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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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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만의 극우’ 이탈리아, 난민 구조선에서 어린이·부상자만 하선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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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독일 구호단체인 ‘SOS 휴머니티’가 운영하는 구조선 ‘휴머니티 1호’가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카타니아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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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정부가 시칠리아섬 인근 해상에 있는 난민 구조선에서 어린이·부상자 등 일부 난민만 선별해 하선을 허용하면서 극우 본색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온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독일 구호단체인 ‘SOS 휴머니티’가 운영하는 구조선 ‘휴머니티 1호’에 타고 있던 난민 179명 중 144명이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카타니아 항구에 내렸다. 이탈리아 당국이 어린이·부상자 등 “취약한 상태”에 놓인 난민을 선별해 하선을 허용하면서 같은 배에 타고 있던 난민들의 운명은 엇갈렸다. SOS 휴머니티 측은 이탈리아 정부가 나머지 35명은 건강 상태가 나쁘지 않다며 이들을 싣고 항구를 떠날 것을 명령했다면서 “해상에서 구조된 모든 생존자가 하선할 때까지 명령을 거부할 것”이라 밝혔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날 오후 노르웨이에 등록된 구조선 ‘지오 바렌츠’에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임시 정박을 허용한 뒤 배에 있던 난민 572명의 상태를 살피고 357명의 하선을 허용한 것이다.

이에 ‘지오 바렌츠’를 운영하는 국경없는의사회는 이탈리아 정부의 결정이 “해상법에 따르면 불법”이라며 맹비난했다. SOS 휴머니티도 이날 트위터를 통해 “이탈리아의 행동은 유럽법과 제네바 난민협약을 위반한 것”이라며 다음날 이탈리아 정부를 상대로 법적 조치에 나설 것이라 말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시칠리아섬 인근 해상에 있는 비정부기구(NGO)의 난민 구조선 2척의 입항도 거부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지중해 중부에서 보트를 타고 표류하던 난민 1000여명을 구조했지만, 인근국 이탈리아와 몰타가 모두 입항을 거부하면서 길게는 2주씩 바다 위에 표류 중이다. 해당 구조선을 운영하는 NGO들은 난민들이 장기간 선박 내에서 매우 열악한 환경에 노출돼 있으며, 식품과 의약품도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이를 두고 이탈리아에서 100년 만에 탄생한 극우 성향의 정부가 본색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르자 멜로니 신임 총리는 취임 후 첫 의회 연설에서 “불법 이민과 인신매매를 끝내야 한다”며 난민 문제에 강경 노선을 취할 것을 시사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배에 타고 있는 난민들에 대한 책임은 해당 구조선이 등록된 국가에 있다고도 주장했다. 유럽연합(EU) 역내에 들어온 이주민이나 난민은 처음 발을 디딘 국가에 망명·난민 신청을 해야 한다는 ‘EU 더블린 조약’을 해당 상황에 적용한 것이다. 마테오 피안테도시 내무장관도 난민들이 독일 국기가 달린 ‘휴머니티 1호’에 오른 순간 독일에 발을 디딘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결과적으로 독일이 이들을 돌봐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독일과 노르웨이 정부는 난민 구조선과 가장 가까운 이탈리아 정부가 구조된 난민들을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이탈리아와 몰타에 입항을 거부당한 뒤 그리스, 스페인, 프랑스 등에도 도움을 요청하자 프랑스 정부는 이탈리아가 난민 구조선을 받아들이면 독일과 함께 이주민을 나눠 수용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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