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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미얀마, 1967년 反中폭동 재현 우려… “中연결 가스관 테러” 얘기도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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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뉴스 저격] 미얀마와 중국 ‘악연의 역사’

#1. 지난 14일 오전 쇠파이프와 각목, 휘발유 통을 든 무리가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의 중국 의류 공장에 들이닥쳤다. 이들은 창고와 기숙사에 불을 지르고 돌로 사무실과 자동차 유리창을 깼다. 검은 연기가 공단 위를 덮었다. 공격은 저녁까지 계속됐다. 중국대사관은 공장 37곳이 피해를 입고 중국인 3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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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2일 미얀마 양곤의 중국대사관 앞에서 미얀마인들이 군부 쿠데타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켜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 등 문민 정부 인사를 구금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일부 시위대는 아웅산 수지의 사진(왼쪽)을 들고 석방을 호소했고, 다른 시위대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얀마 군부를 조정하는 그림이 그려진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중국이 쿠데타의 배후라는 취지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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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발 미얀마의 중국인들을 미워하지 마세요. 우리는 여기서 태어났습니다.” 지난 14일 양곤에서 군경의 총에 숨진 의대 1년생 칸냐헤잉(중국명 린야오종·18)의 어머니 아신씨는 16일 아들 장례식에서 언론에 호소했다. 칸냐헤잉은 중국계 미얀마인이다. 손자를 먼저 떠나 보낸 할아버지는 중국어로 말했다. “중국 정부! 우리는 화인(華人·외국 국적을 취득한 중국 출신)입니다. 우리를 생각해서 미얀마 시민과 미얀마 내 화교를 도와주세요.”

2월 1일 아침 미얀마 군부가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이 이끄는 집권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인사들을 구금하면서 시작된 쿠데타가 26일로 55일째를 맞았다. 미얀마 전역에서는 군부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져 미얀마 군부 발표로 160여명, 시민단체와 언론 집계로는 300명 가까이 군경의 총탄에 희생됐다. 특이한 점은 시위 과정에서 미얀마 내 반중 정서가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위대는 미얀마 군부에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국이 ‘내정 불간섭’을 내세워 쿠데타를 묵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 59년 전 군부 쿠데타 이틀 만에 승인

미얀마 관련 중국 매체인 ‘면화망’은 지난 16일 “미얀마 소셜미디어에 중국·미얀마를 연결하는 가스관을 훼손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등 미얀마 내 분위기가 1967년 반중 폭동 때와 비슷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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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인의 중국에 대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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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미얀마에서 네윈 장군이 이끄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중국 정부는 이틀 만에 네윈 군사독재 정부를 승인했다. 미얀마 군부는 중국이 미얀마 내 공산주의 세력이나 화교를 통해 미얀마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우려했다. 양국의 긴장은 1967년 미얀마 반중 폭동으로 폭발했다. 미얀마 군부가 중국에서 극좌사회운동인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중국계 학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학생들이 마오쩌둥 배지를 달지 못하게 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교사와 중국계 학생 사이에 시작된 다툼은 급기야 미얀마 시민들이 중국계 학교, 중국 대사관을 공격하는 폭동으로 이어졌다. 중국계 미용실, 영화관, 상점이 불탔고 중국인 30여명이 사망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네윈 정권을 타도해야 한다”는 버마(미얀마의 옛 이름) 공산당의 주장을 게재했다.

양국 관계는 단교 직전까지 갔지만 덩샤오핑이 집권하면서 중국은 다시 미얀마 군부를 껴안았다. 특히 1988년 민주화 시위를 탄압한 미얀마 군사 정권이 국제 사회로부터 제재를 받자 중국은 미얀마 군부에 군사, 경제적 지원을 하며 영향력을 확대했다. 미얀마 수도 네피도 국제공항은 중국수출입은행이 융자를 제공하고, 중국 기업이 건설에 참여했다.

미얀마 군사정권은 2008년 새 헌법을 도입, 2010년 직접선거를 통한 민정(民政) 이양을 결정했다. 외교가에서는 당시 미얀마 군부의 결정이 미국 등 서방 자본을 끌어들여 중국의 영향력을 상쇄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많았다.

