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두 번 우승한 웨스트우드도
비결은 남에게 신경쓰지 않은 것
개성대로 살며 성공한 허재 닮아
PGA 투어 챔피언스에서 우승한 히메네스. 개성있는 삶이 그들을 만들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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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유러피언투어 두바이 데저트 클래식에서 리 웨스트우드(47·잉글랜드)와 미겔 앙헬 히메네스(57·스페인)를 인터뷰했다.
당시 세계 1위였던 웨스트우드는 소탈했고 농담을 잘했다. 프로암 라운드에 동반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티박스에서 270야드쯤 되는 지점에서 한 아마추어 참가자가 그에게 “혹시 이 공이 당신 거냐”고 물었다.
웨스트우드는 “내 공은 저 앞에 있다. (거리가 짧은) 이 공은 아마 타이거 우즈 거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에게 “이건 기사에 쓰면 안 된다. 우즈와 싸움이 날 것”이라고 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하는 영국식 농담이 재미있었다. 한편으론 랭킹 1위에 오른 그가 '골프 황제' 우즈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쓴다는 생각도 들었다.
히메네스도 사람 좋고 농담을 잘했다. 그의 가장 큰 매력은 라 만차의 기사 돈키호테 같은 개성이었다. 그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꽁지머리를 했고, 괴상한 자세로 스트레칭했다.
다른 사람 생각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TV 중계를 해도 시가를 입에 문 채 벙커샷을 했다. 하루에 한두 시간씩 에스프레소를 놓고 ‘멍때리기’를 좋아했다. 또 저녁이면 와인 한 병을 들이킨다.
“운동선수가 그래도 되냐”고 묻자 그는 “스포츠가 전부가 아니다. 인생도 중요하다. 인생은 단 한 번이다. 와인과 시가, 에스프레소는 물론 위스키, 페라리(스포츠카) 등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 모든 스위치를 끄고 해변에 누워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유러피언투어 아부다비 HSBC 챔피언 십에서 우승한 웨스트우드. 개성 있는 삶이 그들을 만들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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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게도 두 선수가 19일 나란히 우승했다. 히메네스는 미국 PGA 투어 챔피언스(시니어 투어) 개막전에서 우승컵을 들었다. 히메네스는 막 시니어 투어에 들어온 ‘젊은이’ 어니 엘스(51)를 연장전에서 제쳤다. 40대에 빛을 보기 시작한 히메네스는 50대 들어 창창하다. 시니어 투어 7년 동안 매년 우승하며 중년을 만끽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시간이 지날수록 멋져지는 와인”이라며 으쓱했다.
웨스트우드는 유러피언투어 아부다비 HSBC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2011년 한국에서 열린 발렌타인 챔피언십 우승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이 없었던 그는 최근 1년여 동안 유럽 큰 대회에서 두 차례 우승했다.
히메네스와 달리 웨스트우드는 아픔이 많다. 메이저 우승이 한 번도 없다.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한 그에게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 선수 중 최고 선수’라는 웃지 못할 평가가 따라다닌다.
이번 대회 우승 후 웨스트우드가 한 말이 인상적이다. “다른 선수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나의 샷과 나의 전략과 나의 마음만 신경 썼더니 우승할 수 있었다.” 왠지 히메네스의 말을 듣는 듯도 했다. 웨스트우드는 세계 1위에 오른 뒤 사실상 수직 낙하했다. 너무 주위를 신경 쓰다가 스스로 무너진 게 아닌가 했는데 이제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여유를 찾은 것같다. .
허재가 요즘 예능계에서 잘 나간다. 다들 의외라고 생각한다. 더 잘 생기고, 말 잘하고, 젊은 스타 선수들도 방송계 문을 두드렸지만 잘 안 됐다. 나는 농구 담당 기자를 한 적이 있다. 그래서 허재 전 감독도 조금 안다. 지금 방송에 나오는 모습은 그가 평소에 하던 그대로다.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방송 트렌드에 맞추려고 하지 않는, 솔직한 모습을 팬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히메네스와 비슷하다.
골프 선수 중 어릴 때 아주 잘하다가 어른이 된 뒤 깊은 슬럼프에 빠지는 이가 꽤 많다. 이유 중 하나는 주변을 너무 의식하기 때문이다. 남과 비교하는 선수는 자신보다 못하던 선수가 앞서가는 걸 견디지 못한다. 주의를 의식하다가 망가지는 것이다.
LPGA 선수 대니얼 강의 오른손에는 ‘just be’라는 문신이 있다. ‘just be yourself’의 약자다. 작고한 아버지가 “누가 뭐라고 하든 너만의 인생을 살라”고 가르쳤다 한다. 대니얼 강은 프로가 된 후 어려움도 겪었지만 아버지의 조언 덕에 지금은 멋진 삶을 살고 있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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