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와의 개막경기에 출전한 김도영. /사진=뉴시스화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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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좀 놀랐다. 한편 설레기도 했다. 개막전에 신인 타자들이 이렇게 많이 스타팅으로 출전한 적이 있었나 싶었다. 지난 2일 프로야구 개막일이었다. 경기에 앞서 우선 출전명단부터 확인했다.
이재현(7번 3루수·삼성), 박찬혁(9번 1루수·키움), 송찬의(2번 지명타자·LG) 그리고 김도영(1번 3루수·KIA). 조세진(롯데)은 3일 1번 우익수로 기용됐다. 김도영에게 눈길이 갔다.
그런데, 1번 타자라. 부담이 클 텐데. 개막전 1번은 무리 아닌가. 염려스러웠다. KIA 김종국 감독은 “그럴 만한 선수다”고 추켜세웠다. 시범경기 고졸 첫 타격 1위(0.432)니 그럴 만했다. 김종국 감독 스스로 신인이었던 1996년 개막전서 1번에 기용됐다.
당시 김 감독은 대졸 선수였다. 야구에서 19살과 23살은 큰 차이다. 타격은 눈으로 몸으로 많이 겪어 보아야 비로소 개안한다. 경험치가 쌓여야 좋은 타자로 성장할 수 있다. 19살이면 미쳐 눈이 떠지기 전이다.
일본 최고의 슈퍼루키로 불린 기요하라 가즈히로(당시 세이부 라이온즈)의 데뷔가 생각났다. 기요하라는 고시엔대회서 13개의 홈런을 터트려 신기록을 세운 타자다. 하지만 1986년 4월 4일 개막전엔 출전하지 않았다. 다음날도 선발은 아니었다. 6회 대수비로 데뷔했다.
최대한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감독의 배려였다. 7회 프로야구 첫 타석서 볼넷을 골랐다. 9회 두번째 타석서 초구부터 배트를 돌렸다. 타구는 왼쪽 담장을 넘어갔다.
이 경기서 기요하라의 소속 팀은 패했다. 일본 언론의 지면은 온통 슈퍼루키의 첫 홈런 소식으로 채워졌다. 그런데도 기요하라의 첫 선발 출전은 3일 뒤에나 이뤄졌다. 타순은 8번이었다. 중심 타선(5번)에 이름을 올린 것은 5월 27이 되어서다.
프로무대에 데뷔하던 날 김도영이 상대한 투수는 LG 플럿코와 정우영이었다. 간단치 않은 투수들이다. 앞으로 두고두고 상대할 투수들이지만 첫 만남으론 고약한 상대들이었다.
김도영은 1회 생애 첫번째 공을 맞이했다. 바깥쪽 빠른 공 헛스윙. 초구를 치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볼카운트 1-2에서 유격수 플라이. 3회 두번째 타석서는 1-2에서 커브에 헛스윙 삼진 당했다.
세번째 타석은 중견수 플라이. 0-4로 뒤진 8회 1사 1루. 김도영은 사이드암 정우영을 처음 상대했다. 빠르고 공끝의 움직임이 좋은 투수다. 정우영은 신인타자에게 투심만 5개 던졌다.
앞서 구사한 17개 공 가운데 16개가 투심이었다. 그만큼 자신 있는 구종이었다. 볼카운트 1-2에서 헛스윙 삼진.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스윙이었다. 다음날 김도영은 5타수 무안타. 이틀 동안 9번의 타석에서 한 차례도 출루하지 못했다.
그럴 수 있다. 김도영 정도의 자질이면 언제든 정상 타격을 할 것이다. 이틀 부진하면 하루 펄펄 나는 게 통계 야구다. 하지만 고졸 신인 타자를 꼭 개막전 1번 타자로 기용해야 했을까는 의문이다.
야구는 심리 게임이다. 기술적 부진은 코치들에 의해 고쳐진다. 심리적 슬럼프는 위험하다. 자칫 길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염려된다. 다른 신인 타자들은 어땠을까.
개막전의 주인공은 키움 박찬혁이었다. 첫 타석부터 안타를 때리더니 연타석 히트를 기록했다. 삼성 이재현도 첫 타석서 안타를 뽑아냈다. 고졸 신인 타자가 첫 타석 안타를 터트린 예는 이승엽, 장성호, 강백호, 한동희 등 네 명뿐이었다. 박찬혁은 9번, 이재현은 7번으로 기용됐다.
어떻게 키우느냐는 어려운 과제다. 먼저 호되게 시련을 겪어보면 성장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첫 두 경기는 빨리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으면 한다. 김도영의 다음 경기는 한화 3연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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