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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떠나는 레전드가 일깨운 한 타석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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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8월 15일 한화-삼성전 8회 타석에 들어선 김태균. 그는 3루 땅볼을 쳤다. 이 타석이 김태균의 현역 마지막 타석이 됐다. / SBS스포츠 중계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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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인 2020년 8월 15일 한화-삼성전. 김태균(38)은 이날 경기에 앞서 통산 2000경기 출장에 대한 시상식을 가졌다. 역대 14번째 기록.

삼성의 선발 투수는 39세의 베테랑 윤성환(그가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면 현역 마지막 경기는 이 경기 엿새 뒤인 8월 21일 SK전이 된다). 1회 볼넷을 얻어낸 김태균은 3회 중견수 플라이, 6회 2루수 직선타구로 물러났다. 그리고 8회 2사 1·3루 찬스를 맞았다. 0-0 동점 상황이라 적시타 하나면 결승점을 기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태균이 김윤수를 상대로 친 땅볼 타구는 3루수에게 향했고, 삼성 이원석이 이를 잘 처리해 이닝을 끝냈다. 삼성이 결국 9회에 김동엽의 홈런으로 2점을 내며 2대0으로 이겼다.

예정된 작별이라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 이 타석이 김태균의 20년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는 타석임을 미리 알았다면 한화 팬들은 그래도 덜 서운했을 것이다. 5경기 연속 무안타를 기록한 김태균은 이날 경기를 끝으로 2군으로 내려갔다. 왼쪽 팔꿈치 충돌 증후군에 따른 염증 발생이 원인이었다.

그리고 올 시즌 김태균은 다시는 타석에 서지 못했다. 부상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김태균은 지난 21일 은퇴를 발표했다. 충남 천안 출신의 ‘로컬 보이’로 한화 한 팀에서만 18시즌을 뛰며 우타자로는 역대 최다 안타(2209개·전체 3위)에 통산 311홈런 1358타점을 기록한 레전드가 은퇴 경기도 없이 떠나는 것이다.

갑작스레 작별 인사를 건넨 김태균에게 한화 팬들은 남은 시즌 한 타석이라도 서달라고 애원한다.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태균은 단호하다. 더는 타석에 설 일은 없다고 못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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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은 8월 16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후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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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2일 은퇴 기자회견에서 “제가 은퇴 의사를 전달했을 때 구단에서 감사하게도 (타석에 한 번 서자는) 제의를 먼저 해주셨다”며 “물론 그 타석이 저에겐 매우 소중한 타석이 될 것이지만, 저보다도 한 타석이 더 간절할 수 있는 선수들이 있는데 제가 마지막 가는 길에 그 선수의 소중한 타석을 뺏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저도 고민을 많이 해서 결정한 것이라 번복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김태균은 “제가 설 그 한 타석에 어떤 선수가 나가서 자신이 내년에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고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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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은퇴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훔치는 김태균. / 박재만 스포츠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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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은 KBO리그에서 뛴 18시즌 동안 8225타석에 들어섰다. 타석 수를 따지면 역대 7번째다. 그 많은 타석에 한 타석 정도 더 보태는 건 큰일이 아닌 것 같지만 김태균은 한 타석의 가치를 강조하며 후배에게 그 타석을 양보하겠다고 한 것이다.

한화는 올 시즌 5283타석을 소화했다. 출루율은 0.320으로 10팀 중 가장 낮다. 결국 선수들이 주어진 타석을 잘 살리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한화 선수들은 타석에 설 때마다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간절하게 방망이를 돌렸는지, 조금도 소홀하게 타석에 임한 적은 없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할 것이다. 팀 레전드인 김태균이 떠나며 한 타석의 기회도 빼앗을 수 없다고 한 그 진심을 후배들은 알아야 한다. 한화는 22일 KIA에 패하며 7연패의 늪에 빠졌다.

타석이 달라지면, 경기가 달라지고, 경기가 달라지면 시즌이 달라진다. 김태균이 일깨운 한 타석의 소중함을 후배들이 마음 깊이 새긴다면 내년 한화의 야구가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

[장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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