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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미술의 세계

[유석재의 돌발史전] 선무당을 위한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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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에리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뛰어난 전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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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모차르트(왼쪽)와, 살리에리.


청운의 꿈을 품고 “위대한 ○○○가 되겠어!”라고 뜨거운 마음을 진정시키며 결심했던 기억. 그리고 그것이 그 후의 인생에서 길고 짧은 동안 가슴 깊이 간직한 불씨가 되었던 그 대목. 저녁노을이 짙게 깔린 언덕에서 촉촉이 물기어린 눈빛으로 45도 각도로 하늘을 바라보면 더 그럴듯하겠지요. 청소년기에 누구나 한 번쯤은 있었음직한 순간입니다.

밀로스 포먼의 영화 ‘아마데우스’의 한 장면. 어린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고향의 한 성당에서 지오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지의 ‘스타바트 마테르’가 장엄한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가운데 이렇게 기도합니다. “저를 위대한 작곡가가 되게 해 주소서!” 너무나 강렬한 갈망이 스며든 장면이라서 그 순간만큼은 햄릿이라도 칼로 찌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비엔나의 궁정악장으로 출세한 살리에리. 그러나 그는 곧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벽에 직면하게 되는데... 바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에서 마차를 타고 와서 쇤부른 궁정으로 입궁하게 됐던 것이었으니.

하지만 살리에리는 평범한 사람이긴커녕 뛰어난 음악가였습니다. 그의 오페라 ‘타라레’가 최근 CD 세 장 분량 음반으로 나올 정도로, 그에게도 역시 시대를 뛰어넘는 정신이 있었음은 분명합니다. 단지, 그는 모차르트라는 불세출의 ‘신의 악기(God’s instrument)’와 동시대를 직면했다는 불행이 있었을 뿐이죠(살리에리의 질투심 자체가 사실이었는지는 물론 의문입니다만, 알려진 스토리가 그렇다는 얘깁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살리에리는 베토벤, 리스트, 체르니 같은 청출어람의 후학들을 지도하지 않았더냐?”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후대의 일.

어찌 모차르트가 살리에리만의 벽이었겠습니까. 칼 야스페르스의 ‘한계상황(限界狀況)’을 온몸에 흐르는 전류처럼 체험케 만드는 ‘벽’을 느낀 사람은 1791년 이래로 전 세계에 숱하게 많았을 것입니다... 수많은 음악도들에게 있어서의 모차르트는,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던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의 오슨 웰스였고, 한국말로 시(詩)를 쓰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의 미당과 대여였습니다. 미술팀의 한 선배는 언젠가 제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더군요. “고등학교 때였어요. 대구 한 전시회에 렘브란트 그림 한 점이 왔어요.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와 정말 도저히 이렇게는 그리지 못하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순수미술을 향한) 붓을 꺾었죠.”

교보와 영풍, 알라딘과 예스24를 마실 드나들 듯 들락거릴법한 숱한 초야의 독서인(讀書人)들에게 있어서의 ‘벽’은 누구일까요? 재작년 별세한 일본의 저명 평론가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 아니었을까요. 오직 소장 도서만을 보관하기 위해 3층짜리 빌딩을 새로 짓고, 정치·경제·법률·공산주의에서 인류학·뇌사(腦死)·우주학·원숭이학에까지 이르는 수만 권의 방대한 책들을 보관했던 이 진인(珍人)의 모습 앞에서는 그 어느 다독가라도 질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의 독서는 철저히 목적지향적이었습니다. 그는 한 주제에 대해서 매체에 글을 쓰기로 결정하면 곧 서점에 가서 ‘천장까지 찰 높이만큼의 책’을 사들고 와서 읽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한 특정한 주제에 관해 그렇게 다양하고 수준높은 책들이 출판돼 있는 일본의 환경은 정말 부럽고 경탄스럽기 짝이 없지만) 그리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전문가와 인터뷰를 할 때쯤이면 거의 그 전문가와 대등한 수준이 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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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탐사 보도의 상징이자‘독서 대식가(大食家)’로 유명한 다치바나 다카시. /교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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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당신은 도대체 왜 책을 읽으며, 만약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는 거라면 그렇게 ‘책 읽고 글 쓰는’ 일련의 작업을 왜 하는가?”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치바나는 말했습니다. “모든 영역에 걸쳐서 인류의 지(知)에 관한 총체라는 것이 과연 어느 정도 발전하고 있으며, 각 영역의 최첨단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에 관심을 갖고 하루하루 움직이고 있는지, 저는 바로 이런 일에 대단한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 활자로 된 것은 모두 그럴듯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좋은 평가를 받은 책이라도 거짓이나 엉터리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아니 어떻게?’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발견하게 되면 저자가 어떻게 그런 정보를 얻었는지, 또 저자의 판단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숙고해 보라.” 앎을 향한 도정은 끊임없고 험난한 길임을 시사하는 말들입니다.

