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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난소암 말기로 3개월 시한부 판정” 양희은, 소녀가장→지금의 ‘포크음악 전설’ 되기까지 (‘희열3’)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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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

[OSEN=김수형 기자] ‘대화의 희열3’에서 양희은이 소녀가장이었던 어린 시절부터, 난소암말기로 시한부 3개월 판정을받은 일화를 예고했다.

24일 방송된 KBS 2TV 예능 ‘대화의 희열 시즌3’에서 가수 양희은이 출연했다.

이날 양희은은 재수하던 시절을 회상, 명동에 ‘청개구리’를 방문했다는 양희은은 “갈 곳없는 젊은이들의 집이었다, 어느날 친구가 학교에서 노래 제일 잘하는 친구가 있다며 내 이름을 쪽지에 적었고, 단상에서 노래부르게 됐다”면서 “반응이 좋으니까 정말 터졌다”며 예상치못한 폭발적인 반응에 놀라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타쳐주던 선배가 김민기, 서유석 선배”라 했고, 유희열은 “대한민국 음악 유대의 시작이다”며 놀라워했다. 김민기 작은 음악회에 방문했다는 양희은은 “처음으로 ‘아침이슬’ 노래를 불러, 그 노래 배우고 싶었고, 공연이 끝난 후 청소 아주머니가 찢어진 악보를 담길래 그걸 건져왔고, 집에서 혼자 연습했다”고 했다.

당시 가난에 허덕이던 삶을 보냈다는 양희은은 “가수로 꿈을 꿔본 적은 없어, 생활고를 벗어나기 위해 가수의 길을 걷게 됐다”고 데뷔 비화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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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은 “1집 앨범에 ‘아침이슬’을 불렀으면 좋겠다고 했고, 김민기 선배가 허락했다”면서 “노래가 화폐가 된 다는 걸 생각해 본 적 없던 시절, 노래를 어떻게 돈을 받고 부르냐는 세월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집에 수록된 10곡을 하루에 다 마들며 명반이 탄생하게 됐다고 했다.

1971년 양희은의 첫 앨범인 1집 반응을 물었다. 양희은은 “어느날 라디오를 통해 버스에서 아침이슬’ 노래가 나와, 너무 놀랐는데 내 목소리같지 않더라, 잊을 수 없는 기분, 아무도 날 몰랐지만 심장이 쿵쾅거렸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김민기와 수많은 곡 작업을 했다는 양희은은 특히 72년에 명곡들이 쏟아졌다고 했다. 양희은에게 김민기는 어떤 존재였는지 묻자 그는 “내 어린날 나의 우상, 그 모든 것이 별처럼 빛났다”면서 “낭만적 가사와 달리 생계를 위해 불러야했던 노래였지만, 선배는 음악과 현실을 타협하지 않고 맑음을 지켜나가더라,나는 뭔가, 나는 썩어가나 싶었다, 선망과 주눅? 나중엔 서있는 자리가 다르구나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양희은하면 청바지의 상징이라고 하자, 그는 “스타킹을 감당할 재력이 없었다, 어려운 형편에 자주 올이 나가는 스타킹 신기가 어려워 완전히 망한 집안 출신이었다”면서 “친구가 선물로 사준 와이셔츠에 청바지 한 벌을 계속 돌려입었다”고 떠올렸다. 양희은은 “감히 어디서 무대에 운동화, 청바지 입고 올라오냐고 해, 예의없다고 격노한 선배들도 있었다”면서 “무대는 그만큼 성스러운 곳이었던 정서가 있다”고 했다.

양희은은 “어쨌든 청바지를 입은 최초의 여가수, 뭐라고 하든, 내 분수에 맞는 옷이 청바지였다”면서 “통기타에 어차피 옷이 가려졌기에 옷을 차려입을 필요도 없었다”고도 덧붙였다.

계속해서 양희은은 간 악화로 아버지가 2년만에 세상을 떠났다면서 소녀가장이었다고 고백했다. 양희은은 “내 나이 13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새엄마와 남은 시간이 더 힘들었다, 갈등이 심했다”며 운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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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더욱 방황했다는 양희은은 “아버지 산소갔다가 누가 간첩신고도 해, 경찰서에 끌려가 신원조회했다”면서 “아버지 산소에 갔다왔다고 해도 안 믿어, 마침 경찰서장이 과거 아버지 부관이었다, 오해를 풀고 무사히 귀가했다”고 말했다. 간첩으로 오해받은 황당한 사건이었다.

양희은은 “악재가 쏟아진 날 송창식을 찾아가, 고 이종환의 라이브 카페에 갔다 노래 좀 하게 해달라했고 오디션을 봐서 합격했다”면서 “이후 바로 가불 요청해, 당시 시세로 컸던 4만원을 월급받아, 펑크난 무대를 떼워주며 혹독하게 노래했던 시절이다”고 회상했다.

송창식이 10분 내준 무대에 대해서 양희은은 “누군가를 추천한 사람은 유일하게 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해,나중엔 집이 망하건 안 망하건 노래를 불렀어야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며 자신을 알아봐준 송창식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에 유희열은 “송창식도 당시 접도 절도 없던 시절, 학교에서 노숙했던 분, 비슷한 처지인 양희은을 발견한 것”이라며 놀라워했다.

양희은은 “빚 액수가 집 두 채 값이었다, 난 희망이 없었다”면서 “매일 일수 도장 찍듯 노래를 하면 차압으로 가져가니까 돈을 만져본 적 없어, 그래서 별명도 라면과 회수권이었지만 그런 시간들이 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이유에 대해 양희은은 “아버지 영혼이 있다면 날 지켜줄 거라 믿어, 그 힘이 컸다”면서 “겁이 많았지만 남들이 겁없다고 본 이유”라고 했고, 유희열은 “슬프다, 마음 아픈 얘기”라며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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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명동 ‘오비스 캐빈’을 언급하며 계속해서 과거를 회상한 가운데, 양희을은 ‘아침이슬’, ‘상록수’가 아직도 넘어서야하는 풀지 못한 숙제라 했다.

그러면서 난소암 말기로 석달 밖에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는 양희은은 “의사가 싸워나가자 하는데 싫다고 해, 죽고 싶다고 죽는게 아니고, 살고 싶다고 살아지는게 아니니까”라고 말하며 과거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일화도 언급해 궁금증을 안겼다.

/ssu0818@osen.co.kr

[사진] ‘대화의 희열3’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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