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도, 인적도 사라진 ‘스트렛퍼드 엔드’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올드 트래퍼드의 서쪽 스탠드인 스트렛퍼드 엔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가장 열정적인 서포터스들에겐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사랑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30일로 벌써 축구 없는 세 번째 주말이 지나갔다. 눈앞에 있는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에서 흙덩이가 무너져 내릴 때 축구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피터 드루리의 격정적인 코멘터리는 또 어떤가. 드루리는 ‘축구 중계의 시인’으로 불리는 영국의 축구 해설자. 2018년 4월 AS로마가 홈 2차전에서 바르셀로나를 3-0으로 격파하고 역전 4강에 올랐을 때 “로마가 폐허에서 일어났다”고 숨 넘어갈 듯이 외치고, 올 시즌 맨유 래쉬퍼드가 첼시와의 개막전에서 마르시알이 골을 넣은 지 2분 만에 추가골을 터뜨리자 “순
식간에(in a flash), 래쉬의 섬광(rash flash)”이라고 외쳤던, 그래서 축구를 더욱 흥분되게 만들었던 드루리의 코멘터리가 그리워질 때 축구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셀틱 파크(셀틱의 홈구장) 계단을 올라갈 때의 그 느낌, 안필드에서 ‘너는 절대로 홀로 걷지 않으리’를 함께 부르며 끝없이 고양됐던 리버풀 팬으로서의 자부심과 사랑, 우리 팀이 질 줄 알면서도 경기 전에 ‘혹시’ 하며 가졌던 희망으로 설레던 그 순간들은 축구 게임으로는 도저히 대신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했음을 깨우쳐 준다. 그때의 감정들이 새록새록 떠오를 때, 그리고 그 순간으로 지금 달려가지 못한다는 걸 실감할 때 축구는 텅 빈 공허함으로 떨어져 슬픔으로 돌아온다. 수비수들을 농락하는 메시의 드리블,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가 내려앉는 호날두의 호우 세리머니, 예술처럼 상대 볼을 빼앗아내는 완 비사카의 태클, 대지를 가르는 케빈 데 브라이너의 스루패스는 여전히 눈앞에서 아른거리는데 굳게 닫혀진 스타디움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말조차 쇼로 만들었던 무리뉴의 기자회견, 경기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미친 골과 수훈 선수 인터뷰, 승리 후 허공에 질러대던 클롭의 주먹 세리머니, 한 골 차로 이기고 있을 때 홈팀 서포터스석의 기분 좋은 소음, 킥오프를 기다리고 있을 때의 흥분, 라이벌 팀을 무너뜨릴 때의 짜릿함과 통쾌함, 심지어 VAR을 둘러싼 혼선과 불신, 불만까지도….
코로나19가 빼앗아간 건 단순한 축구 경기가 아니다. 경기 때마다 타오르던 열정, 희열로 폭발시키던 포효, 패배에 대한 불안감, 사랑에 비례한 절망과 탄식 등도 잠시 갈 길을 잃었다.
“축구에서 가장 그리운 것이 무엇인가.” 골닷컴의 질문 하나에 팬들은 수백개의 댓글로 그리움을 토해내며 멈춰진 축구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류형열 선임기자 r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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