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9 (목)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여자 골프 금메달의 무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남자 선수들 병역 부담감에 실력 발휘 못해

여자 선수들은 1등을 해야한다는 압박감 커

지나친 기대보다 경기 즐길 수 있게 도와야

중앙일보

한국 여자 골프 대표팀이 가스미가세키 골프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0여 년 전 농구 담당 기자를 할 때다. 인터넷 농구 커뮤니티에서 당시 고교 유망주 중 뛰어난 가드 네 명을 ‘사대천왕’이라고 불렀다. 인터넷의 글을 보면 사대천왕은 강동희나 이상민을 뛰어넘을 최고 선수가 될 것 같았다.

실제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실력이 과대평가된 점도 있고, 과도한 칭찬이 성장을 방해했을 수도 있다. 선수들은 여론에 영향을 받는다.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남자 골프 선수들이 메달을 따지 못했다. 세계 랭킹 167위 로리 사바티니가 은메달을 딴 걸 보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임성재는 마스터스에서 준우승을 했고 김시우는 제5의 메이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등 3승을 거뒀다. 우리 선수들은 메이저인 디 오픈을 포함 몇 개 대회를 불참하고 올림픽 준비를 했다. 한국 선수 실력이 모자랐다기보다는 부담감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김시우는 경기 후 “너무 잘하려는 마음이 커 부담이 됐다”고 말했다.

남자 선수들에게 올림픽 메달의 가치는 매우 크다. 미국 PGA 투어에서 얻는 수입, 병역을 마친 후 투어에 적응하지 못할 가능성을 따지면 수백억 원이 걸린 게임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중앙일보

여자골프 대표팀 박인비, 고진영, 박세리 감독, 김세영, 김효주(왼쪽부터)가 31일 일본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주는 여자 선수들이 경기한다. 화려한 멤버다. 세계랭킹 2위(고진영), 3위(박인비), 4위(김세영), 6위(김효주)인 한국 선수들은 모두 우승 후보다. “한국 선수들은 어벤저스”, “한국이 금, 은, 동을 싹쓸이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한 건 아니다. 골프는 컨디션에 따라 경기력이 크게 좌우된다. 국가대항전 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 ‘어벤저스’ 한국이 1등을 한 것은 3개 대회에서 한 번뿐이다. 현재 세계 랭킹 1위는 한국 선수가 아니다. 유카 사소 등 겁 없는 젊은 선수들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적은 부담이다. 한국 여자 선수들은 다른 나라 선수보다 올림픽을 매우 중시한다. 또한 세계 여자 골프 최강국인 한국이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받게 될 비난도 만만치 않다. 그건 내리막 훅 라인의 1m 퍼트 같은 것이다. 반드시 넣어야 하지만, 넣기가 만만치는 않은 것, 못 넣으면 망신을 당하는 것, 그래서 더 몸이 굳는 것.

골프는 극단적인 멘탈 스포츠다. 빨리 날아오는 야구공을 칠 때 무의식적으로 반응하지만 정지된 공을 치려면 여러 생각이 든다. 또한 주위의 기대에도 영향을 받는다.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압박감은 매우 무겁다.

그래서 매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양궁이 위대한 것이고, 2016년 올림픽에서 일부 팬들의 적대감을 이겨내고 금메달을 딴 박인비가 대단한 것이다.

세계 최고인 우리 선수들이 경기를 즐기게 하자. 부담 없이 집중해서 경기하면 메달은 따라 오는 것이고, 설령 메달이 안 나와도 세상의 끝은 아니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