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니입니다. 내일 나는 칼럼을 쓰지 못할 것입니다…”
이탈리아 축구 칼럼니스트, 잔니 무라 심장마비로 사망
세리에A·투르 드 프랑스 등 스포츠 기사에 인문학 접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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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죽음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한 이후 매일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로베르토 만치니 이탈리아 축구대표팀 감독은 “군 차량이 관을 운반하는 것을 보는 것은 지옥”이라고 말했다. 죽음이 일상이 되고 있는 터무니없는 순간이다.
지난 주말 이탈리아 축구계를 큰 슬픔에 빠뜨린 죽음이 있었다. 축구 기자 잔니 무라가 지난 21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향년 75세.
세리에A와 투르 드 프랑스 등 스포츠계에 애도의 물결이 이어질 만큼 그는 특별한 기자였다. 선배이자 멘토였던 잔니 브레라가 ‘리베로’ 같은 수많은 신조어를 만들어낸 ‘스포츠 저널리즘의 다빈치’였다면 그는 열정과 스토리텔링 능력, 간결한 문체, 스포츠에 대한 깊은 통찰력으로 스포츠 기사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끈 ‘스포츠 저널리즘의 미켈란젤로’였다.
풋볼이탈리아의 칼럼니스트 안드레아 탈라리타가 “그의 기사를 읽는 것보다 이탈리아의 축구 문화를 이해하는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는 평가를 할 정도였다.
19살 때인 1964년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에서 수습기자로 출발한 무라는 1976년 로마의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로 옮긴 뒤 지금까지 간판 스포츠 기자로 활약해 왔다. 세리에A를 소재로 일요일마다 연재한 ‘7일의 나쁜 생각’은 이탈리아 저널리즘 역사에서 가장 오래 연재된 칼럼이었다.
탈라리타에 따르면 이탈리아 축구 문화엔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다. 이탈리아 축구팬들의 축구에 대한 지식은 잘해야 부분적이고, 최악은 환상에 불과한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이런 두 경계를 무라만큼 잘 이해하고 대변한 기자는 없었다. 무라는 축구뿐만 아니라 장거리 사이클 대회인 지로 디 이탈리아와 투르 드 프랑스 취재에서도 명성이 높았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시골, 와인, 햇빛, 오래된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사이클 기사에 녹여냈다. 그는 투르 드 프랑스 최고의 이야기꾼이었다. 말년에는 낮은 리그의 선수들처럼 기성 언론에서 보도하지 않는 축구의 사회적 현실을 이야기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기자였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라 레푸블리카 편집 담당자에게 고통스런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잔니입니다. 내일 나는 칼럼을 쓰지 못할 것입니다.” 동료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미리 경고한 게 그의 마지막 말이 됐다.
한 이탈리아 축구팬은 이런 경험담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1992년, 나는 레푸블리카를 보고 있었다. 사고로 사망한 브레라에 대한 무라의 기사를 읽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무라는 울부짖지 않으면서 감정의 끈을 만지는 법을 알고 있었다.”
류형열 선임기자 r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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