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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욕하지 않아도 선수들이 따른다…야구하는 아이들을 지키려면 [K-야구 고정관념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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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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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신원철 기자] '한국야구의 미래가 어둡다'는 말은 처음 WBC 1라운드에서 탈락한 10년 전에도 나왔다. 지금이야 그때와 달라진 게 없다며 볼멘소리라도 할 수 있지만, 10년 뒤에는 그런 고민조차 사치일지 모른다. 선수가 부족해 KBO리그의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어서다.

지금 유소년 야구계는 선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체감한다. 초등학교 야구부 외에도 리틀야구 팀이나 유소년클럽이 생기면서 야구를 할 수 있는 곳은 늘어났다. 대신 출생률 감소, 코로나19 영향으로 위축된 야외활동 등 여러 이유로 야구하는 어린이의 숫자가 줄었다. 눈에 띄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냉소적 접근 대신 나름의 해법을 찾으려 노력하는 야구인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기강을 잡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아이들이 야구에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 폐부 위기를 넘긴 비결

학생 수의 감소는 모든 초등학교 지도자가 걱정하는 문제다. 그런데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잘 버티는 팀은 있다. 기강을 잡기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어린이 선수들이 스스로 야구를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이 닮기도 했다.

성남 수진초등학교는 폐부 위기를 극복했다. 교장 선생님의 지지와 감독의 노력이 맺은 결실이다.수진초 김정록 감독은 "유신고 코치로 일하다 3년 전 가을에 처음 왔는데 야구부원이 6학년 빼고 2명 남았었다. 어렵게 9명을 채워서 시작했다. 그 뒤로 들어오고 나가고 하면서 지금 17명이다"라고 돌아봤다.

김정록 감독은 한국에서 고교야구, 일본에서 대학야구를 경험한 뒤 귀국해 고양 원더스와 넥센 히어로즈에서 뛰었다. 지옥훈련부터 자율훈련까지 선수 시절의 다양한 경험을 현장에 접목해보고자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수진초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자율성, 스스로 하는 성장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노력한다. 할 때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다른 학교보다 자유로운 면은 있다. 처음 시도할 때는 팀이 잘 될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지금 보면 오히려 선수들끼리 더 잘하려고 노력한다"고 밝혔다.

백마초등학교는 꾸준히 경기권 4강에 들면서도 강압적인 지도를 하지 않는 팀으로 유명하다. 백마초 맹일혁 감독은 "올해 10년차다. 처음에는 숫자가 많지 않았다가 2~3년 지나면서 인원이 늘어서 꾸준히 20명 이상을 유지했었다. 지금은 15명이다"라고 말했다.

맹일혁 감독은 "보통 다른 학교 혹은 클럽이나 리틀야구를 하던 선수들이 거기서 야구를 시작한 다음에 입소문을 듣고 여기로 옮긴 경우가 많다. 다른 팀보다는 자유롭고, 분위기가 밝아서 전학을 문의하는 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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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잘하는지는 해봐야 압니다."

야구하는 어린이 선수가 줄어든 이유는 복합적이다. 무엇보다 출생률 감소가 결정타고, 여기에 어린이들의 야외활동이 줄어든 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게다가 최근에는 코로나19라는 악조건까지 겹쳤다.

지도자이면서 두 아이의 아버지인 김정록 감독은 "아이를 키우는 환경도 예전과는 다르다. 예전에는 놀이터나 운동장에서 다양한 야외활동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아이들이 야외활동보다는 미디어 매체와 보내는 시간이 많은 것 같다"고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다음은 경제적인 문제다. 야구는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라는 인식이 있고, 이는 현실이기도 하다. 맹일혁 감독은 "지도자 인건비부터 다 학부모들의 지원으로 나오는 방식으로 운영되다 보니까 그렇다. 단순히 인구가 많다고 야구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우선 해봐야 잘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런 기회가 많아지려면 금전적인 벽이 해소돼야 한다"고 얘기했다.

수진초는 김정록 감독이 홀로 모든 선수를 지도한다. 그는 "코치가 한 명은 있었으면 좋겠는데 인건비 문제가 있다. 지원 방법이 마땅치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한다. 그래도 프로리그가 존재하는 스포츠니까, 리그 유지를 위해서라도 지원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 "주눅들고 눈치 보지 않게 해야죠."

어린이들이 야구에 흥미를 갖게 한 뒤에는 계속 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려면 지도 방식의 변화도 필요하다. 운동장의 선수들이 야구를 지겨워하지 않도록 해야하고, 지켜보는 학부모들이 반감을 갖지 않을 환경도 만들어야 한다. 아직도, 심지어 유소년 야구에도 욕설과 고함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얘기다.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김정록 감독은 "동기부여 요소를 만들어주자는 생각을 했다"며 "이기는 경험이 도움이 된다. 작년에 도대회 4강에 진출했는데 선수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고 야구에 대한 의지도 강해졌다"고 밝혔다.

맹일혁 감독은 "(초등학교 선수들은)아이들이다. 집중력이 부족할 수도 있고 산만할 수도 있다. 부상 위험이 있는 스포츠인 만큼 긴장감을 유지할 필요가 있지만 나는 자유롭고 친근감 있게 다가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실수해도 주눅들고 눈치 보지 않게 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실력 면에서도 발전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두 팀도 지금 사정이 다른 팀에 비해 나을 뿐, 이들 또한 선수 부족이 머지 않은 미래라고 생각한다. 김정록 감독은 "인구가 줄고, 출생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얘기다. 우리 학교도 언젠가는 줄어들 거라고 생각은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맹일혁 감독 역시 "나 역시 선수들이 줄어들어서 걱정이 크다. 예년 같으면 5, 6학년은 9명을 확보했을 거다. 지금은 6학년은 9명이지만 5학년은 4명, 4학년은 2명이다. 많을 때와 비교하면 4~5학년이 절반으로 줄어든 거다"라고 했다. 그나마 사정이 낫다는 팀이 이 정도다. 야구하는 아이들을 붙잡아야 한다. 배트 소재 논쟁보다 시급한 과제가 전국에 펼쳐져 있다.

▶한국야구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집니다.
욕하지 않아도 선수들이 따른다…야구하는 아이들을 지키려면 ①
"오래 굴려야 열심히 하는 건가요?" '나때는 말이야'에 던지는 의문 ②
"요즘 애들 기본기가 없다" 그런데 10년 넘게 그대로, 기본기가 뭐길래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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