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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이스하키의 ‘자존심’ 미국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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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신상훈, 北美리그에 도전

코로나 사태로 다들 힘들다고 아우성이지만,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는 그야말로 참담한 현실과 마주해 있다. 4년 전 평창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모든 게 얼어붙었다. 정부가 약속했던 상무 아이스하키팀 존속은 없던 일이 됐고,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은 ‘맷값 폭행’ 논란으로 공석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한국과 일본, 러시아가 함께 운영하던 아시아리그는 전면 중단됐고 실업팀 대명은 해체했다. 빙상장은 방역 때문에 수시로 문 닫는다. 악재만 겹겹이 쌓이면서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놓쳤다.

조선일보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는 평창 올림픽 이후 얼어붙었지만 신상훈(안양 한라)은 작은 균열이라도 내기 위해 매일 성실하게 산다. 그래서 미국 프로리그 3부 격인 ECHL(East Coast Hockey league) 리그 도전을 결심했다. 최근 만난 그는 적막한 안양실내 빙상장에서 환한 미소로 훈련하고 있었다. “후배들이 앞으로 뛸 무대를 넓혀주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장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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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훈의 도전 “미국에 간다”

그래서 신상훈(29·안양 한라)이 미국에 간다. 그는 북미 ECHL리그 소속 애틀랜타 글래디에이터스에서 뛰기 위해 곧 출국한다. 안양 한라가 작년 10월 자구책 모색의 일환으로 대한체육회 지원을 일부 받아 미국 애틀랜타로 쇼케이스 원정을 떠났는데, 현지에서 신상훈의 경기력과 아시아리그 득점왕 등 주요 경력을 눈여겨 본 글래디에이터스 구단이 영입 제안을 해왔다. 북미리그는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AHL-ECHL 순으로 리그 수준이 구분되는데, 한국인은 NHL은커녕 AHL 빙판도 아직 못 밟아봤다. 앞서 김한성(2003년)과 김기성(2011년)이 ECHL 무대를 노크했지만 부상으로 시즌 도중 귀국했다. 신상훈은 2021-2022 잔여 시즌을 잘 소화해 AHL 팀으로 승격하는 첫 한국 선수를 꿈꾼다.

신상훈은 “제안받고 보름 넘게 고민하다가 후배들을 위해 미국행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해외 생활의 어려움을 안다. 9년 전 대한아이스하키협회가 평창 올림픽 유망주 육성책으로 가동한 ‘핀란드 프로젝트’ 멤버로 뽑혀 핀란드 2부 리그에서 한 시즌 뛰어봤다. 고교 시절 경기당 3포인트씩 꽂아 천재로 이름 날렸던 그였지만 한국을 벗어나니 아무도 그를 몰랐다. 언어 소통의 어려움과 인종 차별의 설움을 절절히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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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훈


“사실 두려워요. 핀란드 때는 5명이 함께 갔는데, 이번엔 저 혼자 가는 거라서요. 아이스하키는 자신 있는데, 선수들과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커요. 나이 차도 제법 있고, 제가 영어를 잘 못하니까 경기 도중에 오가는 말을 이해할지도 염려되고…. 그런데도 후배들 생각하면 없던 용기도 생깁니다. 한국에서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제가 어떻게든 새 길을 내야 후배들도 꿈을 가질 수 있다는 절박함이 있습니다. 제가 경험하는 넓은 세상을 후배들도 보게 해줘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껴요.”

◇”한국 아이스하키 후배들을 위해”

신상훈은 한국 아이스하키 ‘황금 세대’의 막내 에이스다. 2013년부터 대표팀 개근 멤버인 그는 ‘키예프의 기적’으로 불리는 2017년 IIHF 세계선수권 2부 리그 우크라이나와 최종전에서 마지막 페널티 샷을 성공시켜 한국을 사상 첫 월드챔피언십(1부 리그) 승격으로 이끌었다. 이듬해 평창 올림픽 핀란드와 최종전에선 한국의 마지막 골을 어시스트했다. 2019년엔 세계선수권 2부 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2019-2020시즌 아시아리그 득점왕도 차지했다. 그는 작년 8월 치른 올림픽 예선 탈락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준비 과정이 충실했다면 미련이 없을 텐데, 전혀 그렇지 못했어요. 진천 선수촌은 도쿄 올림픽 때문에 아예 못 들어갔고, 태릉 빙상장과 안양 빙상장도 방역 문제로 못 써서 올림픽 최종예선전이 열린 노르웨이로 무작정 건너갔어요. 저희와 같은 조(노르웨이·덴마크·슬로베니아) 팀들은 훈련은 물론 자국 리그도 정상적으로 치렀어요. 실전 감각이 비교가 안 됐죠. 국제 경기 규칙이 몇 가지 바뀐 것도 현지에서 알았고요. 그래도 막상 붙어보니까 ‘우리가 훈련만 잘했다면 1~2승은 하겠다’ 싶었는데, 결국 세 번 모두 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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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이스하키의 시계는 멈춰있지만, 신상훈은 어떻게든 다시 움직이게 할 방법을 찾고 있다. "아무것도 하는 일 없다가 무기력하게 은퇴를 맞이하고 싶진 않아요. 동료 선수들도 이런 뜻은 확고해서 매일 열심히 훈련하고 있습니다."/안양=장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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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훈은 키(170㎝)가 작지만 3S(스킬·스피드·센스)를 갖췄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남보다 두 배 이상 한다. 작은 체구 때문에 수 없이 넘어져도 다시 벌떡 일어나 슈팅을 날린다. 동료들은 “바퀴벌레보다 끈질긴 생존력”이라고 감탄한다. 최근 NHL에서 자니 구드로(캘거리 플레임스)·알렉스 디브린캣(시카고 블랙호크스) 등 키 175㎝ 미만 선수들이 스피드와 순발력으로 리그를 휘젓는 추세도 그에겐 반가운 일이다. 백지선 한라 감독은 “가서 기죽지 말고 신상훈답게 하고 오라”고 격려했고, 골리 맷 달튼은 “내 친구가 글래디에이터스 주장이니 잘 챙겨주라고 부탁하겠다”고 응원했다. 그는 적막한 안양 빙상장에서 홀로 슈팅 연습을 수십 번 반복하며 눈을 빛냈다. “무엇이든 노력하면 된다고 믿고 힘껏 부딪혀 보겠습니다.”

안양=양지혜 기자

[양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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