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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누가 광탈할 ‘골짜기 세대’라 했나... 김은중호, 4강 진출한 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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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0 월드컵 한국 4강 진출

조선일보

무관심을 환호로 바꿨다, U-20 월드컵 또 4강 - FIFA U-20(20세 이하) 월드컵에서 2회 연속 4강 진출을 이룬 한국 대표팀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가 기쁨 가득한 얼굴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은 5일 8강전에서 나이지리아를 1대0으로 꺾고 1983년(4위)과 2019년(준우승)에 이어 역대 3번째로 4강에 올랐다. 아시아 팀이 2회 연속 4강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한국은 오는 9일 이탈리아와 결승 진출을 다툰다./대한축구협회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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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별 리그에서 광탈(광속 탈락)할 거란 얘기가 어린 선수들 귀에 들어가는 게 가장 마음 아팠습니다.”

2023 FIFA(국제축구연맹) U-20(20세 이하)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행을 이끈 김은중(44) 감독은 5일(한국 시각) 나이지리아와 8강전 직후 진행한 인터뷰에서 눈물을 쏟았다. 그는 “월드컵에 나가면서도 주목을 받기보다는 우려가 많아 마음고생이 심했다”면서 “그 우려를 기대의 응원으로 바꿀 수 있게 묵묵히 따라와준 선수들이 고맙다”고 말했다.

한국은 이날 아르헨티나 산티아고델에스테로에서 열린 U-20 월드컵 8강전에서 나이지리아와 연장 혈투 끝에 최석현(20·단국대)의 헤더 결승골로 1대0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이날 승리로 1983년(4위)과 2019년(준우승)에 이어 역대 세 번째이자 아시아 팀 최초로 2회 연속 4강에 올랐다. 이번 대회 준결승 진출 4국 중 유일한 무패 팀이다. 김은중호는 9일 오전 6시 라플라타에서 3대회 연속 4강에 오른 이탈리아와 결승 진출을 다툰다.

‘골 넣는 수비수’ 최석현

이날 상대 역습을 경계하며 조심스러운 경기 운영을 펼친 양 팀은 전·후반 소득 없이 연장에 돌입했다. 연장 전반 5분 주장 이승원(20·강원)이 짧게 올린 코너킥을, 빈 공간을 빠르게 파고 들어간 최석현이 헤더로 연결하면서 골망을 갈랐다. 그는 지난 에콰도르와 16강전에서도 이승원의 코너킥을 헤더 골로 완성하며 8강행을 이끌었는데 이날도 머리로 결승 골을 넣었다.

‘골 넣는 수비수’로 자리매김한 최석현의 키는 178㎝. 180㎝ 중후반이 평균 키인 중앙 수비수치곤 크지 않은 편이다. 고교 시절 그를 지도했던 박기욱 전 현대고 감독은 “신체적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매일 새벽과 저녁에 개인적으로 헤더 훈련에 매달리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전했다. 어린 시절 측면 공격수로 뛰었던 그는 지난 3월 중국과 U-20 아시안컵 8강전에서도 연장 전반 헤더 쐐기골로 대표팀 4강 진출에 힘을 보태는 등 곧잘 머리로 팀을 구해냈다. 이번 대표팀 18명 필드 플레이어 중 유일한 대학생이다. 키 176cm의 이탈리아 수비 레전드 파비오 칸나바로(50)가 롤 모델인 그는 “키는 크지 않지만 점프력과 위치 선정을 바탕으로 한 헤더 슛엔 자신이 있다. 수비를 할 때도 빠른 스피드를 살려 상대 공격수와 경합에서 우위를 점하려 한다”고 말했다.

최석현은 대표팀 주전 중앙 수비수로 김지수(19·성남)와 함께 이번 대회 탄탄한 수비진을 구축하고 있다. 이날 나이지리아전에서는 김지수가 후반 부상으로 교체된 상황에서 수비 라인을 홀로 지휘하며 끝까지 실점하지 않았다. 주장 이승원은 이날 다섯 번째 공격포인트(1골 4도움)를 기록하며 대회 도움 부문 1위가 됐다.

‘골짜기 세대’라 더 뭉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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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현지시간) 오후 아르헨티나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8강전 한국과 나이지리아의 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둔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와 코치진이 태극기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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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표팀은 대회 전까지만 해도 ‘골짜기 세대’로 불렸다. ‘황금 세대’의 반대말로 주변 세대에 비해 실력이 뚝 떨어진다는 의미다. 2017년 한국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선 당시 스페인 FC바르셀로나 소속 이승우(25·수원FC)와 백승호(26·전북), 2019년 폴란드 대회에서도 이강인(22·마요르카)이 주목을 받았지만 이번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스타가 없어 비교적 무관심 속에 아르헨티나로 향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선수들을 더욱 뭉치게 했다. “사람들이 우리를 모르면 우리가 잘해서 알리면 된다”는 각오였다.

그 간절한 노력을 발판으로 연습한 결과가 바로 세트 피스(set piece) 작품이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코너킥 3골, 프리킥 1골 등 전체 8골의 절반인 4골을 세트 피스에서 해결했다. 김은중 감독은 “브라질 베이스캠프에서 9일간 세트피스를 집중적으로 연마했는데 그 부분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유럽과 남미, 아프리카 강호를 맞아 객관적으로 전력이 열세인 상황에서 끈끈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약속된 패턴 플레이를 통해 기습을 노린 셈이다. 이승원은 “코너킥을 짧게 차서 누군가 앞쪽에서 이를 잘라먹는 플레이를 수차례 연습했는데 오늘도 통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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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정인성


한국은 이날 나이지리아에 슈팅 수 4-22, 볼 점유율 34-51(%) 등에서 밀렸지만 특유의 ‘실리 축구’로 단 한 번의 유효슈팅을 득점으로 연결했다. ‘원팀’으로 이뤄낸 ‘4강 신화’에 선수들은 “감독님이 우리를 믿고, 우리도 감독님을 믿어 이뤄낸 성과”라고 입을 모은다. 김 감독은 어린 선수들이 처져 있거나 심리적으로 불안해하면 먼저 다가가 기운을 북돋았다. 최석현이 온두라스와 조별리그 2차전에서 퇴장당한 뒤 자책하자 따로 불러 꾸짖는 대신 “어차피 3차전에는 체력 안배를 위해 내보내지 않으려 했고 오늘 퇴장으로 누적되는 카드도 사라졌으니 오히려 팀으로선 훨씬 잘된 일”이라며 달랬다고 한다.

스트라이커 이영준(20·김천상무)은 “감독·코치님에게 종종 먼저 장난을 걸 정도로 스스럼 없이 대한다”고 말했다. 이날도 선수들은 경기 후 울먹이며 인터뷰하는 김 감독에게 물 세례를 날리며 즐거워했다. 이승원은 ‘감독님의 눈물’을 보며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4강전에선 한 번 더 울려드릴 테니까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산티아고델에스테로=서유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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