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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경향신문 '해외축구 돋보기'

[해외축구 돋보기]축구장의 문이 닫힌 날, 우리 슬픔의 날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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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함성도, 인적도 사라진 ‘스트렛퍼드 엔드’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올드 트래퍼드의 서쪽 스탠드인 스트렛퍼드 엔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가장 열정적인 서포터스들에겐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사랑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30일로 벌써 축구 없는 세 번째 주말이 지나갔다. 눈앞에 있는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에서 흙덩이가 무너져 내릴 때 축구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피터 드루리의 격정적인 코멘터리는 또 어떤가. 드루리는 ‘축구 중계의 시인’으로 불리는 영국의 축구 해설자. 2018년 4월 AS로마가 홈 2차전에서 바르셀로나를 3-0으로 격파하고 역전 4강에 올랐을 때 “로마가 폐허에서 일어났다”고 숨 넘어갈 듯이 외치고, 올 시즌 맨유 래쉬퍼드가 첼시와의 개막전에서 마르시알이 골을 넣은 지 2분 만에 추가골을 터뜨리자 “순

식간에(in a flash), 래쉬의 섬광(rash flash)”이라고 외쳤던, 그래서 축구를 더욱 흥분되게 만들었던 드루리의 코멘터리가 그리워질 때 축구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셀틱 파크(셀틱의 홈구장) 계단을 올라갈 때의 그 느낌, 안필드에서 ‘너는 절대로 홀로 걷지 않으리’를 함께 부르며 끝없이 고양됐던 리버풀 팬으로서의 자부심과 사랑, 우리 팀이 질 줄 알면서도 경기 전에 ‘혹시’ 하며 가졌던 희망으로 설레던 그 순간들은 축구 게임으로는 도저히 대신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했음을 깨우쳐 준다. 그때의 감정들이 새록새록 떠오를 때, 그리고 그 순간으로 지금 달려가지 못한다는 걸 실감할 때 축구는 텅 빈 공허함으로 떨어져 슬픔으로 돌아온다. 수비수들을 농락하는 메시의 드리블,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가 내려앉는 호날두의 호우 세리머니, 예술처럼 상대 볼을 빼앗아내는 완 비사카의 태클, 대지를 가르는 케빈 데 브라이너의 스루패스는 여전히 눈앞에서 아른거리는데 굳게 닫혀진 스타디움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말조차 쇼로 만들었던 무리뉴의 기자회견, 경기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미친 골과 수훈 선수 인터뷰, 승리 후 허공에 질러대던 클롭의 주먹 세리머니, 한 골 차로 이기고 있을 때 홈팀 서포터스석의 기분 좋은 소음, 킥오프를 기다리고 있을 때의 흥분, 라이벌 팀을 무너뜨릴 때의 짜릿함과 통쾌함, 심지어 VAR을 둘러싼 혼선과 불신, 불만까지도….

코로나19가 빼앗아간 건 단순한 축구 경기가 아니다. 경기 때마다 타오르던 열정, 희열로 폭발시키던 포효, 패배에 대한 불안감, 사랑에 비례한 절망과 탄식 등도 잠시 갈 길을 잃었다.

“축구에서 가장 그리운 것이 무엇인가.” 골닷컴의 질문 하나에 팬들은 수백개의 댓글로 그리움을 토해내며 멈춰진 축구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류형열 선임기자 r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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