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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화)

이슈 [연재] 중앙일보 '송지훈의 축구·공·감'

[송지훈의 축구·공·감] 울산엔 있고 서울엔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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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이청용 서울로 유턴 좌절

신중치 못한 팀 협상 태도 아쉬움

꾸준함으로 선수 마음 얻은 울산

중앙일보

울산 현대에 입단한 이청용이 영남을 대표하는 누각 태화루 앞에서 울산 유니폼 차림으로 응원 수건을 들고 있다. [사진 울산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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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쯤으로 기억한다. 당시 프로축구 FC서울의 두 신예 선수 기성용(31·마요르카), 이청용(32·울산)과 몇 차례 따로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10대 후반에 프로 무대를 밟은 둘은 늘 당차고 쾌활했다. 현실에서는 훈련이 끝나면 커다란 볼 주머니를 챙겨야 하는 막내였지만, 꿈은 크고 야무졌다.

“최대한 빨리 주전으로 자리 잡고, 국가대표가 되고 싶어요. 월드컵에도 나가고, 유럽에서도 뛰어야죠. 저희 둘이 생각해 봤는데요, 저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가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이)청용이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싶대요.”

늘 진지했던 10대 시절의 기성용 말투와 표정이 여전히 생생하다. 미래를 얘기할 때 둘이 항상 덧붙이던 말이 있다.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표정의 이청용은 이런 얘기도 했다.

“10여년쯤 신나게 뛰고, 서른 살쯤 은퇴하면 멋있을 것 같아요. 아, 저희가 어디서 어떻게 뛰든지 마지막 팀은 무조건 FC서울이에요.”

그로부터 13년, 둘의 축구 인생은 계획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서른에 은퇴하겠다’던 어린 시절 호언장담과 달리 아직은 축구화를 벗지 않았다. 선수로서는 좋은 일이다. 그리고 하나 더. 둘 다 아직은 서울 유니폼을 다시 입지 않았다.

둘 다 올겨울 서울 복귀를 타진했다.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기성용은 스페인 1부리그 마요르카로, 이청용은 K리그1 울산 현대로 기수를 틀었다. 원소속팀 서울은 직접 발굴하고, 육성하고, 국가대표를 거쳐 유럽 진출시킨 ‘메이드 인 서울’ 듀오를 잡지 못했다(않았다).

친정팀 복귀에 대한 선수의 의지가 제아무리 강해도, 그것만으로 컴백이 성사되는 건 아니다. 이미 새 시즌 계획에 맞춰 선수단 구성을 끝낸 구단이 추가 예산까지 편성해가며 초특급 선수를 추가로 데려오는 건 쉽지 않을 수 있다. 거액을 들여 영입한 뒤 벤치에 앉혀두기도 곤란하다.

다만 아쉬운 건 서울의 협상 태도였다. 이청용과 기성용은 단순한 ‘국가대표급 스타 선수’가 아니다. 그 수식어 앞에 또 하나의 수식어 ‘서울이 키운’이 붙는다. 협상 과정에서 더욱 신중했어야 한다. 팀 사정으로 당장은 영입하지 못하는 것으로 결론 내더라도 ‘다음’에 대한 가능성은 열어둬야 했다. 기성용 측 관계자는 “서울과 협상을 진행하며 ‘당장은 곤란하지만, 언젠가는 꼭 돌아와 달라’는 느낌조차 읽을 수 없어 선수가 실망했다. 협상 과정 내내 기성용과 이청용은 꾸준히 의사소통하며 서로 감정을 공유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역설적으로 이청용과 이렇다 할 인연이 없었던 울산은 ‘다음에 대한 기대감’을 살려 이적 계약을 성사시켰다. 2년 전 이청용이 국내 복귀를 처음 타진하던 때부터 ‘최고 대우’를 제시하며 꾸준히 러브콜을 보냈다. 이청용의 우선순위가 서울 행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차분히 기다렸다. 선수가 유럽에서 좀 더 뛰고 싶어 보훔(독일)행을 결정했을 때도 존중하며 지켜봤다.

이청용이 이번 겨울 K리그행을 재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울산은 한결같았다. 보훔 이적료 요구나, 서울에 줘야 할지 모를 위약금 등 여러 돌발변수에도 “여의치 않으면 올여름 (보훔 계약이 끝난 뒤) FA(자유계약선수)로 영입하면 된다. 영입 의지는 변함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여 선수 마음을 얻었다.

‘다음’에 대한 여지 또는 가능성. ‘쌍용’의 행선지를 바꾼 건, 작지만 중요한 그 차이였다.

송지훈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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