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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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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화가야 베일 벗겨졌다…장신구 무더기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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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몸 장식한 꾸밈유물 일체 온전히 확인

"경주 황남동 신라 고분서 출토된 장신구 일체와 비슷한 구성"

비화가야 문화 성격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

아시아경제

63호분 석곽 내 피장자 꾸밈유물 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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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 교동 Ⅱ군 63호분을 발굴·조사해 비화가야 지배자의 장신구를 확인했다고 28일 전했다. 높이 약 21.5㎝ 금동관과 금동 드리개, 금동 막대장식, 굵은고리귀걸이(태환이식) 한 쌍, 남색 유리구슬 목걸이, 은반지, 은 허리띠 등이다. 관계자는 “비화가야 최고 지배층 고분에서 처음으로 피장자 몸을 장식한 꾸밈유물(착장품) 일체가 온전히 확인됐다”며 “신발이 발견되지 않은 점을 제외하면 지난 9월 경주 황남동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장신구 일체와 구성이 비슷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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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지역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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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관은 하단에 너비 약 3㎝의 관테(머리에 관을 쓸 수 있도록 둥글게 만든 띠)가 있다. 그 위에 세 단으로 이뤄진 나뭇가지 모양 장식을 세웠다. 관테 아래에는 곱은옥(曲玉)과 금동구슬로 구성된 금동드리개(金銅製垂飾)가 양쪽에 있다. 양 측면에는 원통형 금동막대 장식이 드리워져 있다. 관계자는 “세움장식 밑면에 관모(冠帽)로 추정되는 직물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했다. 전체 너비 45㎝의 은허리띠는 은장식 손칼 두 개와 띠끝장식이 드리개로 덧붙여졌다. 양손 부분에서는 각각 은반지 한 개(오른손)와 세 개(왼손)가 확인됐다. 피장자의 오른 팔뚝 부분에서도 팔찌나 손칼 장식으로 추정되는 원형금판에 연결된 곱은옥과 주황색 구슬들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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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분 근경(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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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이 출토된 63호분 석곽은 길이 640㎝, 너비 130㎝, 깊이 190㎝ 규모다. 피장자 주변에서 목질흔(木質痕)과 꺽쇠가 확인돼 상자형 목관(箱形木棺)이 사용됐다고 추정된다. 피장자 머리 위쪽에는 토기들과 철제유물들이 매납된 부장공간(길이 190㎝·너비 130㎝)이 있다. 발치 아래에는 바닥을 약 40㎝ 정도 낮춘 순장 공간(길이 220㎝·너비 130㎝)이 있다. 관계자는 “순장 공간에 두 명이 안치됐다고 추정된다”고 했다. “순장자의 치아 일부와 다리뼈 일부, 금동제 가는고리(세환) 한 점, 항아리 두 점, 철부(鐵釜) 두 점, 철겸(鐵鎌) 한 점이 출토됐다”면서 “순장 공간 곳곳에서도 꺽쇠가 다량 확인돼 순장자도 목관에 안치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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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귀걸이 노출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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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2014년부터 비화가야 최고 지배층 묘역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서 발굴조사를 해왔다. 지난해 11월 39호분 봉토에 가려져 도굴되지 않은 63호분 매장 주체부를 열었으며, 최근 매장 당시 피장자의 몸을 장식했던 금동관 등 꾸밈유물 일체를 확인했다. 이전까지 비화가야 지역에선 일제강점기 약탈과 도굴로 금동관의 일부 편과 장신구만 확인됐을 뿐 그 전모를 알 수 없었다. 관계자는 “이번 조사가 비화가야 무덤의 축조기법과 장송의례는 물론 복잡하고 다양한 문화를 보이는 비화가야의 성격 이해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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