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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홈런 ‘타자’ 김세영, 특급 마무리 ‘투수’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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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우승컵 안은 ‘역전의 명수’

위대한 선수 될 자격 충분히 증명

중앙일보

KPMG 여자 PGA 챔피언십 우승컵을 안으면서 기쁨을 만끽하는 김세영.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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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LPGA 투어 루키 김세영(27)은 놀라웠다. 두 번째 출전 경기인 퓨어실크 챔피언십 연장전에서 불가능할 것 같던, 덤불 속 공을 쳐내 챔피언이 됐다. 미국에서도 그는 뭔가 특별한 일을 해내는 선수라는 인상을 줬다. ‘역전의 명수’라는 별명이 허명이 아님을 다시 보여줬다.

메이저 대회에서도 그간 기회는 있었다. 데뷔 시즌 첫 LPGA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최종라운드를 3타 차 선두로 출발했다. ‘역전의 명수’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탓일까. 선두로 출발할 때 오히려 불안해 보였다. 김세영은 75타를 쳐 공동 4위로 밀렸다. 한 홀에서 4퍼트를 하기도 했다. 그냥 물러설 그가 아니었다. 2주 후 롯데 챔피언십에서는 ‘극장’ 우승을 했다. 패배가 눈앞에 보이는 듯 했는데, 18번 홀에서 칩샷을 넣어 승부를 연장전에 끌고 갔다. 이어 연장 첫 홀 페어웨이에서 그대로 홀인, 경기를 끝냈다. 당시 상대가 박인비였다.

6월 열린 메이저 대회 여자 PGA 챔피언십 최종라운드에서 김세영은 박인비에 2타 차 2위로 출발했다. 역전 기회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폭풍 샷은 나오지 않았다. 2위에 그쳤다. 한 달 뒤 US여자오픈에서 김세영은 샷 감각이 매우 좋다고 했다. ‘이번이 기회’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조직위원회가 공개하기도 전에 캐디가 핀 위치를 촬영했다는 석연찮은 이유로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다. 김이 샜다. 그래도 그는 그 해 3승을 했고 신인왕이 됐다. 그러나 메이저 대회에서는 이래저래 일이 꼬였고, 그 악연을 풀지 못했다. 2018년 에비앙 2위 등 메이저 우승 기회를 여러 차례 날렸다.

김세영은 LPGA 투어의 간판 선수다. 12일 열린 KPMG 여자 PGA 챔피언십 직전까지 통산 10승이었다. 지난해에는 LPGA 투어 사상 최대 상금(150만 달러)의 주인공이 됐다. 통산 상금은 900만 달러(약 103억원)를 넘는다. 메이저 우승만 빼면 모든 걸 가졌다. 그러나 골프에서 메이저 우승 숫자는 선수의 업적을 평가하는 가장 큰 기준이다.

이런 일화가 있다. 그레그 노먼(호주)이 한 번은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 선수 중에도 ‘위대한’ 선수가 여럿 있다”고 했다. 한 기자가 “그 선수 이름을 대보라”고 물었다. 노먼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맞다.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 선수 중에 ‘괜찮은’ 선수가 여럿 있다”고 했던 말을 고쳤다. 김세영은 LPGA 메이저 우승이 없는 선수 중 최다승 선수였다. 이 말에는 큰 경기에서 약한, 또 수비가 약한 선수라는 뉘앙스가 없지 않았다.

김세영은 불처럼 뜨거운 선수다. 9회말 역전 만루홈런을 때리는 강타자 같다. 그런 그가 자리를 바꿔 승리를 지켜낸 모습은 인상적이다.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를 연상시켰다. 부담이 큰 메이저 대회에서 그는 공격이 아니라 수비로 이겼다. 티잉그라운드가 아니라 그린에서 승리했다. 드라이브샷 거리는 36위(266야드)지만, 그린 적중 시 퍼트 수는 1위(1.66)다. 퍼트가 잘 될 때는 LPGA 투어 파 기준(-31), 타수 기준(257) 최저타 기록도 썼다. 72승의 안니카 소렌스탐도 장타에 퍼트를 더한 뒤에야 최고가 됐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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