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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K리그를 접수하고싶다"… 부산 사나이의 애타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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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1부리그 승격 주역 호물로]

한국생활 4년, 결혼하고 딸 얻고… 또렷한 부산 사투리로 팬과 농담도

"코로나로 경기 못해 힘들지만 건강하게 만날 날 기원합니다"

"주니오, 세징야, 진짜 죽는다!"

프로축구 부산아이파크 외국인 미드필더 호물로(25) 입에서 또렷한 부산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이른바 'K리그 브라질 향우회' 멤버인 세징야와 에드가(이상 대구FC), 주니오(울산 현대)에게 알리는 선전포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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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지난달 28일 개막하려다 잠정 연기된 상태다. 호물로에게 2020시즌 K리그1(1부 리그)은 기다려 온 무대였기에 더욱 아쉽다. 2015시즌이 끝나고 2부 리그로 강등됐던 부산은 2017년부터 3년 연속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앞선 두 차례는 쓴잔을 마셨지만, 작년엔 마침내 경남FC를 물리치고 1부 리그에 올랐다.

4시즌 만의 승격, 그 중심엔 호물로가 있었다. 2017년 임대 신분으로 부산 유니폼을 입은 호물로는 중요한 순간마다 감각적인 왼발 슈팅으로 부산의 해결사 역할을 도맡았다. 작년 팀 내 최다인 14골 2도움으로 부산의 K리그2 2위를 이끌었고, 경남과 벌인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선제 결승골을 넣어 승격에 앞장섰다.

이 골을 넣은 뒤 관중석으로 달려간 호물로는 왼쪽 가슴에 있는 부산 엠블럼을 움켜쥐고 "마! 이게 부산이다!"라고 외쳤다. 창원축구센터를 찾은 부산 원정 팬 1000여 명은 뜨겁게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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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부산 생일 파티에서 가족과 함께 케이크 촛불을 끄는 호물로. /호물로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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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물로는 "이 말을 외칠 순간만을 기다려 왔다"고 말했다. 그는 "골을 터뜨리고 드디어 부산이 K리그1 무대를 밟을 자격을 증명했다는 생각이 들어 소리친 것"이라고 했다.

호물로는 자타공인 '부산 사나이'다. 이제 한국 생활 4년 차에 갓 접어들었지만 한국어 실력은 리그 외국인 선수 중 최고 수준이다. 사인이나 사진을 요청하는 팬들에게 부산 사투리로 "인사 안 하냐? 인사 똑바로 해라"라며 '군기'를 잡고, '못생겼다'며 놀리는 팀 동료들에겐 "네가 더 못생겼어, 진짜 못생겼어"라며 되받아친다. "나는 부산 레전드"라며 능청스럽게 너스레도 떤다.

호물로의 부산 생활 3년이 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동안 아내 이사도라와 결혼했고, 너무 예뻐서 모두가 '기적'이라고 부르는 딸 마누엘라도 얻었다. 호물로는 "부산은 늘 나와 가족을 반기고 따뜻하게 대해준다"며 "늘 애정과 관심에 보답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래선지 호물로의 팬 사랑은 못 말린다. 그는 1부 승격을 확정 지은 뒤 관중석으로 올라가서는, 입고 있던 바지는 물론 양말, 무릎 보호대, 축구화까지 홀딱 벗어 팬들에게 나눠줬다. 속옷만 입은 채 라커룸으로 달려가는 모습에 팬들은 배꼽을 잡았다.

호물로는 "마음 같아선 전부 주고 싶었는데, 유니폼 상의는 액자에 담아 고이 남겨두고 싶어서 주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호물로가 벼르고 별렀던 한국에서의 네 번째 시즌이 언제 문을 열지는 모른다. 2~3월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국에 급격하게 퍼지면서 브라질에 머물던 가족들도 아직 한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호물로는 "좋아하는 축구도 못 하고, 사랑하는 가족들도 못 보는 시간이 힘들다"면서도 "생명을 지키는 일은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이뤄져야 한다. 모두 건강히 경기장에서 만나고 싶다"고 했다.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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