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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과 욕설을 견디다 못해 4개월 전 주위에 손 내밀었지만 아무도 잡아주지 않았다. 소녀는 희망을 끊어 버렸다.
트라이애슬론 유망주 최숙현(23)의 안타까운 선택은 한국 체육계 인권 문제가 곪을대로 곪았음을 일러 주는 톨 스토리(tall story)다. 당시 현장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조종이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려면.
최숙현이 견뎌야 했던 가혹 행위는 그가 직접 쓴 스포츠인권센터 신고서와 손수 녹음한 녹취록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래 글은 최숙현이 작성한 신고서 녹취록에 기반한 것이다.
스포티비뉴스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최숙현은 전지훈련, 합숙 훈련에서 팀 닥터에게 뺨을 20회 이상 맞고 가슴 배를 걷어차였다. 감독과 일부 동료는 이를 방관하거나 동조했다. 철저히 최숙현을 외면했다.
팀 닥터는 "이빨 깨물어. 뒤로 돌아"서게 한 뒤 최숙현을 폭행했다. 경주시청 감독은 손찌검하는 팀 닥터에게 "일단 한잔하시죠, 선생님. 콩비지찌개 제가 끓였습니다" 말했다.
팀 닥터가 와인을 요하자 "와인 저기 있습니다. 그 옆에 잔 있습니다"라고도 했다.
둘은 비지찌개를 안주 삼아 와인잔을 기울였다. 그때 최숙현은 그들 옆에서 흐느꼈다. 팀 닥터가 다른 선수를 불렀다. "너는 아무 죄가 없다"며 때렸다. 최숙현에겐 "너가 못 맞아서 얘가 대신 맞는 것"이라고 했다. 최숙현은 울었다. "제가 맞겠습니다"라며 울었다.
감독은 팀 닥터 폭행을 묵인했다. 묵인을 넘어, 보조를 맞췄다. 맞던 최숙현이 벽에 머리를 부딪혔다. 쓰러진 그에게 "쇼하지 말라"고 했다. "선생님이 알아서 (조절해) 때리시는 데 뭐하는 거냐" "나랑 푸닥거리할까" 폭언을 더했다. 최숙현은 공포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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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은 최숙현이 미성년일 때부터였다.
고교 3학년이던 2016년 2월. 뉴질랜드 전지훈련에서 소속 팀 선배 A가 연습 종료 직후 멱살을 잡고 욕설했다. 감독이 달려왔다. 자초지종을 묻지 않았다. 동료가 지켜보는 가운데, 선수 운동화로 최숙현 얼굴을 내리쳤다.
감독은 "손으로 때린 게 아니라 신발로 때린 것"이기에 "폭행한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최숙현은 모욕감을 느꼈다.
새벽에 이르러 "살고 싶으면 A 선수에게 빌" 것을 지시했다. 최숙현은 힘이 없었다. A 선수를 찾아갔다.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다.
감독은 경북 문경 합숙 훈련에서 체중 초과를 이유로 최숙현을 혼냈다. 늘 그랬듯, 질책은 도를 넘었다. 최숙현에게 20만 원어치 빵을 사오게 한 뒤 동료 2인과 그 자리에서 다 먹게 했다. '식고문'이었다.
혹독한 몸무게 확인. 그리고 폭언. 최숙현은 "정신적인 피해를 입었다". 신고서엔 하루에 체중 9번 잰 날, 물 한 모금 섭취도 제한한 날이 적혀 있었다. 3일간 금식 강요도 쓰여 있었다.
지난해 3월 8일. 훈련 뒤에도 체중이 줄지 않자 감독은 최숙현을 추궁했다. "(오전에) 복숭아 1개를 먹었다"는 설명에 "정신병이 또 도졌네" 쏘아붙였다.
최숙현은 선배 2명 이름을 진정서에 적었다. 감독과 팀 닥터, A 선수는 뉴질랜드 전지훈련 동안 지속적으로 '집합'을 건 뒤 거친 욕설을 반복했다. "XX년" "쌍년" "미친년"이 최숙현 귀에 앉았다. 최숙현이 성인이 돼서도 그랬다. 폭행과 욕설, 협박은 그칠 기미를 안 보였다.
