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사업·아르바이트 전전하며 방황, 다시 야구로 돌아와
제2의 야구인생에서 느낀 것, 구독자와 함께 나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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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가 아닌 경험, 이른바 ‘스트리밍 시대’입니다. 스트리밍은 실시간 재생 기술로,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데이터가 처리된다는 뜻입니다. <스트리밍 스포츠>에서는 새로운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다양한 스포츠의 세계를 소개합니다.
야구크리에이터 윤석(31)씨는 선수 출신 야구 유튜버다. 14년을 야구 선수로 뛰었고, 지금은 유튜브 채널 <썩코치>를 운영한다. 구독자는 약 8만명. 홈런과 안타를 치기 위해 애쓰던 그는 이제 과자 홈런볼로 홈런을 치고, 야구 교육 현장을 바꾸기 위해 뛰고 있다. 선수에서 크리에이터로. 두 번째 야구인생을 사는 윤석씨를 <한겨레>가 직접 만났다.
■ 선수 윤석, 야구를 그만두다
윤석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활동적인 그에게 야구는 천직과도 같았다. “잠깐만 다녀야지”했던 야구학교가 자신을 엘리트 야구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학생 때 준수한 성적을 냈고, 고려대학교에 입학했다. 고려대 08학번 동기들은 야구를 잘하는 선수가 많았다. 지금은 프로에서 뛰고 있는 문승원(SK), 윤명준(두산), 박세혁(두산)이 모두 동기였다. 윤석씨는 그 안에서도 괜찮은 활약을 했다. 저학년 땐 주로 교체로 뛰었지만, 고학년이 되면서 주전 외야수로 활약했다.
졸업이 다가오면서 고민은 커졌다. 꿈의 크기만큼 고민도 무거워졌다. 프로의 문은 좁았고, 그 안에서도 소수만이 성공한 프로 선수가 될 수 있었다. 결국 그는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후회 없이 노력했기에 내릴 수 있었던 결정”이라고 했다.
대학 졸업 뒤 먼저 군대에 갔다. 전역 즈음 단국대학교에서 공부할 기회가 생겼고, 스포츠 경영 전공으로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석사 논문을 쓰고 ‘윤 석사’가 됐지만, 진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박사 과정을 밟거나 전공을 살려 체육 교사에 도전할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그땐 젊어서 그런지 더 도전적인 걸 하고 싶었어요.”
그는 각종 사업을 시작했다. 애플리케이션 개발, 무역업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했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사람과의 문제도 있었고, 경험도 부족했다. 해외 부동산 사업에 실패한 뒤에는 한국으로 돌아와 아이스크림 가게 아르바이트, 탑차 배송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방황의 시간이었다.
■ 다시 야구, 그래도 야구
터닝 포인트가 필요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뭘까.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그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답은 야구였다. “야구를 즐겁게 하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한강에서 야구 레슨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는 제2의 야구인생을 함께할 동료를 찾았다. 바로 ‘양 프로’ 양인호(30)씨다.
당시 양씨는 야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는 2010년 군대에 있을 때 부산 사직구장에서 롯데와 에스케이(SK)의 경기를 본 걸 계기로 야구팬이 됐다. 황재균이 끝내기를 친 대역전극이었다. 전역 뒤 그는 더 전문적으로 야구를 배우고 싶어서 윤석씨에게 야구 레슨을 받았다.
둘은 ‘케미’(케미스트리)가 잘 맞았다. 만난 지 한 달 만에 함께 유튜브를 해보기로 했다. 양씨가 영상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볍게 꺼낸 말이 계기였다. 처음엔 2017년 <야구동아리>라는 이름의 채널로 시작했다. 강의 영상을 몇 개 찍어 올렸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떠올린 게 ‘썩코치’라는 이름이었다. 윤석씨의 이름 뒷글자를 따와 코치를 붙였다. “유튜브의 기본은 재미”라는 생각이 들어 강의 영상 외에 웃긴 야구 영상도 올리기 시작했다. 구독자가 점점 늘어났다.
선수생활 경험은 유튜브에도 도움이 됐다. 다른 유튜버들과 달리 직접 야구 강의 영상을 올리면서 집에서 야구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프로에서 뛰고 있는 대학 동기들은 유튜브에 직접 출연하거나 선수 섭외를 도와줬다. ‘선수 출신이 스크린 야구를 하면?’ 같은 영상도 인기를 끌었다. ‘야구 외부자’였던 양인호씨의 시선과 선수 출신 윤석씨의 경험이 만나 시너지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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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의 재미와 의미를 되찾다
윤석씨에게 야구는 항상 진지한 일이었다. 프로를 위해 뛰었고, 이겨야만 했다. 그러나 유튜브는 윤석씨가 잊고 지냈던 야구의 재미와 의미를 되찾아줬다. 유튜브 촬영을 위해 방문한 일본 고교야구대회 ‘고시엔’에서 경기장이 떠나갈 듯 환호하는 관중을 보며 그는 야구의 의미를 되물었다. 프로를 위해 달릴 땐 미처 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윤씨는 고시엔에 다녀온 뒤 “순수한 승부와 열정만이 가득한 야구장에는 굳이 부르지 않아도 관중들이 가득 찹니다. 모두가 한때는 순수하게 야구를 사랑했어요. 야구를 통해 꿈과 희망을 얻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라는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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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변화를 따라 콘텐츠도 진화했다. 기존에는 강의나 예능 영상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야구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양인호씨는 외부자의 관점에서 함께 질문을 던졌다. 양씨는 윤석씨의 선수생활 이야기를 들으며, 외부인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았다”고 했다. “어린 학생들에게 그렇게까지 야구를 시키는 게 과연 누굴 위한 것이었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최근 둘은 ‘미래형 야구부’를 주제로 서울고등학교 야구부를 방문해 영상을 촬영했다. 서울고 야구부는 훈련이 끝난 뒤 선수들을 위한 교과 수업을 열고 있다. 오로지 야구만 하던 시절과는 다른 모습이다. 양씨는 “저희도 정답은 모른다”면서 “그저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했다.
윤석씨는 최근 ‘쿠독’이라는 유튜브 기반 야구팀을 만들었다. “즐겁게 야구하고, 야구가 즐겁다는 걸 알리는 것”이 목표다. “선수 때는 야구를 잘해야만 한다는 부담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제가 하는 모든 야구에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자유롭고 행복합니다.” 윤석씨의 야구인생은, 이제 막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군포/글·사진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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