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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섭의 MLB스코프] 샌프란시스코 캐플러 감독의 반전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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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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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이창섭 칼럼니스트] 지난해 마지막에 웃은 팀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였다. 그러나 가장 오래 웃은 팀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였다. 2017년 이후 5할 승률도 넘지 못했던 샌프란시스코는 정규시즌에 무려 107승을 거두고 전체 1위에 올랐다. 107승은 팀 신기록이었다(1904년 106승).

비록 LA 다저스와 맞붙은 디비전시리즈에서 탈락했지만(2승3패) 아무도 샌프란시스코를 패자로 기억하지 않았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는 놀라운 승자였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성공만큼, 게이브 캐플러(46) 감독의 변신도 놀라웠다.

2019년 10월, 캐플러는 필라델피아에서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됐다. 하지만 곧바로 샌프란시스코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처음에는 캐플러를 바라보는 주변 시선이 곱지 않았다. 능력보다 파르한 자이디 사장의 인맥으로 뽑혔다는 인식이 강했다.

필라델피아에서 실패한 캐플러를 뽑은 건 의문스러운 인사였다. 캐플러는 결과로써, 과정의 오해를 풀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하필 메이저리그에 대형 변수가 발생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정규시즌이 팀 당 60경기밖에 열리지 않은 것이다. 설상가상 샌프란시스코는 버스터 포지가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시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불완전한 전력으로 맞이한 불안전한 시즌, 샌프란시스코는 29승31패로 또 5할 승률 아래를 밑돌았다. 포스트시즌이 리그별 8팀으로 확대됐지만, 정규시즌 최종전을 패하면서 이 기회마저 놓쳤다. 샌프란시스코와 성적이 같았던 밀워키가 지구 내 성적에서 우위를 점한 덕분에 포스트시즌 막차를 탔다(이동을 최소화하는 시즌이었기 때문에 타이브레이커 경기가 열리지 않았다).

캐플러는 필라델피아 시절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성적도 제자리걸음이었다. 만약 다음 시즌도 변화가 없다면 남은 임기는 장담하기 힘들었다. 필라델피아에 이어 샌프란시스코에서도 경질될 경우,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도 중단될 가능성이 높았다.

중요한 시즌을 앞둔 캐플러는 그 사이 큰 슬픔과 맞닥뜨렸다. 자신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오랜 시간 파킨슨병과 치매를 앓았다. 인생의 풍파가 지나가자 사람이 한결 단단해졌다. 모든 구속과 압박감에서 벗어났다. 쫓기지도 않았고, 서두르지도 않았다.

달라진 캐플러는 시즌 초반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4월10일 콜로라도전, 샌프란시스코는 선발 자니 쿠에토가 9회에도 마운드를 지켰다. 팀은 3-0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첫 타자에게 3루타를 맞은 쿠에토는 다음 타자를 희생플라이로 돌려세웠다. 그러나 타구가 날카로웠다. 마운드에 캐플러가 올라왔고, 투구 수 100개를 넘긴 쿠에토는 당연히 교체될 것으로 보였다.

캐플러는 다짜고짜 쿠에토를 내리지 않았다. 쿠에토의 상태를 점검하고 나서 공을 받은 포지에게도 의견을 물어봤다. 1루수 브랜든 벨트의 생각까지 들은 캐플러는 더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마운드를 지킨 쿠에토는 아웃카운트 하나를 더 책임지면서 본인의 임무를 마쳤다. 마무리 제이크 맥기가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채우고 팀의 3-1 승리를 확정지었다.

필라델피아 시절 캐플러에게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캐플러는 2018년 개막전에서 에이스 애런 놀라를 '68구' 만에 교체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놀라를 내릴만한 상황이 전혀 아니었지만, "타선이 세 번째로 돌아오면 피OPS가 급격히 높아졌다"는 이유로 무작정 교체했다. 심지어 팀이 불펜 난조로 역전패를 당하면서 캐플러의 잘못된 판단은 엄청난 역풍을 불러왔다. 필라델피아 역사상 최악의 감독 데뷔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캐플러는 필라델피아에서의 어리숙함을 재현하지 않았다. 더 이상 짜여진 각본대로만 경기를 운영하지 않았다. 상황에 맞춰 대처하는 역량을 키웠다. 설령 나쁜 결과가 나오더라도 당황하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필라델피아에서 사소한 거 하나에 우왕좌왕하던 초보 감독 캐플러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어깨를 가볍게 해준 조력자들도 있었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는 이례적으로 코치를 14명이나 선임했다(보통 9~10명). 각자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는 분야를 나눠 맡김으로써 팀을 더 세밀하게 관리했다. 사공이 많으면 자칫 배가 산으로 갈 수 있지만, 캐플러가 선장으로서 중심을 잘 잡아줬다. 캐플러는 수시로 코치들에게 다가가 팀이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했다(캐플러는 부모님의 교육으로 토론에 단련되어 있었다).

베테랑 선수들의 의견도 귀담아들었다. 샌프란시스코는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선수들이 많았다. 캐플러는 그 선수들과의 관계를 수직적으로 형성하지 않았다. 오직 팀이 올바른 길로 가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실제로 캐플러는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더 유연해지고, 덜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나에 대한 확신보다, 우리에 대한 확신이 더 커진 것이다.

자이디 사장은 캐플러를 적극 지지한 인물이다. 우려에도 불구하고 캐플러를 감독 자리에 앉혔다. 단순히 다저스에서의 인연 때문만은 아니었다(자이디가 다저스 단장일 때 캐플러는 다저스 팜 디렉터였다). 캐플러를 잘 알았던 자이디는 그가 필라델피아에서 '실패'했다고 결론내지 않았다. 한 단계 올라서기 위한 '경험'이라고 여겼다. 자이디는 실수를 인정하고 열린 마음을 가진 캐플러가 반드시 좋은 감독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모든 감독이 처음부터 명장일 수는 없다. 누구나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다. 캐플러가 스승으로 모시는 테리 프랑코나(62)도 마찬가지였다. 2004년 밤비노의 저주를 깨뜨리는 등 두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프랑코나는, 보스턴으로 오기 전까지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했다. 5할 승률 시즌도 만든 적이 없었다. 그러나 초창기 실패를 교훈 삼아 지금은 1782승을 거둔 명장으로 올라섰다. 한편, 프랑코나가 과도기를 보냈던 팀은 다름 아닌 필라델피아였다(1997-2000년 도합 285승363패 0.440).

정규시즌 최다승 팀을 이끈 캐플러는 개인 통산 첫 감독상을 수상했다. 1위표 28장을 휩쓴 압도적인 수상이었다(크렉 카운셀 & 마이크 실트 각 1표). 입지를 위협받던 감독이 리그 최고의 감독으로 도약한 것이다. 이에 샌프란시스코는 캐플러의 감독 계약 기간을 2024년까지 보장해줬다. 이번 겨울 샌프란시스코가 가장 먼저 한 일이었다.

사람 일은 알 수 없다. 캐플러가 감독으로서 호평 받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다만, 캐플러는 항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눈과 귀를 열어두면서 배울 점은 배우고 받아들일 점은 받아들였다. 이러한 자세 덕분에 모두가 감탄하는 역전 홈런을 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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