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랩스틱 요소 덕에 대중과 친숙
골프의 진정한 의미도 알려줘야
강호동과 신동엽 등이 출연하는 골신강림 포스터.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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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채널만 돌리면 골프 예능이다. 종합편성채널이 주도하지만, 지상파에도 진출했다. 유튜브는 물론이고 OTT(Over The Top)로도 골프 예능이 나온다. 바야흐로 골프 예능 전성시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골프 전문 채널을 제외한 방송에서 골프는 금기였다. 영화에서 드라이버는 잔인한 조직 폭력배의 무기로 단골 등장했으며, 골프장은 로비, 혹은 허세 떠는 장소로 이용됐다. 그러니까 골프는 악의 상징이었다.
골프 방송이 늘어난 건 골프에 대한 오해가 어느 정도 풀리고, 친숙해졌다는 뜻이다. 연예인들은 골프 노출을 꺼렸는데 이제 이승기, 손예진 등 톱스타들도 골프 방송이나 유튜브에 나온다.
골프 예능이 늘어난 또 하나의 이유는 골프에 있는 슬랩스틱 요소일 것이다. 뒤땅치기와 왕슬라이스 같은 실수 장면들이 골프 예능의 핵심 콘텐트 중 하나다. 희한한 어드레스와 우스꽝스러운 스윙을 하며 잘 쳤다고 우쭐했다가, 실수하면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실망하고, 작은 내기 돈에 아옹다옹하며, 때론 몰래 공을 옮겨 놓는 평범한 골퍼의 모습을 필름으로 찍는다면 딱 슬랩스틱이다.
채플린이 자고 있는 사람의 입에 들어간 공을 꺼내기 위해 배를 밟고 있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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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00년 전인 1921년, 슬랩스틱의 대명사 찰리 채플린이 골프를 소재로 한 무성 영화 ‘유한계급(The Idle class)’을 만들었다. 단편 영화인데 5개월이나 제작한 역작이다. 채플린의 영화는 한국에선 ‘XX광 시대’로 많이 번역됐다. ‘골드 러시(The Gold Rush)’는 ‘황금광 시대’, ‘베르두 씨(Monsieur Verdoux)’는 ‘살인광 시대’가 됐다. ‘유한계급’도 얼마 전까지 ‘골프광 시대’로 번역됐다.
영화 ‘골프광 시대’에 대한 국내 평가는 ‘골프 치는 유한계급을 비웃는 내용’이 대다수다. 그러나 골프인을 비웃기에는 영화 속 채플린의 골프 실력이 너무 좋다. 그는 사람의 입속에 들어간 공을 치기 위해 배를 밟아 볼이 튀어 오르게 하고 쳤다. 한 바퀴 회전을 한 후 공을 말끔히 쳐 내기도 한다.
채플린이 할리우드 저택에 9홀짜리 파3 코스를 만들었다는 기사도 남아 있다. 오거스타 내셔널 등을 디자인한 최고 설계가 알리스터 매킨지가 만들었다. 채플린은 또 리비에라, 시카고 같은 명문 클럽의 회원이었다. 이 정도면 채플린은 엄청난 골프광이었다.
‘골프광 시대’는 골프 치는 사람을 비웃는 게 아니다. 영문 위키피디아는 “채플린 자신의 이중성, 또 불행한 결혼을 풍자한 희비극”이라고 했다. 우리는 채플린과 골프광 시대를 오해했던 거다.
골프에 대한 오해도 아직 남아 있다. 한국에선 내기가 성해 ‘고스톱 18판’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많다. 경쟁 구도를 만드는 예능 프로그램이 이런 생각을 더 강화할 수 있다.
예능을 다큐멘터리처럼 하라는 말은 아니다. 지금처럼 재미있게 만들면서도, 골프는 자연과 벗하면서 친목을 다지고, 에티켓을 배우고, 복잡한 상황을 겪으며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는 스포츠라는 점도 조금은 알려줬으면 좋겠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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