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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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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물가보다 경기"…정부, 금리인상 '속도조절'로 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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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세종=유선일 기자, 세종=안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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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뉴시스] 우장호 기자 =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27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2 중소기업 리더스포럼'에 참석해 특별강연하고 있다. 202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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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경제정책의 무게중심이 '물가'에서 '경기'로 옮겨가고 있다. 그동안 물가안정을 위한 한국은행의 공격적 기준금리 인상에 동조하던 정부에서 '금리인상 속도조절론'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물가 상승률이 늦어도 다음 달에는 정점을 찍을 것이 유력시되는 가운데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둔화, 가계부채 위기 등의 부담이 커지면서다. 최근 10월 빅스텝(한번에 0.5%포인트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에서도 다시 신중함이 감지된다.

27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최근 기획재정부의 정책 기조가 종전의 물가안정 중심 기조에서 벗어나 경기·가계부채 등을 함께 고려한 '균형 있는 경제정책' 쪽으로 선회하는 모습이 감지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지난 25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기준금리 인상 속도의 조절 필요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것이 대표적이다. 추 부총리는 이날 "미국과 금리 격차가 너무 커지면 금융시장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도 "우리도 (미국 금리를) 쫓아가자니 국내 경기 문제 그리고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해 대출자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가 물가안정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삼고 한은의 공격적 기준금리 인상에 대해 언급을 자제해온 것과 대비된다.

물가 상승률이 정점에 근접했다는 평가가 이런 정책 기조 변화의 첫번째 원인으로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8월 소비자물가는 전년동월대비 5.7% 상승하며 7개월 만에 처음 오름폭이 둔화됐다. 정부는 이르면 이달, 늦어도 10월에는 물가 상승률 정점을 찍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기대인플레이션율이 8월과 9월 두 달 연속으로 전월대비 하락하면서 이런 전망에 한층 무게가 실리고 있다.

내년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것도 정책 기조 변화의 또 다른 원인으로 풀이된다. 최근 ADB(아시아개발은행),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등이 잇달아 한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는 등 우리 경제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최근 수년 사이 급격히 악화된 재정건전성을 고려해 재정정책 기조를 '확장'에서 '건전'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재정 투입 여력을 묶어놓은 상태에서 기준금리까지 가파르게 올리면 경기둔화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다. 정부와 여당으로선 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경기둔화가 내년 하반기까지 지속되는 것에 대해 정치적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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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를 들으며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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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황에서 금리가 인상돼 차주의 이자 부담이 커지는 것도 정부의 고민거리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6월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869조4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한은은 기준금리 50bp(1bp=0.01%포인트) 인상시 연간 이자 부담이 약 7조1588억원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해 말 기준 인구 5161만명으로 나누면 국민 1인당 연간 이자부담이 약 13만8707원이 늘어나는 셈이다. 실질적으로 가계대출에 영향을 주는 시중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많이 오르는 점을 고려하면 1인당 이자 부담은 이보다 커질 수 있다.

정부로선 주식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찬물'을 끼얹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코스피는 27일 장중 외국인의 매도세 영향으로 2년 2개월 만에 장중 한때 2200선 아래로 내려갔다.

기준금리 결정 권한은 정부로부터 독립된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 있다. 다음 금통위 회의는 다음 달 12일 열린다. 정부는 한은법에 따라 금통위 회의에 참석해 발언할 수 있는 '열석발언권'이 있지만, 중앙은행에 대한 독립성 침해 논란 때문에 정부는 지난 2013년 이후 9년 동안 열석발언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한은도 기준금리 인상에 있어 신중함을 기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비둘기파(완화적 통화정책 선호)로 분류되는 이창용 한은 총재는 그동안 베이비스텝(금리 25bp 인상) 기조를 유지하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75bp 인상을 결정한 이후 "미 연준의 최종 금리 수준에 대한 시장 기대가 바뀌었다. 새로운 '포워드 가이던스'(사전 안내)를 제시하겠다"며 빅스텝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놨다.

그러나 5일 뒤인 지난 2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 총재는 "여건 변화가 국내 물가와 성장 흐름, 금융·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통화정책을 결정해 나갈 것"이라며 베이비스텝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신중론으로 돌아갔다.

한편 일각에선 여전히 한은의 빅스텝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오창섭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지금은 물가보다 원/달러 환율 상승 때문에 기준금리를 올리는 상황"이라며 "10월에는 빅스텝을 밟을 것으로 보이며 11월 금통위 회의 때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가 문제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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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유선일 기자 jjsy83@mt.co.kr, 세종=안재용 기자 po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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