효과가 본격화되면서 소비를 중심으로 내수가 나빠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우려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 중국 경기가 내년에 부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한은이 내년 성장률 전망을 보수적으로 판단한 요인으로 해석된다.
우선 한국 경제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경기는 내년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들어 20일까지 수출액은 337억9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 늘었는데, 이는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의 교역량 회복이 큰 영향을 미쳤다.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거래 가격이 반등하면서 반도체 수출이 바닥을 찍고 되살아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은이 전날 발표한 11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도 반도체를 중심으로 전자·영상·통신장비 등 제조업 체감 경기가 대폭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반도체 수출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불안 요인이 더 많은 상황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보복소비가 늘면서 반도체 부진의 빈자리를 채워줬던 소비가 최근 나빠지고 있다. 물가가 여전히 3%대로 높은 가운데, 고금리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소비 심리가 위축된 영향이다. 이달 비제조업 체감 경기의 경우 2020년 12월 이후 1년11개월 만에 가장 나쁜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산업연구원도 최근 내년 경제성장률을 각각 2.2%, 2%로 비교적 낮게 전망하면서 민간소비 부진을 핵심 요인으로 꼽았다.
주택 경기 부진과 막대한 가계부채도 내년 성장률 하방 요인이 될 것이란 우려가 많다. 부동산 시장은 올해 들어 서울을 중심으로 가격이 반등하는 조짐을 보였지만 최근에는 다시 고금리 여파로 주춤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반도체 등 설비투자는 소폭 증가해도 건설투자는 미분양 증가 등으로 감소 추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우리나라는 주택담보대출 등 부동산 관련 가계부채가 많기 때문에 부동산 경기 부진은 소비에도 부정적이다. 지난 9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875조6000억원에 달해, 내년까지 고금리 국면이 이어지면 가계 이자부담이 늘어 소비와 내수에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가계·기업의 이자부담이 크게 늘고 있는 점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 금융시장 불안이 여전한 점도 통화정책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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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韓 성장률 핵심은 여전히 '중국 경기'
반도체와 내수 상황이 엇갈리는 가운데, 내년 우리나라 성장률에는 중국의 경기 회복 정도가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중국은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인 헝다(에버그란데)와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 등이 자금난을 겪으며 올해 수출뿐 아니라 내수도 크게 둔화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당국의 지속적인 부양책으로 최근 상황이 다소 개선됐다. 경제성장률도 1분기 4.5%, 2분기 6.3%, 3분기 4.9%로 당초 목표인 연 5% 성장에 바짝 다가섰다. 이에 따라 OECD와 IMF 등도 내년 중국 성장률 전망을 최근 소폭 상향 조정했다.
다만 OECD, IMF 등은 여전히 내년 중국 성장률을 올해보다 낮은 4%대로 보고 있어, 중국 성장률 회복에 따른 긍정적 파급효과를 크게 기대하기도 힘들다는 지적이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국은 지난해 3% 성장률을 기록했기 때문에 올해 5%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그렇게 인상적인 숫자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에 설령 중국 경기가 반등해도 과거와 달리 중국의 내수화가 많이 진행된 만큼 한국 경제에 과실이 많이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내년 경기 전망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미국 경제도 핵심 변수다. 미국 경제가 경착륙 없이 내년에도 성장세를 이어간다면 올해 실적이 좋았던 자동차 등을 중심으로 대미 수출이 증가세를 이어갈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우리나라도 수출 타격이 불가피하다. 골드만삭스와 UBS 등은 내년 미국의 연착륙을 전망하는 반면, 시장 일각에서는 경착륙을 전망하기도 하는 등 미국 경제를 둘러싼 의견이 엇갈린다. 허 교수는 "대외 부분이 중요한 우리나라 입장에선 미국 경기가 갑자기 꺾여버리는 것이 무서운 점"이라며 "중간 정도로만 간다면 한은이 내년 성장률 전망을 크게 하향 조정할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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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성장률 하락 전망…내후년도 걱정
한은은 2025년 경제성장률은 2.3%로 전망했다. 이는 앞으로 한국 경제가 과거와 같은 성장세를 회복하기 힘들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령화, 저출산이 심화되는 가운데, 뚜렷한 신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는 만큼 잠재성장률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앞서 고물가 시기가 지나면 한국의 중립금리가 하락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고, 최근에는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국제결제은행(BIS) 사무총장도 "이 총재의 의견에 동의한다"며 한국의 잠재성장률, 중립금리 하락을 예상했다. 허진욱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년에는 수출이 좋아지면서 성장률이 2%대 잠재 성장 경로로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앞으로 잠재성장률이 굉장히 빠르게 내려갈 것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기존 2.4%에서 0.2%포인트 상향 조정된 2.6%로 제시했다. 지난달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을 통해 "국제유가와 환율의 파급 영향,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등으로 물가의 상방 리스크가 높아져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로 수렴하는 시기가 당초 예상보다 늦춰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물가전망 상향 조정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내후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1%로 전망했다.
한은이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물가 전망치는 높이면서 향후 통화정책에 미칠 파장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중동전쟁 변수가 여전하고 글로벌 경기 둔화, 중국의 경기 부진 영향으로 수출의 회복세가 더디면서 성장흐름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물가에 대응한 긴축적인 통화정책이 이어지면서 투자·소비 위축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경기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더디고, 이로 인해 수출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면서 "수출과 소비가 부진한 상황에서 정부 역시 세수 결손 문제로 정부 소비지출을 끌어올려 경기를 부양할 수 없다는 점에서 최악의 경우 내년 1%대 성장률도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고 진단했다.
한은의 전망대로 물가 목표(2%) 수렴 시기가 늦춰지는 점도 변수다. 10월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8%로 예상치를 상회, 인플레 우려가 재차 불거지는 상황이다. 정부가 내세웠던 '10월 물가 안정론'이 예상을 빗나가면서 뒤늦게 물가관리에 나서고 있지만 둔화 속도가 빠르지 않으면서 물가 목표 수렴 시기도 당초 예상보다 늦춰질 것이란 전망이다. 물가 목표 달성 시기가 늦춰지면 한국의 금리인하 시점도 늦춰질 수밖에 없다.
최종금리 도달, 금리인하는 내년 3분기
미국과 한국의 기준금리가 사실상 최종금리에 도달했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시장의 관심은 금리인하로 향하고 있다. 권효성 블룸버그코리아 이코노미스트는 "물가둔화 속도가 예상보다 더디면서 한은의 금리인하 시점을 내년 2분기에서 3분기로 수정했다"면서 "미국 경기도 예상보다 견조하면서 내년 중반까지는 금리인하가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는 "미국의 물가 둔화 속도가 한국보다 빠른 데다 한미 금리격차 등을 이유로 한국이 미국보다 먼저 금리인하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이 내년 2분기 말쯤 금리를 인하하면 한은이 3분기에 금리를 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준금리 동결 관련 기자회견 하는 파월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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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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