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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스트리트 파이터 형님이 금메달 영웅으로…44살 김관우의 최고령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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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관우가 28일 중국 항저우 e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AG) 스트리트 파이터 V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뒤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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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동네 아이들의 우상은 오락실 형님들이었다. 두둑한 동전을 밑천으로 쌓은 형님들의 손짓에 브라운관 속 캐릭터가 승리의 함성을 내지를 땐 까치발로 구경하던 아이들도 소리를 질렀다. 40대에 접어들 이들이 대부분 공유하고 있는 그 시절의 추억이다. 그리고 그 추억이 중국 항저우에서 다시 살아났다.

오락실은 거대한 경기장으로, 브라운관은 큼지막한 전광판으로 바뀌었다.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면 화면 속 게임 그리고 형님의 존재다. 1979년생 양띠 김관우가 그 시절 아이들을 설레게 만들던 형님으로 돌아왔다.

28일 중국 항저우 e스포츠센터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V 결승전이 바로 그 무대였다. 머리엔 헤드셋, 무릎에 올려놓은 패드가 어색했지만 근본은 바뀌지 않았다. 모두가 잠시 잊고 살았던 그 추억을 간직했던 40대 피터팬은 동갑내기 대만의 샹여우린과 맞대결에서 4-3으로 승리하며 관중석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시상식이 끝난 뒤 기자와 만난 김관우는 “처음에는 메달이 목표였지만 더 높은 곳을 바라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금메달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고 활짝 웃었다.

이날 결승전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 것은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색깔이었다. 김관우가 베가 하나만 팠던 원 캐릭터 장인이라면, 상대는 루시아와 루크를 번갈아 쓰는 다재다능을 뽐냈다. 이 차이가 경기 초반 김관우를 고전하게 만드는 대목이기도 했다. 김관우는 1세트를 먼저 따낸 뒤 2~3세트를 내줬다.

그러나 김관우는 상대의 버릇과 간격을 빠르게 캐치한 뒤 4세트부터 반격의 깃발을 들어 올렸다. 5세트에선 상대에게 완벽하게 승리하는 퍼펙트까지 거머쥐었다. 비록, 6세트를 내주면서 막판까지 몰렸지만 상대의 루크를 7세트에서 물리치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를 떠올린 김관우는 “여러 가지 캐릭터를 쓰는 게 분명히 더 장점이 있다. 그런데 난 한 캐릭터의 장인으로 상대해가는 게 더 재밌었다. 솔직히 다른 캐릭터를 해볼 노력도 했지만 잘 안 되더라”고 말했다.

김관우의 금메달은 이번 대회 한국 선수 최고령 금메달이자 e스포츠 최초의 금메달이다. 나이의 제약이 덜한 e스포츠라지만 육체적으로 전성기가 지난 40대에 정상에 올라 더욱 놀랍다. 실제로 다른 e스포츠 종목들은 20대 초반이 전성기로 분류되기도 한다.

강성훈 감독은 “나도 선수의 실력이 40대에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는데, 노력으로 오히려 발전했다. 본인의 의지만 있으면 김관우의 시대는 여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국에서 스트리트 파이터를 즐기는 30~40대들이 ‘원기옥’(한 만화에서 우주의 기운을 모으는 기술)처럼 도왔기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김관우는 “사실 40대는 뭐 좀 하려면 손도 안 따라주는 게 사실”이라며 “그래도 더 많이 연습하면 옛날의 실력을 되찾을 수 있다. 우리(40대)도 저처럼 금메달을 딸 수 있다”고 말했다.

나이를 잊은 김관우의 우승은 오락실에서 동전 한 개로 스트리트 파이터를 즐기던 팬들의 추억을 되살리게 만들기도 했다. 국내에선 스트리트 파이터2가 보급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이젠 옛 영화로 남고 말았다.

스트리트 파이터1부터 입문했던 김관우는 자신의 금메달이 새로운 팬들의 유입을 이끌어내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이 게임을 비롯해 격투 게임 자체가 처음 하는 사람에게 친화적이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제작사도 이 부분에 전향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한 번 도전해보셨으면 한다. 정말 추천한다”고 당부했다.

항저우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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