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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선수들은 아무래도 자신의 루틴이 정립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 루틴을 만들어줄 수 있도록 주위에서 도와야 한다. 훈련 일정도 짜주고, 과정도 지켜보고, 피드백도 해야 한다. 그런데 김 감독은 유독 조성훈에 대해서는 이색적인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김 감독은 퓨처스팀 코칭스태프와 육성팀에 “조성훈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두라”고 지시했다.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는 한 마디였다. 그런 지시를 한 선수가 조성훈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조성훈은 SSG의 육성 시스템에서 제법 큰 비중을 차지했던 선수다. 청원고를 졸업하고 2018년 2차 1라운드(전체 5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지금이야 SSG도 다른 팀과 마찬가지로 시속 150㎞를 던질 수 있는 선수가 제법 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구단에는 그런 선수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150㎞ 이상의 잠재력을 가진 조성훈은 ‘핵심 유망주’ 취급을 받았다. 2019년 시즌을 앞두고는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입대해 일찌감치 군 문제도 해결했다.
조성훈은 2020년 상무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며 제대한 뒤 2021년 제주 스프링캠프에도 합류했다. 김원형 SSG 감독은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이 선수를 보고 내심 흥분했다. 선발이든, 불펜이든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판단할 정도의 매력적인 공을 던지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 앞으로 가지는 못했다. 어깨나 몸이 아팠다. 공을 던지다 공을 내려놓기를 반복하기 일쑤였다. 2021년 퓨처스리그에서 14이닝, 2022년은 10이닝 소화에 그쳤다.
김 감독은 답답했고 때로는 화도 났다. 무리하게 공을 던지라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시즌을 치르며 100% 몸 상태로 매일 공을 던질 수는 없었다. 약간 몸이 좋지 않아도 조금씩은 던지며 요령을 터득하는 게 필요하다고 봤다. 그러나 조성훈은 좀처럼 그 틀을 깨지 못하고 있었다. 조성훈은 당시 상황에 대해 “아프기도 아팠고, 한 번 던지면 회복이 잘 되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서로의 답답한 시기가 2년이나 이어졌다.
조성훈은 지난 2년에 대해 “2년 동안 멘탈도 많이 흔들렸고, 어깨가 하도 좋지 않으니 왜 안 좋은지도 좀 알게 됐다. 안 좋았을 때 어떻게 관리를 해야 되는지도 이제 좀 알고 있다. 그런 부분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담담하게 지난 2년을 회상하면서 “한때는 야구가 싫어진 적도 있었다. 제주 캠프에서도 잘하려고 한 것보다는 안 아프려고 노력을 더 많이 했다. 무의식적으로 그랬다”고 했다. 김 감독의 눈에 보인 그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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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훈은 투구 일정을 스스로 짜고, 좋았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영상을 면밀하게 분석하며 스스로 앞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조성훈은 “시도를 많이 했다. 작년부터도 했고, 올해 초에도 시도를 많이 했는데 잘 안 됐다. ‘다시 처음부터 해보자’는 생각으로 훈련에 임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바람대로 투구 수는 지난해 11월부터 많이 가져가기 시작한 참이었다. 그러자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속도 올라오고, 구속이 올라오자 자신감도 붙었다.
점차 투구 수를 늘려가던 조성훈은 8일 kt 2군과 경기에서 5이닝 3피안타 6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포심패스트볼 최고 구속이 시속 149㎞까지 회복됐다. 그리고 15일 강화SSG퓨처스필드에서 열린 KIA 2군과 경기에서는 5이닝 1피안타 1볼넷 5탈삼진 무실점 역투로 모든 관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트랙맨’ 레이더에는 최고 구속이 151㎞까지 찍혔다.
포심패스트볼의 구위 및 제구 모두 인상적이었다. 강화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조성훈의 패스트볼은 같은 구속이라도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다르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그 잠재력을 보여줬다. 조성훈은 “선두 타자나 주자가 없을 때 패스트볼 제구가 안 좋았던 것을 생각해서 그것에 더 집중을 했는데, 저번 경기(15일)에서 잘 됐던 것 같다”면서 “상무 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지만, 경기에서 좋은 부분들이 많이 나와서 그 부분대로 밀고 나가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보고는 김 감독의 마음을 또 때렸다. 마침 박종훈이 경기력 조정차 2군으로 내려가 선발 로테이션 한 자리가 빈 상태였다. 20일에 대체 선발 하나가 필요했다. 백승건도 후보였지만, 백승건은 일단 대체 선발로서 몇 경기 나가 그 좋은 역량을 확인한 ‘알고 있는’ 카드였다. 조성훈은 달랐다. 일단 긁어봐야 했다. 김 감독은 조성훈을 17일 1군으로 올려 훈련하게 했고, 20일 선발로 낙점했다.
김 감독은 “한 번 보고 싶다”는 말로 모든 기대감을 대변했다. 김 감독은 “긴장하라고 그랬다. 오늘부터 긴장하고, 당일에는 2군 경기하듯이 한 번 해보라고 했다. 물론 1군 선수들이 잘 친다. 2군 선수들과 수준 차이는 크다. 그런데 투수들이 안 맞으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볼넷을 남발해 경기에 큰 문제가 만들어진다”면서 “배짱으로 한번 던져봤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2년을 돌아온 조성훈이 보여줘야 할 것은 결과보다는 그 배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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