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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야기가 있는 스포츠] 편견과 싸우는 김라경 “야구에 진심이었던 선수로 기억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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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야구 국가대표 김라경이 본지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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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좋아하는 ‘나’를, 더 이상 입증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게요.”

최연소 여자야구 태극마크, 대표팀 에이스, 한국 최초 일본 여자야구 실업리그 진출 선수. 김라경(23)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이다. 누구도 걷지 않은 길을 가며 한국 여자야구 뿌리가 되길 꿈꾸는 그는 지금도 ‘여자가 왜 야구를 하냐’는 세상의 편견에 맞서고 있다.

◆원치 않은 ‘처음’… 그리고 재활

최초 타이틀이 반갑지 않은 유일한 순간이 있었다. 지난해 6월25일,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악재를 뚫고 천신만고 끝에 일본 실업야구 아사히 트러스트에 입단해 세이부 라이온즈 레이디즈 상대로 대망의 첫 피칭을 펼치는 날이었다. 하지만 마운드 연습 피칭서 두 번째 공을 뿌리는 순간, 오른팔에서 듣고 싶지 않았던 ‘뚝’ 소리와 함께 뼈가 부러지고 인대가 끊어졌다.

김라경은 “내 팔이 고장 나버린 순간이라 절대 잊을 수 없다. 아직도 생생하게 당시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토미존(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은 최초의 여성 선수가 됐다.

수술까지 가는 과정은 험난했다. 일본 현지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을 때는 골절 진단만 받았다. 두 달간 단순 재활만 진행했고 심지어 캐치볼까지도 했다. 그래도 팔이 아프자 한국에서 재진단을 받았고 결국 인대 완전 파열 판정을 받았다.

부모님은 그런 딸이 안타까웠다. 김라경이 야구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한 7살 터울의 오빠, 한화 출신 김병근도 수술만 4번 치른 끝에 프로와 멀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만큼 했으면 많이, 잘했다. 아들에 이어 딸까지 고생하는 걸 그만 보고 싶다”며 야구를 다시 하기 위한 수술을 반대했다.

하지만 본인은 단호했다. 그는 “설득이랄 것도 없었다. 나는 무조건 야구를 할 것이기에 수술을 반드시 해야 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결국 수술대에 오른 그의 팔에는 긴 상처가 남았다. 김라경은 “영광스러운 상처다. 난 이게 자랑스럽다”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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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라경이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상처가 남은 오른팔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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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김라경… 그리고 ‘행정가’ 김라경

목표는 당연히 마운드에서의 재기다. 이를 위해 힘겨운 재활 시기를 거친다. 그는 “토미존 수술하고 돌아온 프로 선수들 정말 대단하다. 존경스러울 정도”라고 혀를 내두르지만 포기할 수 없다. “꿈꾸던 일본 무대에 다시 섬으로써 한국 선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그래야 여자 야구가 발전한 일본과 한국의 연결고리도 생기고, 어린 선수들도 나를 보며 같은 꿈을 꾸지 않겠나”라는 결연한 이유 때문이다.

잠깐의 경험이었지만 그가 느낀 일본 인프라는 한국과 차원이 달랐다. 김라경은 “일본은 어딜 가든 야구장들이 공원에 널려 있어서 아무나 야구를 한다. 여자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학교 체육까지 갖춰져 있다 보니 동문 선후배끼리 챙겨주고 하는 모습도 자주 본다. 그런 게 정말 너무 부러웠다”며 설명을 시작했다.

이어 “그런 관계와 환경들이 야구를 계속할 수 있는 분위기를 자연스레 만들어준다. 내가 들어갔던 팀의 전용구장에는 수많은 여자 야구단이 오간다. 눈에 띄는 것은 시스템이 확실하게 갖춰져 있다는 점이다. 경기장 관리, 경기 해설 등을 다른 팀끼리 도맡아주며 당연하다는 듯 해낸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가는 그 모습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그는 ‘선수’ 김라경뿐만 아니라 ‘야구 행정가’ 김라경이라는 미래까지 준비한다. 재학 중인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에서도 관련된 수업들을 쉴 새 없이 수강한다. 일본 활동을 위해 일본어 공부까지 챙긴다. 오후에는 재활을 위해 체육관을 들리느라 몸이 몇 개여도 모자라지만 쉽게 쓰러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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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라경이 촬영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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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현실의 벽에 내민 도전장

2021년 오빠 김병근과 힘을 모아 여자야구팀 ‘JUST DO BASEBALL(JDB)’을 창단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여자야구 발전을 위해 뭔가 하고 싶었다. 저 같은 상황에 놓인 친구들이 야구를 포기하고 소프트볼로 넘어가거나 아예 운동을 접는 악순환이 너무 안타까웠다”며 창단 배경을 전했다. 그렇게 창단된 JDB는 그해 11월 남자 사회인 팀을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두는 짜릿한 순간을 맛보기도 했다.

2000년생의 어린 김라경에게 팀 창단은 쉽지 않았다. 20대 초반 소녀에게는 낯설 수 있는 행정적, 법적 절차들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팀을 꾸려가기 위한 자금 확보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는 “협찬받기 위해 수많은 업체들과 미팅을 했다. 모든 지방자치단체, 야구 관련 단체에 제안서를 돌리고 방문하기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머리가 한 움큼 빠질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실제로 JDB 1기는 이미 종료됐다. 일본 진출 전에 자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려 노력했지만 결국 자금난으로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는 “1기 때 선수들과 부모님들이 다 모여 엠티를 갔다. 그때 다들 저와 한 뜻을 가져주시고 따뜻한 응원을 보내주셨다. 그래서 어떻게든 JDB 2기를 다시 창단하고 싶다. 여러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꼭 저와 여자 야구를 도와주실 분들이 나타나주시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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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라경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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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의 연속, 포기는 없다

도전의 끝에는 꼭 무너뜨리고 싶은 ‘편견’이 있다. 그는 “아직도 야구하는 여자 선수들을 보며 왜 소프트볼을 하지, 야구를 하려고 하냐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좋아서 시작한 야구를 하고 있는 나를 매 순간 입증해야 한다. 특이한 사람이 아니고 평범하게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과정들이 어렸을 때 많이 답답했다”며 속마음을 털어놨다.

“이렇게 편견을 깨고 싶다고 말하는 것도 사실 조심스럽다. 내가 언급하는 것만으로 그 고정관념이 갖는 단단함이 더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 말하는 얼굴에서 그간의 고독한 싸움을 체감할 수 있었다.

다만 절대 씩씩함을 잃지 않는다. 김라경은 “최근 많이 나아지고 있다. 여자야구에 관심도 생기고 야구를 한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여주시는 분들이 많이 늘었다. 내가 해왔던 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된다”며 “야구를 좋아하는 수많은 여자 선수들이, 그 사실을 입증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꼭 만들고 싶다”라고 힘줘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항상 야구를 좋아하는 소녀로 불려 왔다. 이제는 야구에 진심이었던 ‘소녀’가 아닌 ‘선수’로 꼭 남고 싶다. 제 진정성을 느끼실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여자야구를 위해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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