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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세계 1위 밀려나자마자 우승한 고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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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 우승 못해 “골프 사춘기 같다”

정상서 내려온 위기를 기회로 바꿔

세계 1위 탈환, 올림픽 메달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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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영이 벌룬티어스오브아메리카 클 래식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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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영(26)이 5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더콜로니의 올드 아메리칸 골프장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벌룬티어스오브아메리카 클래식에서 마틸다 카스트렌(핀란드)을 제치고 16언더파 268타로 우승했다.

고진영은 지난 7개월간 우승이 없었다. “골프 사춘기에 빠진 것 같다”는 인터뷰도 했다. 지난주 세계 랭킹 1위에서 밀려나자마자 보란 듯 반등했다.

세계 랭킹 1위 선수들은 이에 어울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욋일도 많다. 인터뷰 요청이 잦고, 대회 홍보 행사에도 참가해야 한다. 수많은 경쟁자의 도전도, 미디어와 팬들의 주목도 견디고 즐겨야 한다. 그게 쉽지만은 않다.

청야니(대만)는 랭킹 1위를 달릴 때 “1위가 부담스럽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남자 골프 랭킹 1위를 했던 루크 도널드(잉글랜드)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도 “랭킹 1위라는 부담감이 없다면 경기가 더 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들은 랭킹 1위에서 밀려났을 때 “홀가분하다. 이제 더 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한 번 밀리면 멈추기는 쉽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데이비드 듀발(미국)이다. 1999년 타이거 우즈(미국)와 1등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다 기우뚱한 후 끝없는 미끄럼을 탔다. 투어 카드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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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샷하는 고진영.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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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를 오래 유지하긴 쉽지 않다. 정상의 운동선수가 갖춰야 할 초인적인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도 야구로 외도하기도 했고, 여러 번 은퇴했다가 코트로 돌아왔다.

골프는 실수가 빈번한 게임이고,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개인 종목인 골프는 혼자 모든 걸 책임져야 하므로 더 힘들고 고독하다. 타이거 우즈와 안니카 소렌스탐이 1등의 자리에 오래 머문 건 그래서 대단한 일이다.

어떤 선수는 실패했을 때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능력, 이른바 회복 탄력성이 높다. 오히려 실패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기도 한다. 고진영의 뚝심도 놀랍다.

지난 2017년 LPGA 투어 하나은행 챔피언십 최종라운드 챔피언 조에서 고진영은 박성현-전인지와 맞대결했다. 두 스타의 팬들이 경쟁적으로 응원했고, 고진영은 외로운 싸움을 했다.

11번 홀에서 고진영은 약 60㎝ 거리의 버디 기회를 잡았다. 공과 홀 사이 그린 상태가 좋지 않았다. 수리해도 되는 피치 마크인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스파이크 자국인지 물었다. 동반자는 수리하면 안 된다고 했다. 고진영은 그냥 퍼트해야 했다. 공은 홀을 스치고 지나갔다.

기분 나쁘고 흔들릴 만했지만, 고진영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다음 홀에서 버디를 잡고 보란 듯 우승을 차지했다. 고진영이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라고 했다.

우즈는 지난해 마스터스 최종라운드 12번(파3) 홀에서 7오버파 10타를 쳤다. 공을 세 개나 물에 빠뜨렸다. “선수 교체를 해줬으면 하는 심정이었다”고 나중에 고백할 정도로 참혹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즈는 이를 극복하고 남은 6개 홀에서 버디 5개를 잡아냈다.

고진영을 가르친 멘탈 코치 정그린 그린코칭솔루션 대표는 “고진영은 워낙 성취욕이 강하다. 기본적으로 잘 다듬어진 선수다. 시야를 넓게 하고, 우승이나 1등에 연연하지 않게 가르쳤다. 장거리 목표를 설정하게 했다. 10년 후 미래를 그리면서 현재는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샷 하나 하나에 집중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고진영은 아직 랭킹 1위 넬리 코다(미국)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추월을 위한 시동은 걸었다. 그는 “도쿄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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