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보이콧 야당 "대통령, 정통성 상실…즉각 퇴진하라"
튀니지 총선 투표율 |
(카이로·서울=연합뉴스) 유현민 기자 = '아랍의 봄' 민중 봉기의 발원지인 튀니지에서 치러진 총선에서 야권의 보이콧 속에 투표율이 9%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헌법기관의 기능을 일방적으로 정지시킨 채 독단적인 정치개혁을 강행해온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은 사상 최저 수준의 투표율 속에 야권의 강력한 퇴진 요구에 직면했다.
18일(현지시간) AFP와 로이터 등 외신들에 따르면 튀니지 선거 관리 당국은 전날 치러진 총선 투표율이 8.8%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아랍의 봄' 이후 튀니지에서 치러진 선거·투표에서 가장 낮은 수치로, 11월 물가상승률(9.8%)에도 못미쳤다.
대부분의 정당은 이번 총선이 올해 의회 해산에 이어 대통령에 막강한 권력을 집중시킨 개헌까지 이뤄낸 사이에드 대통령의 권한 강화를 위한 또 다른 방편이라며 보이콧했다.
야당 연합체 '전국 구원 전선'은 저조한 투표율로 사이에드 대통령이 정통성을 상실했다며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와 연좌 농성을 촉구했다.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의회 해산 전 다수당이던 이슬람계 엔나흐다가 포함된 야당 연합체가 사이에드 대통령이 추진하는 일련의 정치 개혁을 '쿠데타'라고 비난한 적은 있었지만, 퇴진을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는 사이에드를 불법적인 대통령으로 간주할 것"이라며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한 '전국 구원 전선'의 지도자 나지브 체비는 "짧은 과도 기간을 거쳐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국민대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랍의 봄 시위로 실각한 독재자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자유헌법당도 대통령 퇴진 촉구 대열에 합류했다.
이 당의 아비르 무시 대표는 "우리는 대통령 부재와 조기 대선을 촉구한다"며 "튀니지 국민 90% 이상이 사이에드 대통령의 계획에 반대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튀니지는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대를 휩쓴 '아랍의 봄' 봉기의 발원지로 중동에서 드물게 민주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심각한 경제난과 정치적 갈등 속에 국민 불만이 쌓여왔고, 코로나19 대유행까지 닥치면서 민생고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다.
2019년 10월 민주적 선거를 통해 당선된 헌법학자 출신인 사이에드 대통령은 정치권의 부패와 무능 척결을 기치로 내걸고 지난해 7월부터 이른바 '명령 통치'로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의 기능을 정지시켰다.
정치권과 공직사회의 부패를 비판해온 시민들은 대통령의 행보에 지지를 보냈지만, 반대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사이에드 대통령은 지난 7월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개헌까지 성사시켰다.
개헌을 통해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 임명권, 의회 해산권, 판사 임명권은 물론 군 통수권까지 갖게 됐고, 연임 이후에도 '임박한 위험'을 이유로 임기를 임의 연장할 수도 있게 됐다.
당시 사이에드 대통령의 개헌 시도는 튀니지를 과거 독재 정권 시절로 되돌리려는 시도라는 비판을 받았다.
개헌안은 투표 참여자 94.6%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투표율은 30.5%에 그치면서 대통령 지지자들만 참여한 반쪽 투표라는 평가를 받았다.
hyunmin623@yna.co.kr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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