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 기습 사면 3일만에 철회… 정몽규 회장 “사려깊지 못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임시 이사회를 마치고 입장을 발표하기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이날 대한축구협회는 임시 이사회를 통해 승부조작범 등 축구인 100명 사면을 전격 철회했다. 2023.3.31/뉴스1

대한축구협회가 각종 비리로 징계를 받은 축구인 100명에 대한 사면을 전면 철회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비롯한 이사진은 31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임시 이사회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정몽규 회장은 “사려 깊지 못한 판단이었고 팬들이 받았던 충격과 상처를 헤아리지 못했다. 협회에 대한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협회는 지난 28일 대표팀과 우루과이의 평가전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에 “징계 중인 전·현직 선수, 지도자, 심판, 단체 임원 등 축구인 100명에 대한 사면 조치를 의결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해 ‘기습 사면’ 논란을 빚었다. 사면 대상자 중에는 2011년 프로 축구 승부 조작으로 제명된 48명도 있었다. 최성국, 권집, 염동균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프로 선수들이 도박 사이트 브로커의 돈을 받고 일부러 경기에서 져준 일로, 당시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협회는 사면 조치를 의결하면서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을 자축하고, 축구계의 화합을 위한 것”이라며 “오래 자숙하며 충분히 반성했다고 판단되는 이들에게 기회를 주려는 취지”라고 했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대표팀 서포터스 붉은 악마는 “협회의 결정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전면 철회를 요구한다. 강행하면 향후 국가대항전 보이콧, 항의 집회 등을 할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월드컵 선전과 비리 축구인 사면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비판도 일었다. 결국 협회는 사흘 만인 31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결정을 번복하는 촌극을 벌였다. 정몽규 회장은 철회 입장을 발표한 후 추가 질의는 받지 않았다.

경기 고양시에서 온 축구 팬 서주훈(30)씨는 이날 이사회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승부 조작 사면으로 축구협회 사면초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축구회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그는 “철회는 당연한 것이다. 이 안을 건의한 사람이 누구인지 밝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축구인 헌장에 보면 ‘우리는 축구 가족이다. 서로 돕고 산다’는 내용이 있다. 이게 온정주의로 번져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축구인 헌장에는 이런 내용도 포함돼 있다. ‘정정당당하게 경기한다.’ ‘축구에 해가 되는 부정과 부패, 차별과 폭력을 배격한다.’

[김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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