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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목)

[야구 생각]패소 두려워 팬 저버린 K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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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한국야구위원회)가 지난 25일 강정호(33)에게 1년 실격, 봉사활동 300시간 징계를 내린 것을 두고 말이 많다.

조선일보

강정호가 2019년 2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리츠 소속으로 시범경기에 출전한 모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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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면 내년부터 뛸 수 있게 된 강정호는 2009년, 2011년 음주 운전으로 적발됐고 2016년엔 음주 운전 뺑소니 사고까지 냈다. 음주 운전을 살인 행위로 여기는 최근 사회 분위기에서 KBO 징계가 너무 가볍지 않느냐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징계가 내려진 다음날인 2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강정호를 프로야구에서 퇴출해 달라’는 글이 올라올 정도로 팬들의 눈초리도 싸늘하다. 글에는 초·중·고 야구 선수들이 강정호를 보고 뭘 배우겠느냔 얘기가 담겼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땐 명분과 시기를 따져야 하는데 KBO는 이 두 가지를 다 놓쳤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한국프로야구는 대만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막했고, 130개국에 중계된다. 이런 시기에 KBO는 야구로 답답함을 달래던 국내외 팬들 마음에 찬물을 끼얹었다. KBO는 또 이날 결정으로 결국 골치 아픈 문제를 회원 구단인 키움 히어로즈로 떠넘겼다. 이제 팬들은 강정호가 복귀 신청을 할 경우 키움 히어로즈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신경을 곤두세울 것이다.

KBO가 강정호에게 1년 실격이란 가벼운 징계를 내린 것은 ‘법적 해석’ 때문으로 보인다. KBO는 2018년 9월 3회 이상 음주 운전 시 3년 이상 실격하기로 규약을 바꿨다. 하지만 강정호는 규약 개정 이전에 세 번째 음주운전이 적발됐고, KBO리그가 아닌 메이저리그 소속 선수였다. 만약 25일 상벌위원회에서 3년 이상 실격 징계를 결정했다면, 강정호 측이 불복해 법정 다툼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법률적으로 보면 KBO가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게 팬들의 분노보다 더 피하고 싶은 일이었는가. 지금 팬들은 강정호가 잘못된 행동을 저지르고도 가볍게 징계받고, 연봉을 환원하겠다는 A4 2장 분량의 반성문 제출로 원하는 것을 얻은 모습에 화가 나 있다. KBO로선 팬들이 왜 경징계에 분노하는지, 야구 실력만큼은 탁월한 그를 아직도 용서하지 못하는 지 헤아려야 했다. 그리고 그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징계를 내렸어야 했다. 소송전이 벌어지면 최종 결론이 나오는데 2년 이상 걸릴 수 있다. 그에 따른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외면한 팬들의 마음을 돌리는 시간보다는 짧을지도 모른다. 패소해도 KBO 탓으로 돌리는 팬은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강정호는 상벌위에 출석하지 않고 미국에 머물며 상황을 지켜보다가 경징계가 나오자, 사죄와 함께 “야구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고 싶다”는 내용이 담긴 사과문을 발표했다. 반성의 진정성은커녕 승자의 여유마저 느껴졌다.

‘이 법인은 우리나라 야구를 발전시키고 이를 보급하여 국민생활의 명랑화와 건전한 여가선용에 이바지하며 야구를 통하여 스포츠 진흥에 기여하고 우리나라의 번영과 국제친선에 공헌함을 목적으로 한다.’

KBO 정관 1조 내용이다. ‘국민생활 명랑화’와는 거리가 먼 강정호 징계 결정을 보면서, KBO가 존재 이유를 망각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조선일보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 야구회관에 KBO 상벌위원회가 열린 모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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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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