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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OSEN '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

[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최동원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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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

2011년 9월 14일은 한국 프로야구 초창기 거목 최동원(1958년생)이 이 세상을 떠난 날이다. 공교롭게도 전설적인 타자인 장효조(1955년생)마저 불과 7일 앞서 9월 7일에 먼 나라로 갔다. 시나브로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문재 시인은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고 읊었다. (시 ‘소금창고’에서 부분 인용)

세월이 그냥 흐른 게 아니라 옛일을 떠올리면, 다시 다가오는 것이다.

그 해, 시즌을 앞둔 어느 이른 봄날, 최동원을 만났다. 당시 유영구 KBO 총재가 투병 중인 최동원을 위로해주기 위해 강남의 한 작은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같이하는 자리였다. 몇 야구인이 함께했다.

최동원은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그는 “강원도 정선에서 단식을 끝내고 서울로 왔다”고 근황을 전했다. 최동원은 밥을 반 공기도 채 안 되는 적은 양을 시켰고 채소 위주로 식사를 했지만 몇 술 뜨지 못했다. 아마도 보식 기간이어서 그랬을 거라고 짐작했다.

최동원의 얼굴을 화면을 통해 다시 본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2개월 전인 7월 22일이었다. 그날 최동원은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렸던 추억의 라이벌전 ‘2011 레전드 리매치’ 경남고와 군산상고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 나타났다. 이미 투수로 마운드에 서는 것은 물론 시구조차 할 수 없는 몸이었다. 그는 애써 웃음을 지었지만, 어두운 그림자를 지우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홀연히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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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강렬한 최동원의 추억’은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다시는 그런 장면을 만들 수 없는 1984년 ‘한국시리즈 나 홀로 4승’ 신화일 것이다. 최동원은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에 혼자서 5게임에 등판, 4승 1패(5차전 완투패)를 기록했다. 도저히 등판할 수 없으리만치 기진맥진했던 마지막 7차전(10월 9일, 잠실구장)에도 그는 마운드에 올랐고, 기어코 승리를 따냈다.

경기 직후 최동원은 방송사 리포터의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뭡니까”라는 질문에 “자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아무런 수식 없는, 마치 독백 같았던 그 말은 차라리 절규였다. 그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부었고, 탈진해서 거의 쓰러질 듯한 한 사내의 말이 여전히 귓전에 맴돈다. 최동원은 그런 사람이었다.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기억에 남아 있는 꿈들이 눈을 감으면 수많은 별이 되어 어두운 밤하늘에 흘러가리”라는 고은 시인의 시처럼, 최동원은 우리네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남아 꿈틀거릴 것이다.

글/홍윤표 OSEN 고문

사진/부산=박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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