중국·미얀마 프로젝트 지연, 미얀마 내 중국계 안전 우려 커져

민주화가 가시화되자 중국은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이 이끄는 NLD와의 협력에도 공을 들여왔다. 2015년 선거에서 NLD가 승리해 정권 교체에 성공하자 중국 물자와 돈이 미얀마로 몰렸다. 2016~2020년 중국과 미얀마의 무역은 연평균 11% 증가했다. 중국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포위 전략에 맞서 미얀마를 통한 인도양 진출이 필요했다. 집권 초기 친서방 제스처를 취했던 아웅산 수지도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학살로 서방의 비난을 받자 군부 출신보다 더 적극적으로 중국과 협력에 나섰다.

그렇다고 중국이 미얀마의 군통수권과 인사권, 의회 의석의 25%를 가진 군부와도 협력을 중단한 것은 아니다. 지난 1월 미얀마를 방문했던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뿐만 아니라 민 아웅 흘라잉 군 총사령관과도 따로 만났다. 이번 쿠데타의 책임자이자 현재 미얀마의 실권자다.

군부 쿠데타 직후 중국은 “미얀마 내정”이라며 불간섭 원칙을 천명했다. 하지만 미얀마 사태가 악화될수록 중국은 권력을 가진 군부와 NLD를 지지하는 미얀마인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양다리 전술’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이 미얀마 군부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를 반대하면서도 “쿠데타는 중국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천하이 미얀마 주재 중국 대사)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중국의 이런 태도가 군부에 대한 지지로 비치면서 반중 여론을 넘어 미얀마 내에서 중국의 이익마저 위협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장준영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연구원은 “2012년 중국이 미얀마에서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확대된 미얀마 내 반중 정서가 이번 시위를 계기로 결집,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싱가포르 싱크탱크인 ISEAS가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까지 미얀마 정부·학계·재계 등 오피니언 리더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7%는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가 걱정된다”고 답했다.

미얀마 반군부 시위는 이번 주말 절정을 이룰 전망이다. 시위가 또다시 반중 운동으로 이어질 경우 미얀마 내 중국 기업과 250만명에 달하는 중국인, 중국계 미얀마인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중국이 미얀마와 추진 중인 각종 경제 프로젝트 추진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중국 역사학자인 장리판은 소셜미디어에 “중국은 (미얀마 사태에서) 정치는 이기고 경제는 졌다”고 했다.

[미얀마와 밀접한 인도·일본, 군부 쿠데타에 ‘잠잠’]

2월 1일 미얀마 쿠데타 이후 미국·EU(유럽연합)·영국 등 서방 정부는 미얀마 군부를 비난하고 제재에 나섰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 등은 제재에 반대하며 불간섭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전통적 대립 가운데 민주 진영에 속한 일부 국가도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침묵을 택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도다. 인도는 중국처럼 육로로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벵골만도 공유하고 있다. 인도는 미얀마의 5위 교역국이다.

인도는 1988년 미얀마에서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을 때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주 진영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1990년 치러진 선거에서 민주 진영이 승리하고 미얀마 군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인도는 공개적으로 군부를 비판했다. 상당수 미얀마인은 조국을 탈출해 인도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 이후 인도는 군경 진압 과정에서 숨진 시위대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각 측이 최대한의 자제력을 발휘해 평화적이고 건설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다. 중국과 비슷한 입장이다. 또 쿠데타를 피해 인도로 넘어오는 미얀마인들을 막기 위한 국경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인도는 중국을 견제하려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미국·일본·인도·호주 4국의 안보 협의체 ‘쿼드(Quad)’에도 가입했다. 그럼에도 쿠데타에 침묵하는 것은 미얀마 군부를 비판할 경우 미얀마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만 강화할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G7(주요 7국) 회원으로서 미얀마 쿠데타를 비난하는 성명에 동참했지만 자체적으로는 아직도 “상황을 살펴보고 있으며 대응 방법을 고려하겠다”는 신중한 입장이다. 일본은 미얀마의 5위 투자국으로 미얀마가 서방 경제 제재를 받을 때도 미얀마와 경제적 협력을 이어왔다. 휴먼라이츠워치, 미얀마 인권단체 등은 일본 정부에 제재 등 행동에 나서라고 요구하고 있다.

[박수찬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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