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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 40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타자는 누가 뭐래도 이승엽(46)이다. 앞으로도 타격 분야, 특히 홈런과 타점(개인 통산 467홈런, 1498타점)에 관한 한 그를 능가할만한 선수가 나오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통산 홈런 403개로 2위인 SSG 최정의 뒤집기 가능성은 있지만)
그런 그가, 2017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지 5년이나 지났으나 좀체 야구판 중심부로 진입하지 못하고 여전히 외곽을 맴돌고 있다. 그도 이제는 오십 고개를 저만치 바라보고 있는 중년의 나이가 됐다.
이승엽은 왜 ‘야구 현장 속으로’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있을까. 물론 이승엽은 현재 SBS TV 해설위원으로 간헐적으로 팬들과 만나고는 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선수의 심리를 세밀하게 살피고 헤아리는, 거부감 없고 이해하기 쉬운 그의 해설은 들을 때마다 퍽 인상적이었다. 이승엽야구재단을 설립해 어린 선수들에게직접 도움주는 일도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해설이나 다른 일을 통한 그와 만남이 무언가 감질나는 노릇이다. 게다가 방송 연예 프로그램 따위로 외도의 길을 걷는 모습은 자못 안타깝게 비치기도 한다.
일본 프로야구판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을 무르녹여 선수들에게 전수할 법도 하건만 그 길이 열리지 않고 있다. 이승엽이 왜 그토록 ‘바라는’ 코치(또는 감독)를 하지 못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바라는’이라는 희망 사항을 적시했지만, 이승엽이 실제로 현장 지도자로 뜻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한 야구인을 통해 전해 들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감독 선임을 앞두고 야구인들과 함께한 사석에서 이승엽은 “삼성이 그대를 버린 것이 아닌가”라는 농담 섞인 물음에 “지도자 생활은 무조건 삼성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말로 에둘러 답변했다.(항저우아시안게임 감독은 코치 경험이 없는 이승엽이 맡을 수 없는 자리였다)
이승엽은 그 모임에서 예전에 몇 구단이 그에게 코치 영입 제의를 했지만 완곡하게 거절했음을 밝히면서 “삼성 말고 다른 구단에 갈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는 것이다. 대구에 갔을 때 주위에서 괜한 오해를 산적도 있었다는 그는 삼성 구단으로부터 아직 제의를 받은 적은 없다는 얘기도 했다.
정리하자면, 이승엽은 ‘삼성 구단에서 코치를 해보고는 싶은데 불러주지 않는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겠다. 삼성 구단이 왜 이승엽의 희망을 외면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적인 타자인 그의 존재감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
KBO리그는 지난 2년간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올해부터 무관중이 풀려 비로소 구장에서 직접 관전할 수는 있게 됐으나 예전 같은 흥행은 누리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감독과 연관된 화제성은 현저히 떨어져 있다. 누구 말마따나 너무 밋밋하다. 이른바 ‘3김(金) 시대(김응룡, 김성근, 김인식)’에 감독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때에 비한다면, 적막감마저 들 지경이다.
감독 화제성의 실종은 구단들이 명성을 붙좇기보다 소통이 편한 실무형 지도자를 선호하는 흐름과도 무관치 않다. ‘프런트가 다루기 쉬운 지도자’라는 평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런 감독들을 폄훼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감독을 둘러싼 화제성이 빈약해진 것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명망가를 지도자로 모셔야 한다’는 주장은 구단마다 처해 있는 사정이 다르므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다만 유명 선수 출신 감독들이 프로야구 현장에 많이 있다면, 그만큼 화제성이 풍부해지고 관중 유인요인도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뜻은 있으나 길이 열리지 않고 있는 이승엽은 언제까지 ‘강태공’처럼 낚시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아야 할까. 그가 지도자로서도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시대가 과연 올까. 온다면 언제일까. 올 시즌을 마치면 삼성을 포함한 5개 구단 감독의 임기가 만료된다. 이승엽을 비롯한 선동렬 같은 명망가들을 현장에서 만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글. 홍윤표 OSEN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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