안다는 것. 배운다는 것. 끊임없이 알아나가면서 깨우친다는 것.

우리는 왜 그렇게 ‘목숨걸고’ 공부를 했던 것일까요?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기 위해 TV도 못 보면서(꼭 숙제를 다 끝낼 무렵이면 ‘달려라 태극호’나 ‘태풍소년’이 결말을 향해 치닫곤 했습니다)... 동아전과 표준전과 베껴가며... 완전정복 필승 성문기본 성문종합 정석 해법 한샘국어... 토플 토익 보케불러리 일반상식...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해외출장 가서 계약상 불이익 당하지 않을 정도의 영어실력을 갖춰놓고 퇴근하면 술 한 잔 하거나 헬스장에 간 뒤 집에 와선 리모콘 버튼 이리저리 누르다가 배우자 눈치보며 잠자리에 드는 그런 ‘안락한’ 삶을 위해...?

피터 드러커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문가가 조직 내에서 정말로 필요한 것은 전문적 기술이 아니다. 그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업무에 관련되는 모든 사항에 대해서 충분한 지식을 갖추고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제 ‘중용(中庸)’의 한 구절로 들어가보죠.

有弗學, 學之弗能弗措也; 有弗問, 問之弗知弗措也; 有弗思, 思之弗得弗措也; 有弗辨, 辨之弗明弗措也; 有弗行, 行之弗篤弗措也. 人一能之百之, 人十能之己千之.

(유불학, 학지불능부조야; 유불문, 문지부지부조야; 유불사, 사지부득부조야; 유불변, 변지불명부조야; 유불행, 행지불독부조야. 인일능지기백지, 인십능지기천지)

배우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배울진대 능하지 못하거든 놓지 말며, 묻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물을진대 알지 못하거든 놓지 말며, 생각하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생각할진대 알지 못하거든 놓지 말며, 분별함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분별할진대 분명하지 못하거든 놓지 말며, 행하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행할진대 독실하지 못하거든 놓지 말아, 남이 한 번에 능하거든 나는 백 번을 하며, 남이 열 번에 능하거든 나는 천 번을 해야 한다.

아마도 춘추전국시대는 ‘집단적 다치바나들’의 시대였던 모양입니다. 어려서 읽었던 창비사판 한국전래동화에 이런 얘기가 있었어요. 어린 학동이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웁니다. 하늘 천(天)을 읽다가 그는 훈장님께 하늘에 대해서 궁금한 것을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하늘은 왜 높으며, 왜 파랗고, 하늘의 이치는 무엇이고... 하늘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모두 풀리자 그는 다시 따 지(地)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으로 물어봅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천·지 두 글자를 배우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고, 마침내 더 배울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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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조선 중기 문신인 이항복(1556~1618)이 손자 이시중(1602~1657)의 교육을 위해 1607년 직접 쓴 '이항복 해서 천자문'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했다고 지난 4월 28일 밝혔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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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매우 상징적인 우화입니다만, 요즘의 환경에서 이런 학생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진도를 방해하는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전락하지 않을까요. 아니, 지금의 환경에서 이렇게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정진하는 식의 학문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요. 지속적인 의문과 흥미를 가지고 수능 범위 밖으로 배움의 날개를 펼친다? 저희 때나 지금이나, 어찌 그럴 수가...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세상을 진동한다는 사실입니다. 목소리의 데시벨 정도와 표현의 과격함이 지식을 대신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겸손의 미덕이란 소셜미디어가 판치는 시대에는 더 이상 미덕이 아닌 모양입니다. 심지어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조차.

어린 시절,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고장나 가져가면 아무 말 없이 빙긋이 웃으며 다 뜯어내더니, 다음 날 가보면 그전보다 더 잘 들리게 고쳐놔 주시곤 하던 전파상 할아버지의 캐릭터는 세상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듯한 느낌입니다.

모차르트나 살리에리까지 바라지 않더라도, 쥐스마이어나 쾨헬 같은 사람들조차 점점 보기 힘들어지는 것은 참으로 딱할 노릇입니다. 마땅히 알아야 할 일을 모르고 있는 것. 그 ‘통 모르고 있는’ 사람이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상상외로 커질수도 있습니다.

한 학자는 이런 우려를 했습니다. ‘산모가 진통을 한다’고 할 때의 진통(陣痛)과 ‘진통제를 놔 준다’고 할 때의 진통(鎭痛)이 어떻게 다른지 모른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불을 지른다’고 할 때의 방화(放火)는 ‘불을 막는다’고 할 떄의 방화(防火)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른다면 세상은 장차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혹 AI와 챗GPT가 그런 무지의 영역까지 보완해 줘서 선무당을 전문가인 것처럼 분식(粉飾)시켜줄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니면 정말 그렇게 되리라고 믿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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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재의 돌발史전’은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 줄기 역사의 단면이 드러나는 지점을 잡아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매주 금요일 새벽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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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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