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재일 교포들이 만든 오사카 인근 코마 골프장의 한옥 스타일 그늘집. 성호준 기자 |
골프장의 그늘집은 존재 이유가 있었다. 국내 골프장을 포함, 20세기 후반까지 대부분의 골프 코스는 1번 홀에서 출발해 코스에서 매우 멀리 떨어진 9번 홀을 찍고 클럽하우스로 되돌아오는 루트였다.
아직도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 등 클래식 코스는 이런 원 웨이(one way)다. 예전엔 카트가 없으니 걸어야 했고, 냉장 용기도 부족해 음식이 상할 수 있으므로 중간에 간이 식당이 필요했다.
미국 골프장에는 스낵바나 맥주 등의 음료와 핫도그 같은 음식을 실은 이동 카트를 운영한다.
6.25 직후 한동안 국내에서 코스 중간 간이 식당을 매점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일본에서 코스 내의 간이 식당을 매점(賣店, 바이텐) 혹은 차점(茶店, 차미세)이라고 부르는데 그 영향을 받았다.
1960년대부터 매점 대신 그늘집이라는 용어가 보편화했다. 당시 티오프 간격이 길어 그늘집에서 맥주나 막걸리 등을 한 잔 걸치는 낭만도 있었다.
1990년대를 기점으로 9번 홀이 클럽하우스로 돌아오고, 1번 홀과 10번 홀에서 동시에 출발하는 인-아웃 시스템 코스가 늘었다. 골프장의 수입 증대, 좋은 출발 시간대를 늘리기 위해서였다.
4일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올해 업무계획으로 “골프장 표준약관에 그늘집과 경기보조원(캐디)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도록 약관상 불공정 조항을 시정하겠다”고 했다. 공정위는 이미 내부적으로는 표준약관 개정 방향과 이를 위한 절차를 검토하는데 착수했다는 보도다.
김해 롯데 스카이힐 골프장의 그늘집은 무인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롯데 스카이힐] |
코로나 특수에 편승해 골프장 이용료가 대폭 올랐다. 다들 어려운데 골프장이 폭리를 취한다는 원성이 높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공정위 정책이 제대로 된 진단을 토대로 한 것인지 갸웃하게 된다.
요즘 그늘집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인건비 건지기도 힘들어 대부분 문을 닫았거나 무인점포로 운영된다. 가격이 비싸 외면 받은 게 가장 큰 이유다. 인-아웃 시스템이라 금방 클럽하우스로 돌아가고 카트를 타니 걸을 때만큼 배가 고프지도 않다. 요즘 그늘집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건 화장실뿐이다.
공정위는 클럽하우스 내 식당 혹은 스타트하우스와 그늘집을 혼동한 것 같다. 공정위의 말실수를 꼬투리 잡으려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 와중이라 클럽하우스 식당도 철퇴를 맞을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클럽하우스 식당이 매우 비싼 건 사실이지만, 요즘 강매는 거의 없다. 골프장 손님이 모자랄 때는 단체팀에 그린피를 대폭 할인해주고 대신 클럽하우스 식당을 이용하게 했지만, 요즘은 부킹 난이라 이런 단체팀이 없다. 원하지 않으면 이용하지 않으면 된다.
공정위가 주장한 캐디 선택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일괄적으로 강제하기는 어렵다. 카트 운전은 자동차 운전과는 다르다. 산악지형이 많은 코스에선 대형 사고가 날 수 있다.
캐디피가 많이 올랐지만, 핵심은 수급불균형이다. 최저시급이 올라 힘든 캐디 일을 하려는 사람이 줄었고, 골프장들끼리 캐디 스카우트를 하면서 인건비가 올랐다.
규제하려면 대상은 카트여야 한다. 골프장들은 2000만원에 불과한 카트를 슈퍼카 가격에 빌려준다. 골프장 내 카트 운영이 독점이라 배짱 장사다. 수많은 불공정이 숨어 있을 것이다. 이를 시정하는 게 공정위가 할 일 아닌가.
1991년 8월 본지엔 ‘정부는 사치·낭비풍조로 비판받고 있는 골프장 운영방법을 고쳐 골프장 캐디제를 폐지키로 했다. 또 중간휴게소(그늘집)도 대폭 축소, 자판기로 대체키로 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31년이 지나 비슷한 대책이 나왔다. 공통점은 둘 다 실효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고, 다른 점은 당시엔 그늘집 등이 뭔지 제대로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잘 모른다는 것이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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