선수 생활을 그만뒀다. 스물한 살 때인 2018년. 현역을 그만뒀다. 1년간 쉬었다. 멈춤 페달을 밟은 최숙현을 구단은 설득했다. "다시 맘잡고 해보자. 넌 가능성이 있다."
달라졌는 줄 알았다. 그래서 복귀를 결심했다. 착각이었다. A 선수는 여전했다. "감독에게 잘 보이려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한다"며 헐뜯었다. 후배들에게도 "트랜스젠더 닮았다" (이성관계가) 문란하다"고 험담했다. 최숙현은 모욕감을 느꼈다.
B 선수도 거친 언동으로 상처를 줬다. 최숙현 뒤통수를 1회 가격하고 입에 담기 어려운 욕을 수차 뱉었다. 몸과 마음 모두 생채기를 냈다.
◆ 금전 피해 정황도…"2800만 원 요구해"
금전 피해 정황도 잡힌다. 최숙현은 신고서에 "팀 닥터와 감독, A 선수가 2015~2019년에 걸쳐 정확한 용도를 밝히지 않고 돈을 요구했다"고 썼다. 셋은 이따금씩 경비를 청했다. 전지훈련 항공료와 체류비, 심리치료비가 명목이었다. 총 2800만 원을 받아갔다.
팀 닥터와 감독 요구를 거절할 순 없었고, 용도를 묻는 건 있을 수 없었다. 딸 선수 생활에 혹 불이익이 갈까 부친은 요청액만큼 송금했다. "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최숙현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수호'는 이 점을 지적했다. "(전지훈련 항공료, 체류비는) 소속 팀 경주시청에서 지원하는 비용으로 알고 있다"며 셋의 석연찮은 금전 요구에 "사기와 강요, 횡령 혐의를 적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동료 증언으로 보이는 목소리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럿 올랐다. 국민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1일 '폭압에 죽어간 故 최숙현 선수의 억울함을 해결해주십시오' 청원이 올라온 데 이어 2일에도 관련 청원 5건이 더 올랐다.
청원인은 최숙현이 당한 폭행 내용과 경과를 상세히 적었다. "최 선수가 경주시청에 몸담은 기간 차마 말로 표현 못할 폭행과 폭언, 협박과 '갑질', 심지어 성희롱까지 겪었다"면서 "해당 행위는 일회성이 아닌 지속 반복적으로 이뤄졌으며 이 탓에 최 선수는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고 꾹 눌러썼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연을 맺은 가해자들과 오랜 질서(관계), 팀 내 상황을 (말글로) 유출하면 따돌림을 당하는 분위기 탓에 그간 최 선수는 물론 다른 (피해) 선수도 쉽게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고 힘줘 말했다.
유족은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딸에게 생채기를 안긴 이들을 엄벌하고자 했다. 하나 쉽지 않았다. "운동선수 폭행은 (처벌돼도) 벌금형" "소속 팀(경주시청→부산시청)을 옮겼잖은가" "앞으로 딸아이 커리어를 위해서 합의 의향은 없는지"란 답이 돌아왔다.
최숙현 부친은 "(가혹 행위를 알리려) 안 가본 데가 없다. 스포츠인권센터와 경주경찰서, 대한철인3종협회 등 (최근 3~4년을) 신고하고 고소하고 진정서 쓰면서 다 보냈다. 올 초에는 국가인권위원회 문도 두드렸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제대로 (우리 이야길) 들어주는 곳이 없더라. 외면하는 건 아닌데 뭔가 운동선수끼리 (일방) 폭행은 너무 다반사라 (그리) 관심을 기울일 대상이 아니라고 여기는 듯했다. (최)숙현이에게도 기껏해야 벌금형이다, 처벌 수위가 (기대보다) 많이 약할 거다 (수사 기관에서) 계속 얘기했다"고 덧붙였다.
최숙현이 절규할 때 우리는 듣지 못했다. 아니, 듣지 않았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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