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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섭의 MLB스코프] 골드슈미트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늦깎이 MVP'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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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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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이창섭 칼럼니스트] 지난해 폴 골드슈미트는 희미해져가던 자신의 이름을 다시 선명하게 새겼다. 151경기 타율 .317, 35홈런 115타점으로 개인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생애 첫 MVP를 수상하면서 무관의 제왕에서도 벗어났다.

골드슈미트의 MVP 시즌은 34세 나이를 감안하면 위엄이 더해진다. 골드슈미트는 '베이스볼 레퍼런스' 승리기여도에서 7.8을 올렸다. 34세 이상 선수가 이보다 더 높은 승리기여도를 기록한 것은 2004년 배리 본즈가 있었다. 그 해 39세 본즈는 승리기여도가 무려 10.6에 달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본즈의 기록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다. 본즈를 제외하면 이 부문에 해당하는 선수는 1969년 행크 애런이다. 35세 시즌의 승리기여도가 8.1이었다.

골드슈미트는 공격 종합 지표 조정득점생산력(wRC+)에서 177이라는 가공할만한 수치를 찍었다. 역시 34세 이상 '청정' 선수를 기준으로 하면 골드슈미트보다 높았던 타자는 1971년까지 거슬러 가야 한다. 37세 행크 애런이었다(wRC+ 191). 즉 지난해 골드슈미트는 30대 중반 애런에게 필적하는 선수였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시절 류현진의 천적으로 알려진 골드슈미트는, 2018년 12월 트레이드를 통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이적했다. 이적 첫 해 34홈런 97타점으로 건재함을 과시했지만, 장타율과 OPS가 눈에 띄게 하락했다. 단축 시즌이었던 2020년에도 장타율과 OPS는 회복되지 않았다. 30대 중반을 앞둔 타자의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2018 [장타율] 0.533 [OPS] 0.922 - 30세
2019 [장타율] 0.476 [OPS] 0.821 - 31세
2020 [장타율] 0.466 [OPS] 0.883 - 32세


골드슈미트는 내리막길에 대비해야 하는 듯 했다. 하강 속도를 낮춰줄 낙하산을 제대로 펴는 것이 최선으로 보였다. 그러나 골드슈미트의 생각은 달랐다. 아직 더 올라갈 곳이 있었고, 더 올라갈 수 있다고 믿었다. 2021년 장타력을 다소 회복한 골드슈미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한 가지 변화를 시도했다.

2021년 12월, 골드슈미트는 루이지애나주 배턴루지에 있는 한 야구 시설을 방문했다. 일명 BPL(Baseball Performance Lab)로 불리는 야구 연구소였다. BPL은 타자들의 타격 과정을 정밀 분석해 타자에게 최적합한 방망이를 찾아준다. 스윙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1부터 100까지 측정한 후 각 등급에 맞는 방망이를 제공한다. 이를 앞세워 배트 스피드를 키우고 강한 타구들을 양산해 성적 향상을 돕는 것이 목적이다. 골드슈미트 역시 대대적인 타격폼 개조는 꺼렸기 때문에 BPL이 추구하는 업무와 지향점이 맞았다.

골드슈미트는 데뷔 후 방망이를 교체한 적이 없었다. 줄곧 같은 제품을 이용했다. 하지만 BPL의 의견을 수용해 방망이를 바꿨다. 이전보다 1인치가 길어지고, 1온스가 무거워졌다(길이 86.4cm에서 88.9cm, 무게 0.91kg에서 0.94kg). 대신 방망이 끝 부분(노브)을 아이스하키 퍽과 비슷한 형태로 특수 제작해 스윙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골드슈미트는 원래 타격폼을 유지하면서 방망이가 달라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흡족해했다.

새 무기를 손에 넣은 골드슈미트는 회춘에 성공했다. 마치 20대 중반으로 돌아간 것처럼 펄펄 날아다녔다. 중심타자의 자존심인 장타력도 끌어올려 9년 만에 리그 1위를 탈환했다. 장타율 .578은 골드슈미트가 전성기 때도 선보이지 못한 개인 최고 기록이었다.

골드슈미트 시즌 최고 장타율

1. 0.578 (2022)
2. 0.570 (2015)
3. 0.563 (2017)
4. 0.551 (2013)
5. 0.542 (2014)


골드슈미트가 무조건 변화만 강조한 건 아니었다.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은 초심을 고수했다. 골드슈미트는 마이너리그에 있을 때부터 기본에 충실했다. 2009년 드래프트 8라운드 출신으로 처음부터 크게 각광받지 못한 이력이 자신을 엄격하게 채찍질했다. 사소한 플레이도 허투루 하지 않았고,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골드슈미트는 모든 플레이에 최선을 다했다. 메이저리그 승격 이후 리그 정상급 선수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본 동료 맷 카펜터는 "29살에 그를 봤을 때 35살이 되어서도 지금처럼 준비할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예언은 현실이 됐다.

베이스러닝은 골드슈미트의 꼼꼼한 스타일을 잘 엿볼 수 있는 분야다. 야구는 찰나의 순간이 승패를 결정지을 때도 있다. 이에 골드슈미트는 열심히 달릴 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베이스에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의식적으로 오른발을 먼저 베이스에 닿게 하거나, 발이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집중한다.

골드슈미트는 평범한 땅볼도 그냥 포기하지 않는다. 세이프 판정에 앞서 접전 상황이라도 연출하려고 애를 쓴다. 골드슈미트가 속했던 마이너리그 트리플A 팀에서는 1루까지 전력을 다해 뛰지 않으면 경고장을 받았다고 전해졌다(디 애슬레틱). 한솥밥을 먹었던 크리스 오윙스는 "골드슈미트는 한 번도 경고장을 받은 적이 없다"고 기억했다. 보통 체구가 큰 파워히터는 베이스러닝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지만, 골드슈미트는 베이스러닝도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다.

지난해 노력의 보상을 받았던 골드슈미트는 올해 또 한 명의 조력자가 본격적으로 나선다. 세인트루이스에서 타격 코치를 보조했던 터너 워드가 타격 코치로 승진됐다.

워드는 골드슈미트와 각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골드슈미트가 더블A에 있을 때 팀의 감독이었고, 2013-15년 애리조나 타격 코치로 골드슈미트를 지원했다. 2014년은 부상으로 상당 경기를 빠졌지만, 2013년과 2015년은 골드슈미트의 황금기였다. 두 시즌 모두 MVP 투표 2위에 오를 정도로 기량이 최고조에 있었다. 실제로 골드슈미트는 2015년에 수상한 통산 두 번째 실버슬러거 트로피를 워드에게 선물한 바 있다.

골드슈미트는 '바꿔야 될 건 바꾸는 과감함'과 '지켜야 될 건 지키는 단호함'으로 늦깎이 MVP 수상자가 됐다. 하지만 한 번의 MVP가 그를 만족시키진 못할 것이다. 과연 골드슈미트는 또 다른 황금기를 보낼 수 있을까. 점점 더 어려지는 리그에서 시간을 역행하는 그의 존재는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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