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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은자의 나라’가 골프 선진국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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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한국의 골프장 수는 600개 이상이다. 스크린골프 라운드 수는 연 1억 회 정도다. 사진은 지난 해 개장한 라싸 골프장.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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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골프 코스는 1900년 원산 세관 구내에서 시작됐다고 1940년 일본 ‘월간 골프’에 다카하다가 기고했다. 1905년 일본인이 영국인의 주택을 철거하다가 신문에 쌓인 골프클럽을 발견했는데 그 신문의 발간연도가 1897년이었다는 것이다. 또 촌로들의 증언이 있었다고 한다. 1897년 이전 한국에서 골프가 시작됐다면 중국(1899년), 일본(1900년)보다 빠르다.

한국의 첫 골프 기자였던 최영정은 “이에 대한 증거가 없으며 다카하다의 주장이 일관되지 않다”고 평했다. 『한국 골프의 탄생』 을 쓴 스포츠 사학자 손환 교수(중앙대 체육교육과)는 “실제 영국인들이 골프를 했다 하더라도 우리 국민과 상관이 없기 때문에 이를 골프의 시작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1921년 개장한 효창원 골프장을 한국 골프의 효시로 봐야 한다. 올해가 한국 골프 100주년이다.

효창원은 남만주 철도 경성관리국이 만들었다. 철도국 직영 조선호텔에 손님들이 오래 머물 것으로 기대했다. 위치는 현재 효창공원과 숙명여대, 공덕동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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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문을 연 효창원 골프장. [중앙포토]


설계자는 영국인 H. E. 던트다. 그는 ‘은자(隱者)의 나라에서의 골프(Golf the hermit kingdom)’라는 글을 썼다. 그는 “송림이 울창하고 잡초가 무성한 효창원에 코스를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묘를 치우는 것을 조선인들이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손환 교수는 효창원 골프장의 코스 맵이 그려진 그림엽서를 찾아냈다. 9홀, 전장 2322야드이며 코스의 기준 타수는 기록되지 않았다. 등고선이 많은, 오르막 내리막이 심한 골프장이었다.

188야드 1번 홀의 이름은 용산이다. 2번 홀은 파라다이스, 오르막의 200야드 3번 홀은 알프스다. 던트는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최고 명당자리고, 남산 중턱에 있는 성벽이 송림 사이로 보여 눈의 피로를 덜어 준다. 산길에는 서낭당이 있다. 길을 가는 사람들이나 나그네들은 그곳에서 무사 안녕을 비는 풍습이 남아 있다”고 썼다.

9번 홀 이름은 F.D.A, ‘모두에게 공짜 한 잔(free drink for all)’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이다. 던트는 “우거진 나무숲, 그린 주변 시냇물, 안쪽에는 바위로 둘러싸인 병풍. 모두 한 잔 마시자는 감탄사가 나오게 마련”이라고 했다.

효창원은 하루 그린피 1엔, 1개월 5엔, 1년 25엔의 회비제였다. 손환 교수는 “금값으로 비교해 보면 당시 1엔은 현재 2만5000원 정도”라고 봤다. 클럽 한 세트(4개)를 50전에 빌려줬다. 볼은 귀중품이었다. 플레이 후 돌려받았는데 직원들에게 “화장품 이상으로 소중히 보관하자”고 했다.

골프는 뒤죽박죽이었다. 골프를 모르는 사람이 캐디 마스터를 맡았다. 퍼팅은 무사도 정신에 위배된다고 여겨 그린에 올라가면 그냥 공을 집어 다음 홀로 갔다고 전해진다. 더운 날엔 배가리개만 한 채 나오는 사람도 많았다. (최영정, 『코스에 자취를 남긴 사람들』)

현재까지 남아 있었다면 효창원은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1933년 개장)보다 12년 먼저 생긴 유서 깊은 골프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래 가지 못했다. 이곳은 아웃 오브 바운스(OB)가 많았는데 코스 밖 행인들이 볼에 맞아 종종 싸움이 났다. 골프를 좋아한 총독부 고위 관료는 코스가 너무 비좁다고 여겼다. 결국 1924년 문을 닫고 청량리로 옮겨갔다.

효창원 개장 후 100년이 흘렀다. 한국의 골프장 수는 600개로 늘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골프를 좋아하는 국민이라 할 만하다. 인구 대비 골퍼가 가장 많다. 한국 여자 프로 골퍼는 세계 랭킹 100위 중 32명을 점유하고 있다.

여성 캐디, OB 특설 티, 욕탕 등은 골프 종주국인 영국엔 없는 문화로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 전통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골프의 의미와 에티켓을 기반으로 한국 특유의 골프 문화도 만들 때가 됐다. 골프 여행가 류석무씨는 “아이들이 골프를 접한다면 정직성, 에티켓 등을 어릴 때부터 체화해 존경받는 선진국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스크린골프를 창조했으며 국내 자본이 타이틀리스트, 테일러메이드 등 메이저 용품사의 주인이 됐다. 최근엔 IT 기업들이 골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던트가 본 ‘은자의 나라’는 세계골프산업의 중심이 되고 있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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