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바타나킷의 롤모델 주타누간
드라이브샷 246야드로 확 짧아져
이른 프로 전향으로 마음에 상처
새 챔프 타바타나킷도 더 두고 봐야
LPGA 투어에서 최장타자로 꼽히는 아리야 주타누간은 ANA에서 평균 거리 꼴찌였다. [USA투데이=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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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메이저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 우승자 패티 타바타나킷(21)의 드라이브샷 거리가 화제다. 평균 323야드를 쳤다. “여자 타이거 우즈, 혹은 여자 브라이슨 디섐보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323야드에는 거품도 있다. ANA에서 평균 거리를 재는 홀은 2, 3번 홀이다. 두 홀 모두 내리막이다. 또 미국 골프장은 페어웨이가 딱딱해 런이 많이 생긴다. 투어는 흥행을 위해 이런 곳에서 거리를 재는 경우가 많다. ‘더스틴 존슨의 400야드 1온’ 같은 기사가 나올 수 있게 한다. 미디어도 이를 좋아한다.
이번 대회에서 타바타나킷이 가장 멀리 친 건 맞지만, 디섐보가 344야드 호수를 넘긴 것처럼 깜짝 놀랄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는 여자 장타자 중 한 명으로 이번 대회에서 유달리 컨디션이 좋았다.
이번 대회 타바타나킷의 323야드보다 더 놀라운 숫자가 있다. 역시 태국 출신 거포인 아리야 주타누간의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다. 246야드로 119명 중 117위였다. 말도 안 되게 잘못 맞아 계산에서 뺀 샷을 포함하면 228야드로 119위(꼴찌)다. 타바타나킷은 주타누간이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2016년 그를 롤모델로 꼽았다.
LPGA 캐디들은 주타누간을 최고 장타자로 꼽는다. “거구 로라 데이비스가 20대로 돌아가서 요즘의 용품으로 치면 모를까, 거리로는 주타누간을 이길 여자 선수가 없다”는 것이다. 주타누간은 3번 우드로 평균 285야드 정도 친다. 렉시 톰슨의 드라이버보다 길다. 그런 주타누간이 거리 꼴찌를 했다.
평균 323야드를 치고 우승한 신예 패티 타바타나킷.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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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주타누간과 그의 언니 모리야를 소재로 한 영화 ‘두 자매 만들기’가 태국에서 개봉했다. 아버지는 한밤에 공동묘지로 딸들을 데려가 “50바퀴를 뛰어라. 요령 부리지 마라”고 지시한다. 또 딸들을 따라가며 “더 빨리, 더 빨리” 채근한다. 다리에 모래주머니까지 단 자매는 지쳐 잠든다. 자매는 철봉에 매달리고, 훈련 중 벙커에서 혼절하고, 너무나 힘든 나머지 울면서 스윙하기도 한다.
주타누간의 가장 큰 문제는 너무 이른 프로 전향이 아닌가 한다. 그는 만 16세이던 2012년 말 프로가 됐다. 프로는 전쟁터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 이듬해 2월 주타누간은 참사를 겪는다. LPGA 투어 혼다 타일랜드에서 2타 차 선두를 달리다가 마지막 홀에서 트리플보기를 해 박인비에게 역전패했다.
이런 경험은 어른도 이겨내기 힘들다. 1999년 디 오픈에서 마지막 홀 트리플보기로 우승을 날리고 사라진 장 방드 밸드를 보라. 2016년에도 주타누간은 ANA에서 마지막 세 홀 내리 보기를 해 리디아 고에 역전패했다.
그냥 사라지기에 주타누간은 재능이 너무 뛰어났다. 심리 코치를 고용해 샷 직전 미소를 짓는 스마일 루틴으로 한 동안 좋은 성적을 냈다. US오픈과 브리티시 오픈을 포함해 통산 10승을 거뒀다. 그러나 스마일 루틴도 오래 가지 못했다. 2018년 7월 이후 또 우승이 없다. 슬럼프가 길다. 감수성이 예민한 10대에 생긴 상처는 생각보다 깊고 오래 간다.
주타누간이 좀 더 늦게 프로가 됐다면 어땠을까. 경험은 적을지 몰라도 상처가 없었을 거고, 훨씬 더 좋은 성적을 냈을 거라 생각한다. ‘300야드 소녀’ 미셸 위가 기대만큼 성적을 내지 못한 것도 어릴 때 남자대회 등에 나가서 받은 상처 때문은 아닐까.
타바타나킷은 더 두고 봐야 한다. 골프는 그 어떤 약속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상적인 건 323야드보다, 마지막 날 10언더파를 치며 추격한 리디아 고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버틴 거다. 그의 롤 모델 주타누간과는 달리, 마음에 상처가 없는 것 같아 보기 좋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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